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나이듦에 대하여/박혜란 [책읽기]

자몽미소 2002. 10. 2. 21:46

이제 나도  불혹이라는 마흔을 한 해 앞두고 있네요.

고등학교때 칠십 고희, 마흔 불혹하며 시험문제로 달달 외고 하던 나이가 되었네요. 그래요 그때의 선생님 말이라면 마흔이 되면 이 세상 흔들림에도 초연한 눈빛을 하고 있을 줄 기대하였어요

서른 몸 젊을 때 아이 무릎에 앉히고 리포트 쓸 때, 막막한 남편의 경제 상태에서도 다가올 미래는 아마 마흔이 있었으므로 위로가 되었던가요?

그런데요,

이제 아이는 내 무릎에 앉히기엔 너무 많이 커 버려 손길미칠 곳 그닥 없어지고 가정을 흔들기만 하는 것 같던 남편과도 깨끗이 헤어져서 스스로 돈 벌고 잘 살고 있는데 아직 나는 마흔의 불혹은 멀었다 싶은 건 무어죠?

남은 어떨까요?

그 남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었답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더군요.

박혜란 씨 하면 제가 늦게 대학을 다니던 94년도에 제가 다닌 지방대학 강당에서 그녀의 강의를 들었었지요. 또하나의 문화 동인이었던 내 후배가 그 후로 그녀가 속한 동인들의 활동이라든가 여성학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알기도 했지만

늦깍이로 다시 대학엘 들어간 나로서는 아줌마로 10년 있다가 다시 일어서서 활발한 에너지를 뿜고 있는 그네가 몹시도 선망의 대상이었고 희망이었죠.

그런 그녀, 그 이후로도 왕성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풍문으로 들었지요



그런데 말이죠. 나는 조금씩 몸이 내 마음과 빗나가는 걸 느끼고 있었어요

너무 이른 게 아닌가 이러기엔 하면서도 삐꺽삐꺽 소리내고 있는 몸의 반란을 너무 예민한 신경이 너무 빨리 알아내 버린 게 탈인지도 모르죠

그러니 너무 빨리 의욕이 상실되고 그러니 너무 빨리 나이들어 버리는 게 겁이 났던 거죠.

아직 나는 불혹의 여유로움도 가지지 못했는데, 게다가 다른 일체의 그 무엇도 내 마음껏 해 본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늘 모자란 것 같은 결핌감을 달래는 것도 힘든데 벌써 나이가 든 사람의 이런저런 모양이라니.



그래도 어쩔거나 하여 한 번은 운동으로 한 번은 병원으로 한 번은 민간으로 여러 도움을 주고 있던 차에 내가 찾아가는 작은 서점 아늑한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하였답니다.

대개는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하는 편이었으나 서점에서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건 이 책의 제목이 벌써 위로가 되었던 탓일까요?



이 책은 여자의 나이듦. 아니 그것보다는 한국여자의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로군요.

대개 이 글은 여성신문에 주마다 올렸던 글들을 모은 것이고 거개 자기 주변의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 여자가 나이들어간다는 일에 대한  테마를 일관성있게 유지하며 글을 만들어 냈었어요.

가끔 교육에 관한 것, 자식에 관한 것, 그 나이에 접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 모두 한국에서의 여자들에 관한 것이고 한국에서의 교육이, 한국에서의 자식이, 또는 며느리,결혼, 시댁이 어떻게 한국의 여자와 관계하고 있는가를 그녀의  달변처럼 술술 잘 풀어내었더군요.



그리고 제가 가장 크게 위로가 되었던 부분은

그냥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어요

우리 주위에서도 늘 목격하는 일이긴 하였지만

스스로 생각이 많고 열심히 살고 늘 주변을 쾌적하게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그네도 또한 나이들어도 여전히 어른이 되기 힘들었다는 고백은

그래서 나에게도 새로운 주제를 주기도 하였지만

나의 삶에도  끊임없는 모색이 계속 되어어야만 하리란 걸 암시하였기 때문에

안심하였달까.

생각이 복잡해서 자기를 괴롭히는 게 아닌가 하며 핀잔을 들을 때가 많았거든요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는 건

계속 생각하며 다듬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였어요

나이가 들었다고 자연스럽게 우아한 고목의 자태가 되지는 않을 모양이니까요.

나를 위해 계속  노력해야 될 모양이라구요.



2002년 가을

# 03|03|29 20:4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