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2015년의 책읽기(1)

자몽미소 2015. 1. 11. 12:56

 

기억을 찾아 헤매다 자기 확인이 더욱 모호해지는 남자의 이야기인 이 소설을 두 번 읽었다. 마음에 남은 건 깊게 가라앉는 슬픔.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밑줄을 그으며 떠오르던 상념은 무수했으나 그걸 독후감의 형태로 꺼내기가 어렵다. 무척 어렵다. 

우선,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쏟아내 버릴 것 같은 내 마음 저 깊은 곳의 서글픔을 건드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찾으러 다니지만, 나는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과 싸워야 하고, 나를 기억할 수 없기에 나와 가까워질 수 없는 딸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내 기억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이 책의 독후감, 특히 삶에 있어서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도 꺼낼 수가 없다.

또한, 허무한 인생에 관한 깊은 사유를 작가가 느끼는 만큼 따라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과 공간은 얼추 2차 세계 대전의 프랑스 쯤으로 짐작을 하나 왜 이들이 떠나야하는지,그리고 국경을 넘어야만 하는 절박함을 어림짐작할 뿐 공감을 할 수 없었다. 프랑스의 낯선 지명과 거리 이름도 작가가 그려내려 하는 어떤 것에 다가가는 데 방해를 하는 느낌이었다. 하물며 인물들의 조상과 그들의 이동경로는 어떤 울림도 거들어 주지 못했다. 번역가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았을 소설이다. 유럽에 살고 있다거나, 유럽의 현대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성이 있다거나, 소설에 쓰인 언어에 남다른 감각이 있다면 좀 더 다르게도 읽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작가의 가치관과 글쓰기 방법을 작가 나름대로 독특하게 고집하였기에 작가의 독창성이 돋보인다. 멀리 한국에 사는 나에게는 어렵게도 느껴지는 독창성이지만.  

 

작가의 다른 책, <슬픈 빌라>도 구입했다. 읽어보다가 이 작가에 대한 내 독서의지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서 책을 덮었다. 뭔가 내가 좀더 튼튼해졌을 때, "어떤 작가의 어떤 소설"로 읽고,  삶에 대해 성찰을 하는 한 방식으로 읽어내며, 소설이 뭐 그런 거지 할 수 있지 않는 한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애써 볼 것 같지는 않다.

 

▣책 속에 밑줄 긋기

p14.

-그가 나에게 동정심을 갖게 된 것은 그 역시-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자신의 자취들을 잊어버리고 생애의 한 부분이 단 한 가닥의 실마리라도, 아주 작은 연결점도 남기지 않은 채 문득 송두리째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p75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그들은 어느 날 무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린다. 미의 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p76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해변의 사나이'들이며 '모래는-그의 말을 인용하자면-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 고 위트는 말하곤 했다.

 

p. 121

-아무리 보아도 사람들은 벽으로 가려진 삶을 살고 있고, 그들의 친구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p129

-잠에서 깨어나 금방 꾼 꿈을 되살려내겠다고 붙잡아보려 하지만 도무지 붙잡히지 않는 꿈의 조각들처럼, 어떤 인상이 번뜩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p247

-과연 이것이 나의 인생일까요? 아니면 내가 그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어떤 다른 사람의 인생일까요?

 

p262

-한 어린 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그 소녀는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저녁 속으로 빨리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