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시- 지하실이 있는 집/김광규

자몽미소 2008. 5. 30. 15:57

           지하실이 있는 집

                           김 광규

 

서른세 해 동안 나는 한집에서 살고 있다.

평생 아파트 한 채 장만하지 못했으니,

주변 머리 없는 놈이라고

경멸해도 할 말이 없다.

 

겉으로 보면 우리 집은 평범한 연와조 이층 양옥이지만,

살아오면서 두 차례나 개조보수 공사를 한 결과,

보통 주택이나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처음 온 손님이 현관을 찾지 못하고,

자꾸 안쪽 복도로 나가려고 하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뒤뜰로 출입구가 나 있는 지하실에는 오래된 잡동사니들이 가득하다.

나보다 더 나이를 먹은 벽시계,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던 양복장,

유리 뒷면의 수은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등신대 거울,

옛날 밥상과 다리 부러진 교자상, 목조 제기와 갓집,

금이 간 백 항아리와 떡시루, 요즘은 쓰지 않는 키와 체와 약탕관,

돌절구와 다듬이 돌과 홍두깨, 고장난 석유난로와 조명기구,

정원용 호스와 간이의자,

곰팡이 핀 등산화와 뒤축이 닳아빠진 편상화 따위로 가득 차서,

그야말로 발 들여놓을 틈도 없다.

 

한번은 도둑고양이가 지하실 입구의 신발장 속에서

새끼를 두 마리 낳았다. 사람이 접근할 때마다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하악하악 경계의 비명을 질러댔다.

어미 고양이와 새끼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지하실 출입을 삼가다보니,

이제는 거의 드나들지 않게 되었다.

 

고양이 가족들이 사라진 다음에도,

지하실 속에서 무엇인가 살고 있는 낌새를 챌 수 있었다.

일부러 들어가보지 않았고, 우연히 마주친 적도 없지만,

누군가 숨어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양복장에서 헌 옷을 꺼내 입고,

닳아빠진 구두를 찌그려 신고,

금이 간 백 항아리에 김치를 담그고,

고장난 석유난로에 라면을 끓여 먹으며,

누군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 냄새도 소리도 없이

몰래 거주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 집 공납금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지하실에 살고 있는 이 동거인에 대하여

나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가족들이 눈치 챌까봐 걱정되었다.

그들은 아무도 지하실에 내려가지 않았지만,

혹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무섭다고 펄펄 뛰며,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졸라댈지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지하실이 없는 집에 살고 싶은 것이 그들의 꿈이기 때문이다.

 

삼십여 년간 같은 집에 살다보니

이제는 우리 집에서 떼어버릴 수 없는 한 부분이 된 지하실,

어두컴컴하고 거미줄이 낀 이 공간에 누군가 자취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별로 이상하지도 않다. 

내 몸의 어느 부분에도, 머리의 혈관 속이나  심장의 한 구석,

간이나 페나 위장이나 대장이나 췌장이나 신장 속에도,

그동안 무엇인가 허락 없이 들어와서 살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 꼭 알아내려고 하지 않고,

모른 체하며 지금까지 더불어 살아왔다.

그것을 새삼 없애려는 것은 공연히 지하실의 동거인을 쫓아내려고

풍파를 일으키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 문학과 지성사, 시간의 부드러운 손, 김광규 시집 에서

 

김광규 씨는 남편이 좋아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그의 연륜만큼이나  <어른>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남편이 좋아하는 이 시인을 조금씩 좋아하게 되었다. 시 속에 그려진 그의 생각이 좋게 느껴져서다.

숱한 시인이 배출되고 하고 많은 시들이 나오지만,  두 번 세 번 읽어 보거나 같은 시인의 시집을 다시 사서 보게 되는 경우가 적어졌다. 시 속에서 <시인>을 발견하지 못하는 탓이다.

 

어제도 어떤 사람의 새 시집을 서점에서 보게 되었다.

대략 훑어 보면서, 어떤 애독자가 있어  그의 시에  매료될까, 사실은 걱정이 되었다. 오해할 수 있으면 가능할 것이다. 어떤 무리들의 문학 하는 일은  모양좋고 빛깔좋게  사기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글로 보여지는 것과 실제가 무척 다르지만, 대부분 모르고 지나간다. 애독자는 물론 구독자도 되기 싫어서 어떤 사람의 새 시집을 도로 꽂아 넣으며 마음이 잠시 어지럽고 불편했다.  시어로 보여주는 어떤 사람의 삶은 돈으로 치장한 부자처럼 어떤 거짓이 숨겨 있었다.

 

아침에 발가벗고 목욕탕 물 속에 비스듬히 누워 곰팡이가 일고 있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너가 틀리다, 나는 바르다 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틀리다 우기는 내가  있으면 내가 틀린 것이라고 너가 우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겨야 할만큼 나는 깨끗한 몸인가?  천장에 낀 곰팡이나 물 속에 불고 있는 내 몸의 때나  마찬가지, 서로 벗겨 놓고 상대의 허물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천장의 곰팡이를 깨끗이 치워야 한다고 목욕탕 주인에게 우길 일도 아니라서, 내 몸만 씻고 나왔다. 

 

 

나이가 들거나, 책을 열심히 읽거나, 또는 문학을 한다하고, 죽도록 시를 쓰고, 아무리 지랄 해 봤자,

<어른>이 되는 일은 그리 순하게 오는 선물이 아닌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지 꼭 알아내려고 하지 않고,

모른 체하며 지금까지 더불어 살아왔다.

 

이 경지까지를 나는 무슨 힘으로 도달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