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고 내 생각
*이 남자에 반하다.
독후감을 쓰면서 남자에 반했다니 뜬금없이 보이겠지만, 정말 반했다.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1780년의 여행길에 있는 이 남자를 만나러 압록강을 건너고 중국땅으로 들어가 이 사람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어느 길에선가 만나질 것도 같았다. 그가 길을 건너던 때가 바로 음력 7월 경이었으니 책을 든 내가 견디는 여름과 같은 계절인데다가, 말을 타고 가는 그의 여행길을 나로서는 몇 시간의 비행으로 따라가 만나는 영화 같은 일을 상상하다 보니 어느덧 나는 이 남자의 여행길에 동반해 있는 듯했다. 그의 글 속엔 200여 년 전이 아니라 내가 겪는 이 계절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이국의 풍경에 대한 호기심어린 시각은 오늘날의 여행자보다 더 싱싱했다.
게다가 어느 글에선가 보니 이 남자는 웃음이 많아, 스스로 웃음을 참아야 할 때가 많다는 고백에다가 일기마다에 대화 도중에 크게 웃었다는 대목이 많았다. 또한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다니는 동안 웃기는 일이 많이 생기기도 하여 현대의 독자로서도 그 상황을 공유하면서 웃게 된다. 잘 웃고 잘 웃기는 이 남자에게 친근감이 생겼다. 매사를 흥미를 가지고 보고 있으니 재미있게 살고 있는사람으로 보였다. 잘 웃고 호기심 천국인 재미있는 남자가 박지원이었다.
더욱이 그는 무슨 일을 보든지 직감이 빠르고 크게 배우고 익힐 시간이 없었을 여행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차린 게 많았다. 여행길에서 보게된 것들에서 배움을 키웠는데 그것은 대개 하찮다면 하찮은 것이었다. 그 시대의 선비들이라면 공부라고 할만하지 않았던 것들, 벽돌에 관한 것, 벽돌을 굽는 가마에 관한 것, 우리 나라의 돌담과 벽돌담의 차이에 관한 것, 말 (馬)에 대한 것 그래서 말 부리는 방법에 관한 것, 거기에 덧붙여 수레에 대한 것 등등. 그런데 그 일을 글로써 늘 기록했다. 매일의 일기로서 하루 동안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다가 덧붙여 이야기 할 게 많은 대목은 따로 주제를 잡아 글을 써 냈다. 매일의 기록이었지만 내용이 항상 달랐고, 글 속에 녹아든 이 남자의 심성이 고아했고, 자신의 체험을 어떻게든 글로 남기기 위해 애썼던 노력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하고 말았다.
*주목하는 것에 주목해서
나는 특히 이 남자의 말馬에 대한 의견을 새삼스럽게 살폈다. 조선시대의 제주는 방목지로서 조선 땅에 필요한 말을 공급해주던 곳이었다. 제주에는 말을 잘 키워 진상을 해서 벼슬을 받았던 집안이 있고, 그 바람에 말테우리의 직업에서 제주 제일의 부자이며 양반집이 되었던 김모씨 집안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제주 전통을 이야기 할 때면 말테우리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말테우리가 부르던 뜻을 알 수 없이 소리만 남은 노래가 있어 사라져 가는 그것에 대한 애틋함을 크게 부풀리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 제주도의 말산업은 오늘날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쯤의 산업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전해지는 말(言)에 따르면, 말테우리들의 말 관리는 집안을 이어 전해지던 산업 비밀 같은 것이었다 한다. 원나라 때의 지배 시기에 제주도 땅이 말 사육장으로 이용되다가 원나라가 망하면서 그때 들어왔던 원나라의 말 관리자들이 그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섬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일텐데, 그들의 말관리 비법이 특정 집안 사람들에게 이어져 내려온 것일테다.
그런데 박지원은 우리 나라의 말 馬 육성과 관리, 이용 방법에 대해 대단한 일침을 가하고 있었다.
우선 우리 나라의 말이 조랑말이 되어 버린 이유를 개량을 하지 않은 데 두었다. 즉 원나라 사람들이 제주도 말목장에 말을 들여올 당시만 해도 조랑말이 아니었지만 계속 그 종자에서 자손을 보다 보니 점점 몸이 작아지고 다리가 가는 조랑말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좋은 종자의 말을 보존하기 위해서 새끼가 좋지 못한 수컷은 거세를 하여야 하고, 암컷과 수컷의 비율을 3: 1 정도로 하는 등 개량과 종자 육성에 적극적인 방법은 <주례>와 <예기>의 "월령편"을 따라 해야 한다고 보았다.
말 부리는 일에 있어서도 말의 본능을 살피고 자연성을 살려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상호교감이 없이 말부리는 사람의 일방적인 억압으로 말이 제 본래의 힘을 누르고 복종만 하게 하다 보니 조선말은 모두 고개를 땅으로 쳐박고 걷고 짐을 실으며 살다가 교배를 한 번 하고나면 이내 힘이 달려 죽게 되어 있다는 것이라 했다. 말에 짐을 싣는 일만 해도, 수레를 이용하면 좋을 것을 말등에다가 모두 얹어 이동을 하니 조선의 유통이라는 게 원활하지 않다 하였다. " 말을 다루는 방법이 틀렸고, 말을 먹이는 방법이 옳지 못하고, 좋은 종자를 받을 줄도 모르고, 목축을 맡은 관원이 목마에 무식하기 때문"에 국내에는 좋은 말이 없다고 떠들어 대는 일에 대해 박지원이 하나 하나 그 이유를 들어 설명을 해 놓았다.
조선말은 이미 군용으로 쓰기에도 너무 약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런 사실을 외국이 알게 된다면, 조선땅 방비의 허점을 아는 것이라 했다. 말을 관리하는 일은 나라를 다스리는 큰 정책임에도 도리어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 비복들 손에 맡기고, 배우려 하지 않음을 한탄했다.
그외, 바뀌면 좋을 일상의 습관이 도저히 바뀌지 않는 것들, 조선의 가마 문제와 벽돌굽기 문제, 거기서 발생하는 소나무의 지나친 벌채 등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화페와 수레에 대한 생각 ( "중국의 풍부한 재화와 물건이 어느 한 곳에 막혀 있지 않고 사방에 흩어져 옮겨 다닐 수 있는 까닭은 수레를 사용하는 까닭이다" - 1권 267 쪽) 등 이 짧은 여행 중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고 비판할 수 있었을까 감탄스럽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고, 일기 속에는 그날의 날씨와 자기 기분, 만난 사람들과 그들과의 대화 내용을 적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대개 중국의 학자들이었는데( 북경에 황제를 만나러 왔던) 중국말을 할 수 없었던 박지원이 어떻게 그들과 소통했을까, 어느 기록엔 이야기가 잘 되었던 몇 사람과 새벽 5시 부터 저녁까지 필담을 나누었다고 기록되었다. 그의 여행기에 실린 산문과 일기는 필담한 종이를 가지고 돌아와서 재편성하여 글을 썼을 것이지만, 놀라운 것은 말이 서로 다른 사람끼리 그렇게 오랜 시간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점과, 대화할 내용을 공유하고 있었던 점, 그 만남에서 결과한 이야기를 소중히 하여 글로 남기려고 한 박지원의 태도였다.
그의 일기는 그래서 끊임없는 글쓰기와 그를 위한 사유였고 <열하일기>라는 여행의 기록이 되었다. 나는 그의 글 내용에 주목할뿐더러 샘물처럼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꾸준하고 맑은 글쓰기에 주목한다.
*그러나 아쉬운 건.
그래도 책을 덮고 나니 아쉬운 건 있다.
책의 곳곳에 박지원은 중국말과 우리 말의 다름에 관해 말했다. 박지원이 놀라워 했던 것은 중국의 말은 아무리 하찮은 문장이라 하더라도 그 뜻을 헤집어 보니 조선 선비들이 배우고 익히기에 평생이 걸렸던 시가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말은 중국말과 달라 뜻을 따로 생각하고 글자를 써야 하니 중국말의 자연스러움이 없다 하였다. 글자로서의 문자와 소리로서의 말이 화합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은 한글을 익혀 오히려 한자와 한문을 잘 알지 못하는 현대 한국인인 나에게 매우 낯선 불평이다. 박지원이 많은 곳에서 서민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애정을 가진 것처럼 느꼈었지만, 이 대목에서만은 박지원의 세계가 어딘가 막혀 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읽고 있는 <열하일기>는 김혈조라는 한문학자가 번역한 것이다. 번역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무리 뛰어난 글이었다고 소문을 들었어도 <열하일기>를 읽어낼 재주가 없었을 것이고, 그 문장 안에 숨은 구체적 매력을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박지원이 살았던 18세기는 이미 세종대왕이 한글창제 이후 몇 백년이 흘러 있던 시대이지만, 박지원은 사유는 한글로 했을지언정 남기는 것은 한문으로밖에 하지 못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스스로 중국말로 표현해야 하는 조선말의 불편을 몸소 느끼고 있었던 것이고, 다시 그 불편을 겪어야 할 독자로서의 조선 민중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글은 한문으로 적혀 있었고 그 글을 읽을 독자 또한 정해져 있었다. 그의 글 속에 들어있던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을 실천할 민중에게 그의 글은 당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도 말이 바로 문자가 될 수 있고, 문자가 바로 말이었던 한글은 박지원의 세계에선 문자도 학문도, 사유도 이념도 될 수 없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열하일기>는 곧 글이 표방하는 이념을 문자의 형태와는 어울리지 못해 그 글을 읽었던 권력자, 사대부들에게 배척을 받았다. 그의 글은 글자 해독자가 모두 읽을 수 있어야 했는데, 박지원은 그의 글을 반길 한글해독자 또는 문맹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수의 한문해독자들, 결과적으로는 그의 글에 반항할 소수를 향해 글을 내놓은 셈이다.
두번째 아쉬운 점은 18세게 중엽의 조선 선비의 세계관이다.
이미 이 시대는 유럽 열강이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힘을 저축하고 있었고, 이미 200년 전에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세계의 지도가 달라져 있던 시기였다. 중국은 물론 그 당시만 해도 중세 비단길의 명망이 여전해서 유럽에서도 눈독을 들이는 부유한 나라였고, <열하일기 >곳곳에 나오는 사람들이 입은 옷들도 비단옷을 입고 있다는 표현이 많다. 이 당시의 유럽에서는 중국의 비단과 차를 수입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만들며 중국과 교역할 물품을 구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통용되던 은화가 이미 남아메리카의 은광에서 출토된 것이고 이것이 유럽을 거쳐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대항해 시대의 시간 속에 편입된 중국 땅에, 조선의 선비, 박지원 일행이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겐 그가 여행하는 청나라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 그 주변인 유럽과 동남아시아 등을 볼 식견이 없었다. 그가 보는 것은 망한 명나라와 새로 건국해 100여 년이 지난 청나라의 관계, 그 속에 흐르는 만주족, 한족, 몽고족 간의 갈등이나 융화 등, 중국내부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중국은 이후 100년 후에 유럽 열강에 의해 멸망할 나라였지만, 18세기의 조선 선비에게는 영원히 천제가 다스릴 나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중국을 벗어나 있는 조선은 상상할 수 없었고, 그가 돌아와 <열하일기>를 적었을 때는 고리타분한 조선 사대부들이 청나라의 연호 <건륭>을 썼다는 등의 쓰잘데없는 이유로서 그의 글을 폄하하기에 바빴다. 18세기의 조선 사대부들에게는 중국 이외의 더 나은 세계란 달나라 정도였을까?
*다시 읽는 고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 호질>과 <허생전>을 이번 책 <열하일기>에서 읽었다. "호질"은 어떤 집에 놀러갔다가 그 집 벽에 적혀 있는 이야기를 옮겨 적은 것이고, "허생전"은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박지원이 다시 적은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때 고전 시간에 "열하일기 중에서" 라는 대목으로 박지원의 글을 읽은 후로 <열하일기>를 읽어 보리라던 생각은 늘 뒷전으로 미루어지기 일쑤였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고전 시간에 읽었던 대목이 어디였는지를 살폈더니, 2권에 「일야구도하기」라는 제목으로 있었다. 이 글은 다른 글보다 훨씬 교훈적인데 아마 교과서에 실릴 글이어서 이 글을 채택하였기에 그런 것 같다. 여기에 옮겨 적는다.
하룻밤에 강물을 아홉 번 건너며
물이 두 산 사이에서 흘러나와 바위와 부딪치며 사납게 싸우면서, 놀란 파도, 성난 물결, 분이 난 큰 물결, 화가 난 물보라, 구슬픈 여울, 흐느끼는 소용돌이가 달아나며 부딪치고 굽이치고 곤두박질치면서 으르렁 소리치며 울부짖고 포효하며, 언제나 만리장성을 꺽어서 무너뜨릴 기세이다. 만 대의 전차, 만 마리의 전투 기병대, 만 틀의 전투 대포, 만 개의 전투 북을 가지고도 무너뜨리고 깔아서 뭉갤 것 같은 저 야단스러운 소리를 충분히 형용할 수 없으리라.
모래밭 위에 큰 바윗돌은 우뚝하게 외따로 섰고, 강 둔덕의 버드나무 숲은 까마득하고 어두컴컴하며 마치 물귀신과 강 도깨비가 앞을 다투어 튀어나와 사람을 놀리는 듯, 교룡과 이무기가 양쪽에서 서로 움켜쥐고 낚아채려 날뛰는 듯하다. 혹자는 말하리라. 여기는 옛날 전쟁터이므로 강물이 이렇듯 으르렁거리며 소리를 낸다고. 그러나 이는 그런 까닭이 아니다. 무릇 강물 소리란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내가 사는 연암협 산중에는 집 앞에 큰 개울이 있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어 소낙비가 한차례 지나가면 개울물이 갑자기 불어서 언제나 수레 소리, 말 달리는 소리, 대포 소리, 북소리를 듣게 되어 마침내는 아주 귀에 탈이 날 지경이었다. 언젠가 문을 닫고 누워서 소리의 종류를 다른 사물에 비유하면서 들어 보았다.
우거진 소나무숲에서 퉁소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청아한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산이 짜개지고 절벽이 무너지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들은 것이다. 개구리 떼가 다투어 우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뽐내고 건방진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치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놀란 마음으로 들은 것이다. 찻물이 화력이 약하고 강함에 따라서 각기 보글보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아취 있는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거문고가 가락에 맞게 소리가 나는 것처럼 똥땅거리는 물소리, 이는 애잔한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종이 창문에 문풍지가 떠는 듯 파르를 하는 물소리, 이는 의심하는 마음으로 들은 때문이다. 모두 그 바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까닭은 다만 자신의 마음 속에 어떤 소리라고 이미 설정해 놓고서 귀가 소리를 그렇게 듣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한밤중에 한 가닥 강물을 이러저리 아홉 번이나 건넜다. 강물은 장성 밖의 변방에서 흘러 들어와 장성을 뚫고 유하와 조하, 황하, 진천 등 여러 가닥의 강물이 한군데 모여 밀운성 아래를 지나서 백하가 되었다. 나는 어제 배를 타고 백하를 건넜는데, 그 곳은 바로 이 물의 하류였다. 내가 아직 요동 땅에 들어서지 못했을 때는 바로 한여름이라, 뙤약볕 아래 길을 가는데 갑자기 큰 강이 앞을 막았다. 붉은 흙탕물이 산더미처럼 밀려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런 경우는 대체로 천리 밖에 폭우가 내린 까닭이다.
물을 건널 때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속으로 사람들이 고개를 젖히고 하늘에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가 생각했다. 한참 뒤에야 알았지만 물 건너는 사람들이 넘실거리고 빙글빙글 빨리 돌아가는 강물을 보면, 마치 자기 몸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고 눈은 강물과 함께 따라 내려가는 것만 같아서, 갑자기 현기증이 생기고 몸이 빙글 돌며 물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고개를 젖히고 우러러 하늘을 보는 까닭은 하늘에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곧 물을 피하여 보지 않으려 함이다. 어느 겨를에 경각에 달린 생명을 위하여 기도를 드릴 경황인들 있을 것이랴. 이토록 위험하다 보니 물소리를 듣지 못하고, 모두들 말하기를 '요등의 벌판은 넓고 펀펀하기 때문에 물소리가 요란하게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물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요동 땅 강물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밤에 건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낮에는 눈으로 물을 볼 수 있으므로 눈은 오직 위험한 데만 쏠려 바야흐로 벌벌 떨면서 눈으로 보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판인데, 어찌 귀에 소리가 다시 들리겠는가?
오늘 나는 밤중에 물을 건너는지라 눈으로 위험을 볼 수 없으니 그 위험은 오로지 듣는 데만 쏠려 귀가 바야흐로 무서워 부들부들 떨면서 그 걱정을 이기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오늘에서야 도 道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도다. 마음에 잡된 생각을 끊은 사람, 곧 마음에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육신의 귀와 눈이 탈이 되지 않거니와, 귀와 눈을 믿는 사람일수록 보고 듣는 것을 더 상세하게 살피게 되어 그것이결국 더욱 병폐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오늘 마부인 창대가 말발굽에 발이 밟혀서 뒤에 따라오는 수레에 실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말의 고삐를 늦추어 혼자 말을 타고 강물에 들어갔다. 무릎을 굽혀 발을 모으고 안장 위에 앉았으니, 한번만 까딱 곤두박질치면 그대로 강바닥이다. 강물을 땅으로 생각하고 강물을 옷이라 생각하며, 강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강물을 내 성품과 기질이라고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 까짓껏 한번 떨어지기를 각오했다. 그랬더니 내 귓속에는 강물 소리가 드디어 없어져 무릇 아홉 번이나 강물을 건너는데도 아무런 근심이 없었다. 마치 안방의 자리나 안석 위에서 앉고 눕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옛날 우 禹 임금이 강물을 건너는데 타고 있던 배가 황룡의 등에 올라앉는 위험을 당했다. 그러나 죽고 사는 판가름이 이미 마음 속에 먼저 분명해지니, 그의 앞에는 용인지 도마뱀인지 족히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소리와 빛깔이란 내 마음 밖에서 생기는 바깥 사물이다. 이 바깥 사물이 항상 사람의 귀와 눈에 탈을 만들어 사람으로 하여근 이렇게 똑바로 보고 듣지 못하게 만든다. 더구나 한세상 인생살이를 하면서 겪는 그 험하고 위태함을 강물보다 훨씬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문득문득 병폐를 만듦에 있어서랴. 내가 장차 연암협 산골짝으로 돌아가 다시 앞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이를 시험해 보리라. 또한 자기만 유익하게 하는 처신에 밝고, 자신의 총명만을 믿는 사람에게 이를 가지고 경고하노라.
* 눈에 띄는 물건들( 다시볼 부분)
여행 중에 먹은 음식들
1권, 433쪽: 능금 열 다섯 개, 사과 합해서 열 다섯 개: 능금과 사과가 다른 것인가?
1권 481쪽: 불수감, 화고( 중앙절에 먹는 음식 대추와 밤을 박아 넣은 떡)
2권 69 쪽:8월 13일의 일기, 자양차(황봉주, 여지즙)
77쪽: 향고, 용안, 여지 (황교문답 중에도 있음):
132쪽: 반산홍시(계주 반산에서 나오는 홍시, 사각형에 홈이 파지고 밑에는 받침대 같은 것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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