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2008년의 책읽기 22

자몽미소 2008. 5. 12. 17:54

 

  해방 후 일본에 남게 된 가난한 조선백성의 차별은 때때로 들어 알고 있었다. 그들이 겪은 세월을 듣고 있으면 내 가족의 이야기처럼 가슴이 싸해졌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을 �아 미국으로 간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일본에 남겨진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과는 달라 보였다. 미국으로 가는 것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선을 도모하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들을 보여주는 텔레비젼 드라마의 이미지는 언제나 환하고 오히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주눅들게 했다. 혜택이 많은 그 나라를 선망하는 이 나라의 백성들은  점점 세력을 넓혀가더니 정계 재계,예술계... 로 뻗어나가 그 나라의 하수인처럼 이 나라를 미국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 같다. 그 나라의 말을 배우려면 평생을 배워도 모자라고 평생  버는 족족 그 나라 말 배우기에 들여봐도 오린쥐 발음이 잘 안 된다. 평생의 스트레스가 그 나라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어려운 언어의 동굴을 통과하고 그 땅에서 발붙이고 사는 것 같았다. 가끔 그들은 성공 모델로 우리에게 돌아와 우리 나라에서 안 될 것을 미국에서니까 가능하게 했다는 소문을 흘린다. 미국은 대단한 나라이고 아름다운 나라처럼 보였다.

해방이 되었지만 고국으로 돌아갈 처지가 못 되어 남겨진 사람들과 잘 살고 싶어서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다른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돌아오고 싶었으나 돌아오지 못하였던 재일한국인을 바라볼 때는 일종의 연민이 있었다. 그들은 가슴 속에 조국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으로 이민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는 어쩐지 조국을 버리고 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어떤 개인이 파산을 했을 때라도 일본으로 도망가는 사람보다는 미국으로 도망가는 사람이 더 나아 보였다. 우선 영어가 되는 사람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도 되니까,

 

그래서 여전히  미국으로 이민 갔다는 말과 일본에 돈 벌러 갔다는 말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르게 들렸다.

 

그래서 신문에 이 책을 광고했을 때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조국 아닌 땅에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관한 것이었니까. 일종의 교과서처럼 이 책을 골라 타국에 건너간 이방인의 느낌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책의 뒷쪽에 이 책이 미국인들에게 주목받게 된 이유가  작년에 일어났던 조승희 사건 때문이라 했다. 저자의 상황과 이 책의 주인공이 겪었던 것들이 비슷해서 자전적 소설이라 하기도 했다. 소설이지만 소설 아닌 것으로 보기도 했다.

 

60-70 년대 한국식 아버지의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미국에서 세탁소 일을 하면서 자식 교육을 하는 아버지와 그런 부모 아래서 자기네 같은 자식이 나온 것은 로또 당첨된 것과 같다고 여기는 자식의 갈등,  백인과 유색인종의 갈등, 돈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보이지 않는 힘싸움,  책을 이끌어가는 주요 내용이다.

 

이 책의 광고엔 미국을 흔들어 놓은 소설이라고 했지만, 나는  한국적 사고 방식과 한국어에 길들여져 있어서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40대 정도의 사람은 늙은 여자와 남자로 전제하고 20대의 이야기를 쓴 것이니, 이  책의 주인공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납득할 수가 없었다. 주인공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대로 답답해 보이고, 똑똑한 사람은 그 나름의 영악함이 보였다. 지난 주에 읽은 소시오패스 인간의 모습을 이 책 안의 사람들에게서 보는 경우도 있었다. 

어쩌면 작가는 미국 뉴욕에 사는 일의 어려움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미국에 가서 사업으로 성공했더라도 그 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이렇게 비열한 곳에서 이겨낸 것이며, 자칫 잘못하다간 실패의 쓴 잔을 마시게 되는 위험 사회임을, 미래는 언제나 불안하고  각종 혜택 때문에 오히려 개인의 독립이 더 어려운 나라가 미국이라고 알려주는 데 이 소설은 제 할 일을 다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꾸준히 붙잡고 읽어 나가는 게 무척이나 어려워서 2권쯤에 가서는 몇 개의 목차만 읽거나 몇 개의 단락을 빼뜨리면서 읽었다. 역시 이 책은 한국 독자를 의식해서 쓴 게 아니니 한국어 표현을 흠잡는 것은 무리이겠으나 , 그렇다면 번역에 짜증을 내야 할까, 번역자는 이화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해서 외국문학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기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던데, 이 책을 보자면 영어 보다는 우리말 공부를 더해야 할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서 책의 내용보다도 주변적인 것 때문에 공들여 읽지 못했다. 내용과 문장을 빼면 소설에 남는 게 뭐란 말인가, 그런데 나는 그걸 힘들어하면서 책을 붙잡고 있었다.

 

미국은 어떤 꿈을 꾸게 한 나라였다. 가난한 아버지들이 자식들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바다를 건넜다. 그리고 아이들은 착하게도 성실하게 일하는 아버지의 꿈을 실현시켜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사이 두 사람 사이에 말이 없어졌다. 철저히 미국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한국어를 못쓰게 한 결과 아이들은 생각도 미국식으로 하게 되고 말았다. 타국에서 보내는 몇 십년 동안 오히려 한국에서 가지고 간 가치관을 보다 더 단단히 만들어 버린 아버지는 아이들을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선 그들의 말을 알지 못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아이들만의 고통과 나름대로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너무나 어이 없었다. 왜 부모가 자식의 문제를 알아보려 하지도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와 소통이 불가한 아이들은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 바깥 세상도 소통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기술이 필요했다. 뭐든지 다 잘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어떤 아이는 실패를 했다. 또 어떤 아이는 보다 더 많이 상처 받았다. 바깥과 안에서 아이들이 머물 곳이 없었다.

 

이 소설은 그 경계를 더듬고 있다.

 

 

그런데, 이게 미국의 이야기만이 아니다.우리 안을 들여다 보면 똑같이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다.

 

코리안 드림을 �아 한국에 온 아버지와 어머니들, 그들의 아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도 역시 미국사람, 일본 사람이 이방인인 한국 사람에게 퍼붓던 그 차가운 시선으로  이방인인 그들이 우리와 동등해지는 것을 한사코 싫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여성을 사오고 싸고 어려운 일은 외국인노동자를 부리면서 그들이 권리를 주장할 것 같으면 불법이라고 윽박지르는 것, 이미 몇 십년 전에 어떤 꿈을 �아 이 나라를 떠났던 사람들이 경험했던 일이다.

 

또, 30년 쯤 세월이 흐른 다음에 어떤 이주민의 아이가 한국어로 소설을 쓰고 부모의 나라에서 구독자가 생길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 코리안 드림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우리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이 책이 미국에 대해서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