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들고 쓰려고 하면 쓸 거리가 무진장 많은 듯하고, 이걸 쓸까 저걸 쓸까 고민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무엇을 써도 시시하다는 태평한 생각이 일었다. 그렇게 잠깐 멈춰 있으면 이번에는 지금까지 쓴 것이 완전히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왜 그런 것을 썼을까 하는 모순이 나를 조롱한다.( 나쓰메 소세키 산문집, 125쪽)
조금전까지 나는 글을 쓰려고 하고 있었다. 머리 속에서 맴도는 기억의 말과 그에 따른 이미지를 꺼내서 문장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쓸 것이 있다고 생각했고, 써보고 싶었고, 써두어야 한다고도 생각했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러니까 나의 기억에 있는 그 사람에 대해서 내 머리속 기억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을 이어 하나의 이야기로 간직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억의 파편들은 문장이 되기엔 힘이 부족했다. 가까스로 문장이 된 것들이 몇 개 있었지만 이야기가 되기에는 힘이 또 부족했다. 부서진 기억, 애매한 표현의 문장들이 섞이면서 머릿속을 휘저었다. 이윽고 내가 어떤 기억을 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조차 내 속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되었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흙탕물이 가라앉아 맑은 물이 떠오르듯 그 곳에서 말끔한 문장이 걸어나올 것 같았지만 노트북을 열고 화면을 띄우자 기억들은 환한 액정 화면 때문에 놀란 것처럼 재빨리 어둠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기억을 문장으로 변환시키지 못한 나는 내 글쓰기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지, 라고 생각하다가 내 기억이 세상의 빛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기억에게도 자존심이 있어서 자기 모습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자기를 지키고 싶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오늘 오전엔 책을 읽지 말고, 글을 써야지 했던 마음을 접었다.
수영장에 들어갔다가 수영은 못하고 물만 잔뜩 먹고 허우적대다 나온 것 같은 마음도 들어서 나는 글을 잘 써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 같았다. 헤엄도 못 치는데 멋진 폼으로 수영을 하려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나를 나무라고 싶었다. 글쓰기의 물가에서 영원히 쭈뼛거리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생을 마감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막고 싶어서 오늘은 보지 않으려 했던 책을 펴들었다. 그리고 저 문장을 보았다. 잘 되지 않을 때는 더 기다려봐야지 다시 마음을 먹고, 나오고 싶어하지 않는 내 기억을 좀 더 내버려두기로 하였다.
'記憶の時間 > 2025년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3. 먼저 챙겨야 하는 것 (1) | 2025.06.14 |
---|---|
2. 꿈을 잊다. 그리고 오늘 (0) | 2025.06.11 |
6월에 해 볼 일/ 미니멀라이프 실천 하나 (1) | 2025.05.30 |
기록다시,2025.5.27 화요일 맑음 (2) | 2025.05.27 |
벚꽃이 피면/詩をよむ (0) | 2025.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