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김수열의 시- 시집,< 바람의 목례> 중에

자몽미소 2008. 6. 3. 22:58

해장국

 

열불 나면 걷잡을 수 없는 거라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쯤이면

날계란 하나로는 어림도 없는 거라

김칫국물 정도로는 턱도 없는 거라

그럴 때면 막걸리나 한 잔 하면서

가만 나둬야 하는 거라

그러면

 

씩씩거리다가도

제 스스로 몸 낮추고

차분하게 마음 가라앉히는 거라

제 자리로 돌아가는 거라

 

사랑도 그런 거라

분노도 다 그런 거라.

 

 

 

 

 거짓말

 

"선생님은 무얼 먹고 그렇게 키가 커요?"

 

풋과일 같은 여자애들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올려다본다

시선은 집중되고 정적이 감돈다

 

"착한 마음"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아이들 벌떼같이 소리지른다

 

책상 탕탕 내려치는 놈

자다가 벌떡 깨는 놈

힐끗힐끗 눈 흘기는 놈

머리 싸매고 뒤집어지는 놈

우웩우웰 토악질 흉내내는 놈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놈

 

교실안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다

 

그래, 이 놈들아

말도 안 되는 소린줄

낸들 왜 모르겠냐만

그래도 우기고 싶구나

너희들 앞에서만큼은

착한 척이라도 하고 싶구나

 

 

 

가을 운동회

 

소풍날보다 운동회가 더 싫었다

소풍날은 어떻게든 점심만 때우면 그만이지만

운동신경이라곤 쥐뿔도 없어

그날만 다가오면 괜시리 가슴이 두근거렸고

추적추적 비라도 내려주길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나님께 빌고 또 빌었다

달음박질하면 따 놓은 꼴등이고

줄다리기해도 우리편은 언제나

땅바닥에 코를 박곤 했다

내가 던진 오자미는

왕대 끝에 매달린 바구니에

가 닿지도 못하고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맥없이 떨어졌다

던져도 던져도 바구니는 열리지 않았다

내가 청군이면 청군이 졌고

내가 백군이어도 늘 그랬다

하늘에 매달린 만국기도

팔랑팔랑 나를 비웃었다

 

어느덧 내가 선생이 되고 애비가 되었건만

그래도 운동회가 싫었다

나보다 빠른 우리 반 학생이거나

우리 집 아이가 달음박질하다가

'선생님과 발묶어 달리기'

'아빠와 손잡고 달리기'를 주워들고 나를 찾을까봐

운동회가 싫었다

파란 하늘이 그렇게도 싫었다.

 

 

 

연변 여자

 

그 여자를 보면 괜히 신경질이 난다

그녀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일제에 빼앗긴 조선땅이 싫어

살아도 더는 살 수 없는 조국이 싫어

흑룡강으로 떠났는데

그 여자는 할애비가 버린.

땅 설고 물 설은 모국의 귀퉁이에 와서

허벅지 하얗게 내놓고 상반신 출렁이며

'이름도 ~ 모~올~라요 서~엉도 몰라.

첨 만난 사내 푸우움에 어~얼싸 ~ 안겨여어~'

 

곰팡내 물씬 풍기는 단란주점에서

올망졸망 두고 온 식솔들

눈망울에 수평선을 담고 노래 부르는데, 씨발

왜 그리도 부아가 치솟는지

휘청휘청 밖에 나와 해장으로 국수를 먹는데, 씨발

국물은 왜 그리도 뜨거운지

전봇대에 기대어 오줌 누는데, 씨발

왜 죄없는 가랑이만 축축이 젖는지

 

 

 

 

고희 넘긴 지 오래인 어머님은

텃밭에 시를 쓰신다

골갱이 들고 고랑을 파 이랑 만드신다

배추도 심고 무도 심고

부둥이 깨진 독에 삭힌 오줌으로

잎 키우고 꽃 피우신다

 

노란 배추꽃엔 노란 나비

하얀 무꽃엔 하얀 나비

 

오늘도 텃밭에 앉아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시를 쓰신다

行間에서 字間까지 완벽하다

퇴고가 필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