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시를 읽다// 동지-이성렬

자몽미소 2007. 10. 29. 07:06

 동지(冬至)

 

                                                 이 성렬

 

 

마음 속에 품은 그림들을

그대 앞에 훌훌 풀면 짐이 되려는가.

눈동자를 지운 자화상과

구름이 멎은 들판

쓸쓸한 술집의 의자들을 말하며

그대의 발길을 떠올린다면,

이 겨울날 떠나지 못한 시계소리와

다리를 건너지 않은 낙엽 한 점을 묻으며

오후는 말없이 저물어가네.

나를 울게 했던 몇 날의 회한과

바다로 걸어 들어간 비탈처럼

외로운 것들은

사라지고 나서야 모여 사니

기쁨은 얼마나 애닯은가

가장 어두운 음영을 꺼내어

마른 손끝에 촛불을 지피네.

 

- 시집<비밀요원>(서정시학) 중에서.

 

- 아침 신문에서 이 시를 만났다. 나와는 다른 지평에 서 있을 시인의 감각에 다가서 보려다가 멈칫 거렸다.  -나를 울게 했던 회한-이라든가, -다리를 건너지 않은 낙엽 한 점- 이라는 시의 말이 내 마음 저 끝에도 있었던  탓이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마주하고도 뭔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믿고 싶을 때의 마음이었다.

 

새벽의 어둠이 옅어지며 아침이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