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책, 시간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가

자몽미소 2007. 7. 4. 18:40

 

2001년 5월에 읽고 2007년 6월에 다시 읽었다.

(지은이: 로버트 레빈, 이상돈 옮기고  황금가지 출판사)

 

 서른에서 마흔까지의 시간을 생각하면 회색 하늘 아래서 비를 맞으며 서 있었던 것 같다. 비를 맞다가 햇살이 나면 독하게 입술 깨물며 달리는 내 모습도 보인다

서른에서 마흔 까지의 내 시간의 이미지이다.

 

스무 살에서 서른 살까지는 골목에 갇혀 나갈 곳을 기웃거리는 내가 보인다.  어디로든 창이 없는 방안에서 소리를 칠 수도 가슴을 두드려보지도 못하고 마음은 조마조마한 여자가 불안하게 서성인다. 그도 또한 이십대의 내 시간이다.

 

마흔 네 해의 시간을 돌이켜보자니 5분이 걸릴 때도 있고 1분이 안 걸릴 때도 있고,내 블로그, 낡은 헝겊이라는 카테고리에 쓰다 만 일기장처럼 1년이 걸리고도 스무살을 마무리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내 마흔에 결혼한  오십살의 내 남편은 결혼 전까지 자신을 느린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대신 차근차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식을 올리고 한 달의 방학 기간을 끝내고 내가 학교에 출근하게 되자 서로의 성격이 확연히 나타났다. 나는 그를 향해 느려터졌다고 급하게 화를 낸 적도 있다. 느린 그는 대답도 빨리 하지 못하고 꾹 참고 있었는데 그가 조금 화라도 낼라치면 이미 나는 화낸 사실을 잊어 먹은 후였다. 그래서 그는 웃는 얼굴에 대고 조금 전의 부당함을 하소연하지도 못하고 설렁설렁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퍽 친 듯이 성을 내는 여자를 그저 마누라 기본 성격이겠거니 하고 기다려주기까지 하게 되었다. 

기다려주기로 한 것은 최근이고 그도 사실은 마누라를 따라 성을 내 볼까 하고 시도를 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해 본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한 번도  느린 그가 빠른 마누라 말을 따라 잡을 수도 없었고 성격 또한 그러했으니 여지껏 한 번도 마누라를 이겨보질 못했다. 성을 내 봤다가 번번히 성질 더럽게 빠른 마누라에게 당하고 마니  뭐 좋은 거라고 성질 있다고 표시낼 마음도 생기지 않아 원래의 자기 성격대로 살기로 했다.

 

결혼 후의 싸움은 사랑이 식거나 하는 온도의 전쟁이 아니었다.

마누라, 나는 8시 30분까지 학교에 가야 하니 8시에는 집에서 나가야 하고 집에서 나가기 전에 화장도 해야 하니, 그 전에 청소와 설거지를 끝내고 또 그 전에 밥을 먹어야  하고 ,그러니까 밥 하기 위해서 일어날 시간이 정해졌다. 신혼인 마누라 마음은 게다가 금방 지은 따끈한 밥에다 누룽지까지 식탁위에 내고 싶었으므로 5시부터 일어나 부엌과 거실을 왔다갔다 하였고 늦게 자는 남편의 늦게 일어나는 아침잠을 깨워주려  이불 걷어 내고 신랑 옷 까지 벗겨 요 위에 털퍼덕 눕혀 놓고는 등에서 발까지 맛사지를 해 준다. 일명 잠깨우는 맛사지였다. 그러면 깨어 일어나야 할 두 다리는 나 좋다 하고 쭉 뻗어 있고 가운데 다리만 빳빳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이다. 이 노릇이야.

 

남편은 20여 년의 늙은 총각시절을 자유롭게 살았던 사람이라 일어나야 할 시간이 없었고 잠을 자야 할 시간도 없었다. 뭐든지 해야 한다해서 억지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자연스럽게 밥먹고 자연스럽게 공부하고, 자연스럽게 연구가 되고 자연스럽게 논문이 되고, 자연스럽게 수업을 하고 자연스럽게 월급을 받아  자연스럽게 사는 사람이었다. 그 자연스러운 평원에 알람종이 요란한 내가 끼어든 것이다.

 내가 내일은 5시에 일어나야 하니까 10시에는 잠을 자야 해 라고 말하면  남편은 그게 참 이상했다. 잠이 와야 자는 거지 어떻게 시간을 맞추어 잔단 말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것이었다.

내 옆에 와서 신혼부부의 은밀한 교제를 성의껏 해 주긴 했지만 나 잠든 사이 다시 책을 보러 나갔다가 몸이 잠을 자고 싶다고 알려오는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그러니까 아침에 내가 그를 깨울 때 그의 몸은 여전히 자고 싶다고 외치게 되어 있었다.

 

늦게 일어나고 늦게 몸이 깨어 늦게 일하는 것이나 일찍 일어나고 일찍 몸이 깨어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 사이에는 일하는 시간의 양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은 아침형 인간인 나와 맞추는 걸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아침밥을 먹기 위해서 일어나 앉아도 반은 자는 상태로 밥을 먹고 머리를 흔들며 잠을 �아 보내도 잠은 여전히 몸을 점령하고 있었다. 깨우긴 하되 남편이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자게 하고 싶었던 신혼부인인 나는  그래서 결혼 후 내내 지각선생이 되고 말았다. 학교 버스가 도착하는 9시 20분이 될 즈음에 학교 뒷문을 통과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달콤하고 착하던 마누라인 나는 점점 시간을 분과 초로 나누어 쪼개기 시작했다. 남편은 시간을 쪼개는 나를 따라오려 하긴 했지만, 대개 덩어리가 커서 아침밥 시간, 점심 먹을 시간, 수업할 시간, 논문 쓸 시간, 저녁밥 먹을 시간 정도로 쪼개었다. 나는 점점 돌멩이에 자갈에 모래가 되어가는데 남편은 바위처럼 꿈적을 안 하는 이 시간의 간극이여. 그래서 시간 전쟁이 우리 부부의 싸움이 되어 버렸다.

 

자동차가 하나 뿐이었으므로 따로 따로 일터에 갈 수도 없고 밥상 차려 혼자 먹고 남편 혼자 먹을 밥상을 따로 차리고 출근하는 일도 서로 하지 않기로 하였다. 남편은 무엇보다도 나와 함께 아침밥을 먹고 싶었다. 그랬으니 노력에 노력을 하여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되고자 하긴 하였으나 내가 남편의 일터에 데려다 주고 내릴 때도 남편은 눈을 감고 있다가 하품을 하고  졸리다 한 마디 더 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대개는 학교에 가서 한 시간을 책상 위에 발을 올려 놓고 잠을 잤다고 했다. 물론 지각쟁이 선생이 되어 버린 나도 학교에서 잘 졸았다. 5시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10시부터는 곤하게 잠을 자야 하였지만, 신혼 부인인 나는 대개 12시가 넘도록 잠을 자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들이 잠을 자는 시간이 12시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는지에 동의해 놓고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몸이 피곤할 때가 많았다. 몸이 피곤하면 말도 피곤해질 때가 많다. 말이 피곤해지면 사는 일에 짜증을 내게 된다. 부부간에 짜증내기,그게 바로 부부싸움이다. 우리는 그래서 시간 전쟁에 들어갔다.

 

내가 읽은 이 책은 시간에 대한 사회학적 성찰이다.

이 책에 따르면 나는 시계 시간의 인간 쪽에 속한다. 시간은 직선처럼 앞으로 쭉쭉 나가는 것이며 기차가 떠나온 뒷편의 기찻길처럼 흘러간 시간을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 남편과 같은 유형은 사건 시간을 사는 사람이다. 자기 앞에 온 일을 따라 삶을 살아낸다.

 

지은이가 시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브라질로 교환교수일을 하러 가게 되었던 때의 경험 때문이다. 뉴욕의 시간과 브라질의 시간이라고 구분될 정도로 지은이는 브라질에서 시간이 주는 문화적 충격에 휩싸인다. 나날이 그랬다. 결국 저자는 브라질에서의 1년을 시간연구에 몰두한다. 그의 주변으로 날아다니는 브라질 생활의 충격은 그래서 흥미로운 연구거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운용하는가 하는 문제가 바로 각 지역의 문화라고 본다. 제레미 리프킨의 <시간 여행>에서 '모든 문화는 그 자체의 고유한 시간의 지문을 지니고 있다. 한 민족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이 지키며 살아가는 시간으리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다>에 그가 동감하는 이유도 바로 시간을 문화적으로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래서 이 책의 독자들이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자신의 삶에서 시간은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를 고민하기를 바란다. 결국 자신의 삶의 페이스에 대한 성찰을 원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시간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도 밑줄을 그으며 읽었는데 바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할 때 그랬다. 다시 한 번 더 읽을 때도 몇 년 전 읽으며 공감했던 부분에 다시 밑줄을 긋기도 했다.

 

2001년에 읽고 2007년에 읽었으니 그 사이 내 시간은 어떻게 변하고 꾸며졌을까? 6년이라면 꽤 긴 시간이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꽤 긴 그 시간동안 꽤 변하거나  꽤 성숙하여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으니 꽤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6년 사이에 꽤 괜찮은 남자 하나가 내 인생에 스며들므로서 꽤 편안해졌다는 사실은 인정하여야겠다.

 

그 남자는 요즘 6시 반이면 일어난다. 아침밥을 먹든 못 먹든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데려다 주고 운동을 하러 간다. 매일 2시간씩 운동과 목욕을 하고 돌아와 아침 설거지를 할 때도 있다.

그 남자와 살던 부지런한 여자는 요즘 자야할 만큼의 시간을 꼭 채운다. 아침에 두 남자를 현관문 밖으로 배웅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펴진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7시에서 9시 까지든가 9시 반이든가 여자는 전날 아들이 잠을 잔 것을 확인하고 부부끼리 노느라 모자라게 된  건강수면시간 8시간을 채우고야 마는 것이다 . 말이 건강수면시간이지 실은 게을러졌다는 증거이다. 시간을 부지런히 사는 쪽과 함께 하자면 한 쪽은 또 느릿느릿 하는 게 양팔저울의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믿는 여자는 습관적으로 시간표를 짜면서 대외적으로는 팽팽한 척 해 보지만, 실지 그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날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 여자의 남편은 알고 있다.

그 여자의 남편은 절대 시간표 같은 국민학교 여름방학 숙제 같은 짓을 하지 않지만 자기에게  온 일이라면 정성껏 마중하고 배웅하며, 할 일이라고 생각한 일은 거스르는 법이 없다.  인간 기본욕구에서부터 사회생활까지 두루 그렇게 규칙적인 리듬으로 자신을 다스리며 나아간다. 굵은 다리 만큼이나 그의 시간은 굵고 튼튼해 뵌다.

 최근  그의 마누라, 한때 초침처럼 부지런한 때가 있었던 그 여자, 말을 애매하게 할 게 뭐 있어! 바로 나는 복부비만이 진행 중이고 변비가 심심치 않아 규칙적인 운동을 적극 권유받았다. 그러하지만 그 초침같은 여자, 나는  달이 바뀔때마다 불쑥 시간표만들기를 좋아하는 그 여자, 나는 오늘도 어제도 그저께도 시간표에 쓰여진 운동 시간만을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하겠지 하고 있다. 종종거리며 방과 거실을 닦고 쓸고 하던 여자가 빠져나간 자리에 배딱지인지 배따지인지  앞 뒤를 구분하기 힘든 굵고 튼튼한 허리가 만들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