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라틴어 교사 그레고리우스가 수업을 하다 말고 그냥 무작정 떠나는 이야기인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싶은 욕망을 간직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어느 날 우연히 헌 책방에서 리스본의 남자가 쓴 글을 발견한다. 그 우연은 리스본의 남자를 알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그 욕망이 불러올 크나큰 변화에 한 발을 내딛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글을 쓴 프라두는 리스본에 살던 남자, 그레고리우스는 그 남자와 그 남자의 사유에 이끌려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이 책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서 프라두의 인생을 추적하고 그의 생각을 사유하면서 자신을 돌아본다. 그레고리우스의 생각과 그레고리우스가 좋아하게 된 프라두의 글을 읽으며, 작가는 기억에 관한 것, 글에 관한 것, 인생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를 풀어놓았다.
그레고리우스가 안경을 바꿔 끼면서 한편 새롭게 보이는 세상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은유는 독특하였다. 새로운 것들은 혼란스럽다. 새로운 도구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한층 더 혼란스럽다. 이성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혼란, 책에서는 그레고리우스가 얕은 잠에서 보는 꿈으로 표현된다. 자지 못하는 사람, 깨어있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베른에 사는 그레고리우스와 리스본에서 살았던 프라두는 서로 닮았다. 살아내던 환경은 매우 달랐으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들, “말과 기억, 사유하는 것”
-사람들은 익숙한 삶과의 결별을 꿈꾸지만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하고 산다.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작다. 내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접어두고 있거나 억누르고 있기에 무엇인지 자기 자신도 모르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불가피하게도 떠나야 한다면 그곳에는 자신의 어떤 부분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고 싶은 목적이 있다. 더 이상 원하지 않는 무엇인가에서 떠나는 그런 행동은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필연적인 발걸음이다. 인간만이 자기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고, 진실한 자아를 탐구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누구든 자기 삶이 총체적으로 잘못 진행 된다 느끼고 지금 상황이 가망 없다고 판단되면 떠날 수 있다.
-우리 인간의 불행은 대개 감정과 판타지를 언어로 잘 다루지 못하거나 그것들을 말로 표현할 용기를 갖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언어와 사유, 기억의 문제,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룬 소설.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남이 알고 있는 나 사이의 진정한 자아찾기에 주목한 소설. 야간열차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의미하는 메타포.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도 모른다. 먼 옛날 언젠가 이 기차 칸에서 잠이 깼고, 바퀴 소리를 들었다. 난 흥분했다. 덜컥거리는 바퀴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머리를 내밀어 바람을 맞으며 사물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속도감을 즐겼다. 기차가 절대 멎지 않기를 바랐다. 어디선가 멈추어버리지 않기를, 절대 그런 일은 없기를.”
“내 칸에는 가끔 손님이 오기도 한다. 문이 닫히고 잠겨 있는데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방문객은 있다. 거의 언제나 나에게 맞지 않는 시간에 온다. 대부분 현재라는 시간의 손님들이지만, 과거에서 온 손님들도 많다. 이들은 자기 형편에 따라 마음대로 오가며 나를 방해한다.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구속력이 없으며, 잊을 운명이다. 그저 기차에서 하는 일상적인 대화들. 몇몇 방문객은 소리 없이 사라지지만, 끈적이고 냄새나는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다. 환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럴 때면 이 칸의 모든 것들을 떼어내고 새것으로 바꾸고 싶다.
여행은 길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다. 아주 드물게 있는 소중한 날들이다. 다른 날에는, 기차가 영원히 멈추어 설 마지막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나는 이 책을 여러 개의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문장마다 깃든 사유의 깊이를 어루만지기 위해서는 심호흡하듯 느리고 깊게 글자들을 몸속으로 들여놓아야 했다. 삶과 기억에 관한 글들은 자주 벅차서 따라가기 힘들었고, 동의가 쉽지 않은 것도 있었으나,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미처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한 작가, 또는 주인공들이 고마웠다.
그들의 삶에 대한 사유에 힙 입어 나는 내가 외면하고자 하였던 것들, 어떤 기억과 어떤 시간들 속의 나를 다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마음을 바꾸었다. 앞으로도 내 안에 깊게 묻힌 것들을 파헤쳐 그것이 무엇인가를 찾은 작업을 계속하리라, 나의 내면을 위한 고고학자가 되는 일이 내게는 틀리지 않은 일임을, 이 책 속의 인물들이 알려 주었다.
지난 주에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먼저 보았는데, 책과 영화는 아주 다른 문법을 가진 언어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영화는 영화대로 좋았고, 책은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읽을 수도 있는 느린 문장이 있어서 더 좋았다.
이 책의 장면들, 그레고리우스가 멈칫해서 떠올리는 장면과 꿈 속의 여러 장면, 자기도 모르게 불끈 올라오는 여러 감정들은 이 책을 덮고도 자주 생각이 날 것 같다. 어떤 것들은 내가 했던 것을 이 책의 인물, 또는 작가가 대신 써 주었다는 느낌도 좋았다. 그래서 이 책은 천천히, 다음 기회엔 그 사이 달라진 내 생각과 더불어 다시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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