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고 내 생각
소설 속 인물들의 내면을 잘 읽어내야 하는 이 소설은 인물 내면의 층위가 여러 겹이고, 기복이 커서 인물의 생각을 일관되게 기억하고 싶은 독자를 힘들게 한다. 게다가, 소설의 전체가 시간과 사건을 아우르는 이야기에 있지 않고, 인물의 마음 속을 파고들기에 더 읽어내기 어려웠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서로 각각 다른데도 작가의 내면 묘사방법은 인물마다 동일한 기술을 썼기 때문에, 인물의 개성이 보이다가 말고 소설기법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이야기로서의 소설을 읽으려고 하면 더더욱 안 읽히는 소설이었다. 1927년에 세상에 나온 이 소설은, 문학사에서 눈에 띄게 실험적인 기법으로 쓰여졌다는 평판을 얻었지만, 작가 스스로 자부하는 만큼 잘 쓴 소설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망설여진다. 나는 이미 이 소설이 발표되던 때로부터 더 많이 발전한 소설을 읽는 현대독자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제 1장에서 램지부인은 내일 날씨 때문에 등대에 갈 수 없다는 남편 램지의 말과 남편에게 동조하는 손님 탠슬리씨의 태도가 몹시 불편하다. 남편의 직설적인 말은 등대에 갈 일에 설레고 있던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버지의 태도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아이 여덟의 어머니인 램지부인은 온화한 사람으로 주변 이웃들을 돌보고, 아이들에게 자애로우며 남편을 존경하면서 심기를 살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녀의 타고난 성품과 손길은 주변을 평화롭게 한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겉모습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그녀의 내면은 끊임없는 번민과 자아의식으로 파도를 타고 있으며, 보여지는 만큼이나 아름답고 평화롭지만은 않다. 그녀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도 그녀를 존경하고 칭송하지만 그녀는 특히 사람들 때문에 자주 피로에 쌓인다. 그러면서도 램지부인은 자신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다. 들끓는 생각 중에서도 자기 내면과 화해하고 사람들을 돌보는 자기 이미지에 충실하려 한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갖고 사람들과 교우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상대의 마음도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그녀가 생각하는 대로는 아니다. 그녀가 누구를 동정하고 있다면 그 어떤 사람도 그녀를 동정하며 그녀와 교유한다. 소설 속 인물들의 내면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는 서로의 오해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간관계가 보인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고, 제 1 장에서는 등대에 가기 전의 의견대립과 저녁 만찬 때의 서로 다른 생각들이 세세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제 2 장에 오면 시간은 훌쩍 10년을 뛰어넘는다. 제 1장의 팽팽한 긴장은 10년이란 시간을 건너는 사이에 삶의 허무함으로 바뀐다. 그 사이 세상을 휩쓴 전쟁이 있었고, 아이들이 죽고 중요한 인물이었던 램지부인도 죽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들의 죽음은 이미 기정사실화 되어 있고, 중요한 것은 그들이 떠난 그 자리에 남은 가족들이 오게 된다는 사실이다.
제 2장의 시작은 낡은 집을 청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집은 램지 부인이 10년 전에 어린 아들과 함께 등대에 갈 일을 기대하며 뜨개질을 하던 곳이었다. 10년 전에 그 집에서 램지부인을 도왔던 이웃의 늙은 부인으로서는 낡을 대로 낡아가며 곰팡이가 슬어가는 지금의 빈집이 바로 램지 부인과 그 가족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토록 빛나던 것들이 아무 의미 없이 삭아가고 있는 풍경, 그 속으로 다시 오려는 가족.
제 3장에서는 램지 부인을 좋아했던 릴리가 램지 부인과 그 가족을 기억하는 부분이 많다. 아들 제임스와 딸 캠은 등대에 가야 한다는 아버지를 따라 등대로 가는 여행길에 나섰고, 릴리는 그 가족과 함께 10년 전의 집에 오게 된 것이다. 등대와 빈집을 중심으로 모이는 이번 여행은 옛 시간을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등대는 더이상 아들 제임스에게 설렘이 아니었고, 등대에 무언가를 보내던 램지부인도 이미 죽고 없다. 등대를 찾아왔으나 이들에게 무슨 희망의 빛이나 회복이 생겨날까, 제임스와 캠은 아버지를 못마땅해하고, 릴리는 늙은 램지를 어떻게 대해야 될지 알지 못해 힘들다.
부인을 잃은 램지는 릴리에게서라도 어떤 위안을 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죽은 아내가 가고 싶어하였던 등대에 가 봄으로써 자신 내부의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메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그가 애쓰고 있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는 외면으로도 늙었으며 부인이 사라지자 내면은 더 초라해져 버렸다. 제 3장에서는 램지 부인과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를 깨닫게 된 릴리의 내면이 부각되었고, 소설은 그렇게 등대를 매개로 생각의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릴리를 비추는 것으로 끝난다.
등대는 자기 몸을 밝힘으로서 남들의 길을 비추는 것이다. 망망대해의 외로운 배들에게 길 안내를 하며 밝게 빛나지만 언제나 외로운 존재. 마치 이 소설의 램지부인처럼 보이는 것과 자신이 겪고 있는 것의 간극이 큰 존재를 등대로 비유한 것은 아닌가 싶다. 등대는 빛을 계속 쏘아주지만 등대가 선 자리는 바다 위의 작은 바위이거나 위태한 바위 위여서, 언제 파도에 휩쓸려 쓰러질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 빛을 보는 배들은 등대의 불빛에 안도하고, 각각의 길을 간다.
2014년 12월 1일,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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