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코끼리를 쏘다- 2010년의 책읽기

자몽미소 2010. 4. 18. 20:48

                     < 조지 오웰의 산문집>

 

 책의 목차와 밑줄긋기(알라딘 책소개에서 발췌)

제1부 식민지에서 보낸 날들
교수형
코끼리를 쏘다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을까
마라케시

제2부 문학과 정치
나는 왜 쓰는가
소설의 옹호
문학과 전체주의
문학 비용
좋으면서 나쁜 책

제3부 파리와 런던의 뒷골목
구빈원
여인숙
유치장
홉 열매 따기

제4부 일상에 스민 정치성
복수는 괴로운 것
공원에서의 자유
도꺼비에 대한 단상
스포츠 정신
서점의 추억
영국 요리에 대한 옹호
한 잔의 맛있는 차

제5부 유럽 문학에 대한 단상들
책값 대 담뱃값
톨스토이와 셰익스피어
마크 트웨인: 세상이 인정하는 이야기꾼
한 편의 시가 주는 의미
유럽의 재발견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작품 연보

 

 

 
교도관들이 그의 어깨를 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길 위의 조그만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가볍게 옆으로 옮겼다.
곧 사형될 사형수의 이런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 있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해내고, 피부는 스스로를 재생시키고, 발톱은 자라고, 세포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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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9 : "소설을 쓰는 것은 장기간의 고통스러운 질병에 시달리듯 끔찍하고 극도의 투쟁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악마에 씌지 않고는 이런 작업을 결코 떠맡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악마란 존재는 마치 아기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우는 것과 똑같이 단순한 본능과 같은 것이므로, 그러나 만약 작가가 자신의 개성을 없애버리는 투쟁을 끊임없이 하지 않는다면 남들이 읽어줄 만한 어떤 글도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 아프락사스

 

 
*책을 읽고 내 생각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고 나서 조지 오웰을 모두 읽고 싶어졌다. 보이는 대로 주문을 하고 차례로 읽고 있는데 이 책  뒷편의 작품 목록을 보니, 번역 안 된 책이 더 많다. 지금까지 조지 오웰 작품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동물 농장> <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지금 이 책 < 코끼리를 쏘다>를 읽었고, < 1984>와 <카탈로니아 찬가>를 남겨 두고 있다.(집에 구입한 책 중에서)

그의 책을 읽을수록 조지 오웰이 47 세로 너무 일찍 이 세상을 떠나버린 게 너무나 안타깝고 아쉽다.

글을 쓰기 위해  실지로 부랑자 사회로 들어가 겪었던 생활이  원래 약했던 몸을 더욱 나쁘게 만든 원인이 아닌가도 싶다. 나쁜 음식과 불결한 위생 상태에서 지병인 폐병을 키웠던 것 같다. 게다가 스페인 내전에도 참여하였으니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산문 "코끼리를 쏘다"에서는 일찍이 버마의 경찰로 근무하면서 겪은 일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 글 속에서 조지 오웰은 코끼리를 쏘고 싶지 않았음에도 쏘아야 했던 자신의 어처구니 없던 행동을 고백하면서 식민지에서 제국이 갖는 허울과 명분에 대해 고발한다. 이런 일련의 일들에서 조지 오웰은 자신의 내면과 행동의 불일치를 괴로워했고, 제국의 앞잡이 노릇이 끔찍해져 버렸다. 그는 행정가의 옷을 입었지만 자기 양심에 귀를 막을 수 없었기에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경찰의 옷을 벗어 버린다. 이때의 양심의 가책이 그가 어떻게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에게 했고, 그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이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이 쓰여졌다.  그의 양심은 작가로서의 양심이다. 나는 요새 만나보는 어떤 작가 보다도 이 작가에서 글쓰기에 대한 진정성을 발견하고 있다. 글을 쓴다면 이런 정신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글은 읽기가 쉽다. 이제까지 읽어 본 책이 대개 그러했다.

다만 이 산문집의 번역은 이전 읽었던 책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서 만큼 좋지는 않다. 미리 그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의 번역을 들여다 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침 이 산문집의 제 3 부가 이전에 읽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과 겹치는 부분이 있기에 들여다 본 것인데 조지 오웰 전공자인 이 책의 번역자 보다는 앞의 책의 번역자의 한국말이 더 매끄럽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글이 잘 읽히는 것은 원작자의 글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읽어가면서 두 번 되돌아가 이해를 해 보려 하던 문장이 없었다. 가끔은 이 책의 원서를 읽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보지는 않았고 실제로 내게 그럴 능력이 될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크게 어렵지 않은 영어로 쓰여졌을 것 같다.

 

제 5부 "유럽 문학의 단상" 편에서는  20 세기 전반의 유럽 상황과 지금 우리가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의 작가들에 대한 비평도 실려 있어, 우리 문학계에서 고전으로 꼽았다고 해도 그쪽 동네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