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누구라도 쓸 수 있는 한 권의 책- 2011년의 책읽기

자몽미소 2011. 10. 24. 17:42

 

 

책을 읽고 내 생각 (2011년 10월 24일)
*줄거리: 광고회사 일로 바쁜 와중에 주인공은 고향의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입원 소식을 듣는다. 이번에 두 번째로 쓰러진 것이어서 아버지의 임종도 생각할 수 밖에 없던 주인공에게 어머니는 아버지가 썼다는 소설의 원고를 맡긴다. 수 년 전 주인공이 소설을 써서 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버지의 소설을 아들이 꼭 읽고 무언가를 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소설의 시간은 아버지가 죽기 전 3일간이지만, 아버지가 쓰고 남긴 글은 아버지의 생애 시간이다. 30년  앞선 시간의 역사를 아버지의 글에서 읽는 주인공은 여러 면에서 잘 몰랐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이 생각하기에 아버지의 글은 소설이 되기에는 너무나 미흡하고, 아버지가 자기의 이야기를 소설로서 생각하고 있는 것조차 부끄러운 것이라 여긴다. 그렇기에 아들은 아버지의 글을 진솔한 자기 이야기가 아닌 소설로 만들기 위해서 창작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들은  아버지가 문학과 출판 시장의 생리를 너무도 모른 나머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인생 이야기를 소설로 착각한 것이라고 여긴다.

사실, 주인공은 수년 전 문학상을 받은 이후 더 이상 두번째의 책을 못 내고 있었다. 소설은 허공에 거짓을 짓는 것이라고 믿는 아내는 현실보다 문학이라는 세계에 마음을 두고 있는 남편을 못 미더워 하고 종내는 이혼을 요구하였다.  주인공이 생각하기에 문학은 그저 자기 사는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출판 시장은 얄밉도록 냉정하고 그에 부응하기란 녹녹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자기에게 소설 한 권을 남긴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즐겁지만 듣는 사람은 지루한 이야기를 잔뜩 써놓고 아버지는 그것을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문학 품이라고 남긴 것이다.

 

아들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옆에서 아버지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아들은 아버지와 살갑게 지내지 못햇고, 아버지의 직업이 무엇인지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 그러한 모든 기억이 아버지의 글과  병치되면서 30년을 사이에 둔 세대간의 갈등은 골이 깊어졌다.

그러나 점차, 아버지 자신이 묘사한 아버지의 생애가 아들의 삶과 겹쳐진다. 주인공 자신도 자식과는 살갑지 못했고 도대체 편안한 인간 관계란 없는 것 같았기에 아버지와 남자, 한 세상을 살아가는 가엾은 사람으로서 둘은 공유하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 고작해야 30년이란 시간의 공백이 두 사람 사이에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 시간의 차이 때문에 그 차이에서 생긴 사소한 갈등에 쉽게 상처 받으면서 살아왔다, 고 주인공은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는 죽고, 아들은 자신이 다시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소설은 책으로 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아들에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남겨 둔 것이라고 이해한 주인공은, 아버지의 소설에 나왔던 주인공들을 자기 소설에 등장인물로 쓰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들이 아버지의 창작물이듯이 아들의 소설은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만들어졌다. 이 소설의 이름이 <누구라도 쓸 수 있는 한 권의 책> 이다.

 


 

 일본에 가서 가장 즐거운 일은 서점에 가는 일이다. 일본의 서점 중에는 <기노구니야>와< 중꾸도> 라는 서점이 마음에 드는데, 그 중에도 <중꾸도> 서점은 이용자의 편의를 생각해 주는 서점이라 여러 번 가도 항상 좋았다. 서서 보는 사람들이 다리 아프지 않도록  책장 칸마다 의자를 놓아 주었고, 얼마 이상의 책을 샀을 경우에는 서점에서 운영하는 카페 이용권도 주기 때문에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책을 보는 맛이 "무쟈게" 좋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일본의 서점을 잘 이용할 수가 없다. 일본어가 어느 단계에서 멈추었기에 일본책을 읽을 능력도 그만큼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일본에 갈 때마다 구입하기를 즐겼던 책은 취미 분야다. 월간으로 나오는 <오샤레공방>책도 2년여를 모았고, 그외 재봉 잡지도 신간이 나올 때마다 사 두었다.  관심이 있는 퀼트와 종이접기, 목공과 인테라어,요리와 제빵, 제과에 관한 것들도 한국에서 출판되는 것보다는 일본의 책을 선호하였다. 그런데 그런 책들은 글자를 굳이 잘 몰라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초보 단계의 취미 책은 사게 되지 않는다. 디자인만 조금씩 다를 뿐, 옷 만드는 법이나 가방 만드는 법이나 신간 책을 사 필요가 없어졌다. 내게  이미 있는 책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부터는 공부가 될 책들을 사긴 했는데, 일본에서는 꼭 필요하다 싶어서 구입했어도 집에 오면 잘 읽게 되지 않았다. 뭘 알고 싶다든가 새로운 관점을 파악하고 싶다느니, 순전히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이 되고 싶다는 기분으로 구입한 책들은 대학원 공부를 그만두는 바람에 시들해져 버렸다. 전공이 될 뻔한 음식 문화 관련된 책들도 꽂아 두고 읽지 못했다. 전공으로 하지 않더라도 읽으려면 읽을 수도 있는데 역시 일본어 읽기 능력의 문제가 독서를 가로 막았다.

 

일본에 갔던 날 저녁에 텔레비젼을 봤는데,  일본 전국에 <아름다운 자세> 붐을 일으키는 남자가 나왔다. 다음날 서점에 갔더니 그 사람은 이미 책과 DVD로 서점 한 쪽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좋은 자세에 관한 것은 알아두면 좋은 것이라서 책을 구입했는데, 쉽게 잘 읽혔다.  읽기 좋고 이해하기 쉽게 큰 글자에다 그림과 사진이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게 자랑할 건 아니지만, <어라! 내 일본어가 좀 늘었다!> 하는 감탄은 저절로 하게 되었다. 남편 또한 업무차 시내를 다닐 때, 내가 전철 이용도 곧잘 하고,역 이름도 잘 알고,  일본에 사는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에다가 사람들과 만날 때도 재빨리 알아듣는다며 어느샌가 실력이 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해 줘서 뿌듯해졌다.

 

그런 바람에 뒷 날은 서점에서 문학분야의 책이 있는 칸으로 가서 기웃 거렸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잘 읽었다고 좋아했던 작가들이 어느 사람인지를 한 눈에 확 알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번역된 소설 책에는 작가의 이름이 한글로 나오기 때문에 내 머리 속엔 <히가시노 게이고>, <요네하라 마리>, <히라노 게이지로> 등의 일본 이름이 흘러 다녀도 그 이름을 한자로는 어떻게 쓰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걸 일본 서점에 가서야 알았다. 그러다가  <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 중 "東野 "글자가 눈에 띄었다. 며칠 전 읽었던 <새벽의 거리에서>가 영화화 된다며 커다란 포스터를 붙였고, <히가시노 게이고>가 내놓은 소설들이 현대소설 쪽에 줄줄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明日의 記憶 의 작가"라는 안내글을 보게 되었다.

<내일의 기억>은 5년 전, 일본에 왔을 때 영화를 보고 나서 일본 소설을 원서로 읽겠다고( 포부도 크게)구입했던 책이었는데 그해 읽다가 말았고,작년에도 읽다 말았었다. 300 페이지가 넘는 장편을 꾸준히 읽지 못한 것은 문장을 음미하지 못하고 글자만 읽는 독서에 스스로 지쳐 버린 탓이었다.

<누구라도 쓸 수 있는 한 권의 책>은 150 쪽에 지나지 않았고, 내가 읽기 좋게 글자도 컸으며,  책에 관한 이야기라면 읽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운동이나 미용, 취미에 관련된 실용서말고 제대로 된 문학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쓸 수 있는 한 권의 책>은 "죽음"을 주제로 해서 6 명의 작가가 각각 소설을 쓴 것 중의 하나였다. (死樣: 시니사마-테마경쟁 소설), 작가는 오기와라 히로시.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5 명의 작가들의 책 중 하나를 골라 읽으려고 하다가 이 작가가 쓴 다른 책을 골라왔고, 오늘은 그의 전작인 <내일의 기억>을  일본어 책으로 읽고 있다.

 

 

 

 

 

 

새로 구입한 책- <사요나라 그리고 곤니찌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