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것, 삶이 보이는 이야기에 있다.
그것이 한 사람을 대면하고 나누는 말 속에든
이렇게 화면에서 글로만 만나는 온라인의 세계에서든
문학이든, 문학의 옷을 입은 그 무엇이든
나는 그 속에 솔직함과 이야기가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나도 그 앞에서 내 속의 아픔과 기쁨과 배반과 희망을 꺼내 볼 수 있다.
부끄럽게 꺼내어 햇빛 쏘여보는 오후의 안락이거나 장차
다가올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나는 점점 더 옹졸하게도
솔직한 것, 삶이 있는 것에만 거친 손을 내민다.
시집을 사서 만족하기 어려웠는데 오랜만에 시어야 할 시들을
써 준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좋다.
전술보행
꿀벌들이 제 집을 찾아들 때
닝닝거리며 날개짓 소리 더 커지고
상하좌우 불규칙한 진자의 움직임을 보이는 까닭은
천적으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나 또한 집에 들어가는 길에
고래고래 목소리 높아지면서
좌우로 기울어 흔들리며 가는 까닭은
세상으로부터
모진 세월로부터 이 한 몸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군대서 배운 전술보행
절대로 똑바로 가지 말고 좌우로
불규칙하게 비틀비틀 뛰어야 살아남는다는 교범을
민방위 대원이 된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는이 시퍼런 상무 정신
절대로 똑바로 가지 말자
똑바로 가면 죽는다.
------------시집 <상처적 체질> 103 쪽
셀라비
불꺼진 술집에 매달려 문 두드리는 술꾼처럼
재혼한 옛 부인 찾아가 그 낯선 갓난아기 앞에서
훌쩍훌쩍 울음을 쏟아내는 실직자처럼
계산 끝나자 얼굴조차 까맣게 지워버린 술집 여자에게
밤마다 편지를 쓰는 시인 아무개처럼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것이다
미리 우산 들고 외출했다가
막상 비가 내리면 택시에 우산 두고 내리는 사람처럼
선잠 깨고 일어나서 부리나케 등교하던 일요일 오후처럼
죽은 나무에 물 주는 내 수상한 집념처럼
----------- 시집 <상처적 체질> 113쪽
'字夢のノート(공책) > 자몽책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유-2012년 책읽기 (0) | 2012.07.01 |
---|---|
다마모에/2012년의 책 읽기 (0) | 2012.06.28 |
질투/로브그리예- 2012년에 못 읽는 책 (0) | 2012.06.21 |
칼 같은 글쓰기- 2012년의 책읽기 (0) | 2012.06.16 |
아니 에르노의 책 두 권- <남자의 자리>와 <한 여자>-2012년의 책읽기 (0) | 2012.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