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마침, 오늘 2018년 7월 마지막 날!
*베트남 전쟁이 끝났다는 말을 들었다. 1975년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 옆 반의 남자 선생님이 우리 교실에 와서 이야기 하였다. 베트남 전쟁이 끝났다는 걸 왜 말해 주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베트남이 이제까지 전쟁 중이었다는 것도 몰랐었다.
우리 마을에는 월남 갔다 온 사람이 있었고, 월남 치마는 아주머니들이 갖고 싶어하는 옷이었다. 그 월남이 베트남인 것이 이해되지 않은 채,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한국 작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책을 덮은 후에는 곧 그 전쟁과 나라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4. 3 문학인 대회 때 제주를 찾아왔던 바오 닌을 봤었다. 그때 책을 사서 오늘 읽기를 마쳤다.
*전쟁이 모든 것을 파멸시킬 수 없다.
*전쟁으로 전쟁을 막을 수 없다.
■어떤 폭력도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글은 폭력에 복수하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 폭력의 시간에도 사람이 살았음을 기억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책의 글 옮겨 쓰기
제 8장. 319 페이지.
우리 동네의 작가는 이곳을 떠날 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수시로 사라졌었다. 일주일일 때도 있었고, 몇 달일 때도 있었다. 이번에는 몇 년일 수도 있다. 심지어 영원히일 수도 있다. 그것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니고, 또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법을 아는 사람은 하늘의 바람처럼 수많은 운명의 계기와 수많은 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떠나던 날, 문을 열어둔 채 나갔다. 다음 날 동틀 때 북풍이 창문으로 밀려들었다. 뿌연 먼지와 부슬비가 방 안으로 들어와 유행에 뒤떨어진 삶의 흔적인, 몇 안 되는 투박한 가구들에 내려앉았다. 난로에서 석탄재가 날아오르고, 책상과 책꽂이에 있던 서류들이, 그리고 책상 구석에 쌓여 있던 원고더미들이 허공에 흩어져 날다가 바닥 여기저기로 떨여졌다. 방에서 함께 밤을 보냈던 그날의 여인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혼자 남겨져 있었다. 그녀는 어지럽혀진 빈방을 소리 없이 정리했다. 바닥에 뒤죽박죽 떨어져 있던 종이들을 모두 주워서 원고 뭉치와 함께 쌓았다. 산더미가 되었다. 나중에 동네 사람들은 그녀가 낑낑거리며 산더미를 들고 그녀의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모든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가 왜 집을 나간 것인지, 어디로 간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는 누구에게 말할 수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 단지 더욱 어둡게 무거워진 침묵으로 슬픔 심정을 토로할 뿐이었다. 흐르는 세월도 상관하지 않고, 떠나기 전 그가 원고를 모두 난로에 던져 넣으려 했던 사실도 잊고서, 그녀는 숨 막힐 정도의 엄청난 원고 더미를, 순서도 헝클어진 채 먼지를 뒤집어쓴 원고 더미를 처음 가져온 그대로 정성스레 보관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가 빙의 부적을 써서 재산을 지키는 신이 되었다고 농담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 동네의 작가에 대핸 벙어리 여자의 남모르르 기다림은 베갯머리에 작품을 늘 놓아둔 유일한 독자로서의 충절 같은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세상 밖으로 절대 나오지 않을 그 작품은 한 독자에게 최소한의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달리 말하면 한 독자의 마음 속에 그 가치가 보증된 셈이다.
나중에 나는 수단을 써서 벙어리 여자의 옥탑방에 보관되어 있던 모든 원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녀가 한 장 한 장 인내심을 갖고 세심하게 읽었을 은밀한 보증이 있어서 작품에 대해 꽤 안심했다. 물론, 나도 그녀처럼 꼼꼼하게 읽었다. 동네의 평범한 사람들이 기이하다고 평하고, 설명할 수 없는 현상으로 지칭하는 인물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사람드른 그를 일컬어 귀신 들린 놈, 지난 시대가 낳은 후유증이라고 했다. 그는 참회를 위해 마시고, 삶의 수많은 우여곡절과 무수한 죄악을 묻어 버리기 위해 마셔 대는 알코올 의존자였다. 여자의 사랑과 구원을 받은 자였지만, 그의 영혼은 남자도 사랑하고 여자도 사랑했다. 동네의 마지막 공식 소자산 계급으로 반항적이고 극단적이었지만 지극히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자였다. 대체적으로 그러했는데 어느 것도 분명한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들 대부분이 하나의 똑같은 감동만 느끼는 이 시대에 나는 엇박자의 성격을 가진 인물들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곤혹스럽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을 최선을 다해서 읽었다.
처음에는 평소의 독서 습관대로 잘 읽어 나갈 수 있게 글의 순서를 찾고자 정리에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나 무모한 짓이었다. 순서가 아예 없는 듯했다. 어떤 페이지든 거의 글의 시작이었고, 어떤 페이지든 글의 마지막인 듯했다. 어쨌든 페이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해도, 불에 타거나 벌레가 먹어서 없어진 부분이 있다 해도, 작가가 버린 ㅂ페이지가 원고에 섞여 있다 해도 헝클어진 영감에 의거한 창작물임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을 광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한 페이지씩, 한 단락씩 읽을 때는 내용을 따라갈 수도 있고, 때로는 꽤 감동을 받기도 했다. 익숙한 전선이지만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지명들이 나를 감동시켰다. 인접 거리에서 벌어지는 전투 풍경, 병사들의 세세한 일상, 페이지마다 짧게 스쳐 지나가지만 분명하게 드러나는 동료 대원들의 면모가 감동적이었다. 그렇지만 글의 맥락이 수시로 끊겼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줄거리로 이어지지 않았다. 완전히 별개의 그림들이 대략적으로 엮인 듯했다. 시간의 틈 속으로 떨어지듯 페이지 중간에 어떤 이야기가 갑자기 끊기고 깨끗이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그것을 글쓴이의 사고력 결함이 드러나는, 글쓴이의 역량 부족이 드러나는 구성 실패, 맥락 부족, 포괄성 부족이라 부른다. 한 정찰 소대의 모습을 여러분도 상상해 보라. 앞 페이지에서 그들은 상대방을 몹시 두렵게 만드는, 전투력이 감한 섬멸전의 병사들인데, 뒤 페이지에서는 세상에나, 그들은 터무니없이 암담하고, 너무 겁에 질려 말을 더듬고, 몹시 허약하고 멍청한 인물로 변한다. 심지어 작가는 악몽과 함께 그들을 울창한 숲 속과 어두운 계단 구석을 떠돌아다니는 귀신으로, 서글픈 저승사자로 만들기도 했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죽었다. 그런데 전후 소시민들의 몰락한 삶 속에서 다시 나타나 다리를 질질 끌며 거리를 다니고, 칠칠맞게 산다. 그리고 결국 작가와 함께 그들은 어린 시절로, 어린 여자 친구와 함께, 전쟁 이전의 해맑고 순수한 것에 대한 믿음과 함께, 예전의 천국 같은 세상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 길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스러워한다. 슬프게도, 그들은 훌륭한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었지만 오히려 영원히 고독하게 되고, 짝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사랑할 가능성마저 잃게 되며, 과거의 충격에 끝없이 시달리면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마저도 퇴화하게 된다.
그리고 작가 자신은 '나' 라고 칭했지만 정찰대원들과 혼령들과 숲에서 발굴한 유해들과, 문화적 삶과 동떨어진 아이들과, 머리속은 편견으로 가득 찬 자유로운 아이들 중에서 누가 '나'인지 정확하지 않다. 나도 모른다.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단지 이해하는 것은 왜 작가가 자신의 창작물을 출판할 방법을 찾지 않았는지, 어째서 작가가 단지 쓰기 위해서 쓰고. 생각하기 위해서 생각했으며, 절대적으로 비밀이 보장되는 벙어리 여자에게 모든 원고를 맡기면서 자신의 혼란스런 이상을 세상 밖으로 파묻어 버리게 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점점 내 나름의 방식대로 작품을 읽게 되었다. 이 산더미 같은 원고를 읽는 단순한 방법은 순서와 상관없이, 놓여 있는 대로 한 장씩 읽는 것이다. 그것은 우연의 연속이다. 놓여 있는 것이 원고든, 편지든, 수첩에서 찢어 놓은 메모든, 일기든, 글의 초안이든,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읽은 후, 다시 펼쳐저 차례차례 한 장씩 읽었다. 나는 그 속에서 사진, 시, 손으로 베낀 악보, 이력서, 훈장 증명서, 상이군인 증명서, 2 번 카드에서부터 에이스 카드까지 모두 얼룩져 있는, 구겨진 카드…를 보았다.
내 나름의 방식은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우리 동네의 작가가 버리고 간 작품이 지금 눈앞에서 원래와는 다른 구조로, 그리고 그의 결코 허구적이지 않은 실제적 삶이 조화롭게 투영되어 나타났다. 나는 우연하게 놓인 순서대로 작품 거의 전부를 베꼈다. 글자색이 바랬거나 글씨를 휘갈겨 썼거나, 내용이 분명하게 겹쳐 있거나, 제 3의 사람에게 쓴 편지로 이해가 어렸거나(어려웠거나 의 오타인가?), 잡다하고 난해한 메모들을 제외했을 뿐이다. 원고에서 나는 절대 한 글자도 추가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큐빅 퍼즐 놀이를 하듯 페이지드를 회전시키고 비틀었을 뿐이다. 그러나 모두 베낀 후에 다시 읽어 보니 내 자신의 이상과 감각과 심지어 내 자신의 경우까지 보여서 당황스러웠다. 우연한 문장 배열이 우연히 나와 작가의 사상을 일치시키고, 사뭇 친한 사이로 만들었다. 심지어 전쟁 때 그와 서로 알고 지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랬다. 그는 끔찍하게 변했지만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키가 크고 말랐으며, 얼굴은 못생겼고 말수가 적었다. 그리고 눈빛이 야만적이었다. 말린 가죽처럼 쭈글쭈글한 피부는 건조하고 햇볕에 그을렸으며 땀구멍이 컸고 총상을 입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입은 꽉 다물고 있었다. 뺨에는 광대뼈 가까이 총알이 스쳐 지나간 상처로 골이 패어 있었다. 우리는 어느 날 전장 길에서 만났다. 어깨에는 기관총을 메고, 등에는 배낭을 지고 붉은 먼지와 진흙 속을 함께 걸었다. 맨땅을 걸었다. 베트남-미국 전쟁에서 나는 그와 같았고, 평범한 병사들과 같았다. 같은 운명으로 수많은 우여곡절, 승리와 패배, 행복과 고통, 잃은 것과 남은 것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우리들 개개인은 전쟁에 의해 각자의 방식으로 파멸되었다. 개개인이 마음 속에서 개별적인 전쟁을 시작한 날부터 공통의 전투와는 전혀 다른 싸움을 따로 하게 되었다. 사람에 대해, 전쟁 시절에 대해 가슴 깊은 곳의 인식이 지극히 달랐으며, 당연히 전후의 운명이 제각각 달랐다. 우리가 서로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점은 전쟁에 쫓기고 쫓기는 심각한 과정 속에서, 서로 완전히 같아 보이는 환경이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처지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슬픔, 전쟁의 거대한 슬픔,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행복보다 고귀한, 고상한 슬픔을 가지고 있었다. 슬픔 덕에 우리는 전쟁을 벗어날 수 있었고, 만성적인 살육의 광경, 무기를 손에 쥔 괴로운 광경, 캄캄한 머릿속, 폭력과 폭행의 정신적 후유증에 매몰되는 것도 피할 수 있었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마도 전혀 행복하지 않고 죄악이 가득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길이다. 왜냐하면 평화로운 시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분명 그것이 작가가 작품에서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렇지만 나에 비해서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특히 전쟁의 슬픔이 더욱 심각했다. 슬픔은 오늘의 삶을 위해 조금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지 않았다. 그에게 주어진 삶의 세월은 계속 뒷걸음질만 쳤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듯 희망 없는 정신세계가 만들어 낸 비상식적이고 폐쇄적이고 비관적인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그가 영원히 과거를 향해 돌아가는 길은 사뭇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의 영혼은 지난날에 대한 망각 없이, 영원히 봄날 같은 감정 속에 살아갈 것이다. 오늘날엔 다 묻히고, 시들고, 변형되었지만, 그는 사랑으로, 우정으로, 동지애로, 우리로 하여금 전쟁의 수천수만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준 그 정서를 회복할 것이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그의 감흥과 낙관에 질투심을 느낀다. 감흥과 낙관에 읙하기에 그는 고통스런 세월을 영원히 찬란하게 살 수 있고, 불행한 나날을 인간애로 충만하게 살 수 있으며, 우리가 왜 전쟁에 발을 디뎠어야 했는지, 우리가 왜 모든 것을 견뎌야 했고, 모든 것을 희생해야 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그가 살아가는 날은 모든 것이 여전히 아주 젊고, 건강하며, 해맑고, 진실된 날이다.
-2018년, 8월 1일, 책의 마지막 장을 옮겨 적는다.
▣책을 읽고 내 생각
1장 부터 7장 까지의 주인공 "끼엔"의 이야기는, 현재 상황과 그의 회상을 왔다갔다 하였다. 그 바람에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잡기가 어려웠다. 어느 장을 읽어도 앞장의 이야기가 다시 반복되는 느낌이라 중점적인 사건이 무엇인지도 종잡을 수 없었다.
베트남의 지명도 익숙하지 않았다. 전쟁터를 설명하고 있지만 그 당시의 전쟁의 흐름을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북쪽의 부대가 이동하고 중간에 폭격을 당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는 전투가 일어났어도 그 일이 다음의 다른 일과 어떻게 연관될 것인지를 상상하며 읽어낼 수 없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이름은 더욱 더 난해한 낱말처럼 여겨졌다. 어떤 때는 사람의 이름인 줄 모르고 한국어의 꾸밈말인가 오해하기도 하였다. 두 번 읽어야 하는 문장이 가끔 있었다.
공들여 읽었지만 여러모로 힘이 드는 소설이었다.
그러다가 8장에 와서야 눈이 밝아졌다. 8장의 화자는 내가 어려워했던 것을 모두 경험하였으며 그래서 앞에 이야기한 것들이 우리 동네 작가의 글을 짜깁기 한 것임을 밝힌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내가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던 것들이 이런 것 때문이었다는 말이지? 하며, 8장의 화자에게 동의를 하다 보니, 이는 이 소설의 기막힌 기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에서 읽을 때는 주인공 끼엔의 이야기가 작가 바오 닌의 것인가 생각했지만, 끼엔을 우리 동네 작가로 칭하는 8장의 작가가, 바오 닌인가 하게도 되었다. 물론 바오 닌은 그 앞의 끼엔과 8장의 작가 모두를 만들어 낸 소설 밖 작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이 8장의 반전 효과가 소설의 맛을 확 살려 주었다.
어지럽던 꿈에서 깨어나 꿈에서의 맥락없던 이야기에 하나 하나 의미를 부여해주자, 꿈이 찬란하게 살아났다. 우리 동네 작가 "끼엔"은 8장의 화자가 찾아낸 사람이고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이지만, 바오닌 작가 자신일 수도 있고 베트남의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다. 전쟁을 겪으며 슬퍼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둥지를 튼 사람이었다. 그 슬픔 덕분에 전쟁의 광기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그러나 그 전쟁 때문에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죽을만큼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소설의 '끼엔'이 아닐까.
책을 덮으며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해진다. 전쟁으로도 밀어내지 못했던 인간의 깊은 슬픔이 당도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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