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독소,죽음을 부르는 만찬- 2008년의 책읽기 27

자몽미소 2008. 6. 16. 18:31

 

작가소개

 

월리엄 레이몽

 

프랑스인인, 현재 미국 달라스에 거주.

존 F 케네디 죽음의 배후조종 세력을 새로운 시각으로 파헤친 , 한 살인 사건의 법정판결 오류를 증명한 <도미니시는 무죄다, 살인자의 재발견>, 거대 기업 코카콜라의 은폐된 진싱를 폭로한 <코카콜라 게이트> 등 다수의 저작물과 다큐멘타리 작품으로 사회적 논란과 냉철한 비판을 이끌어내고 있다.

저자는 이제 그만 식탁 위의 참상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식 식탁에 노출된 우리 아이들의 수명이 우리 세대 보다 훨씬 짧아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1. 독이라는 것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놨더니, 우리 세금과 에너지가 헛되이 쓰이고 있다. 타오른 촛불에 꼼수를 쓰는 정부의 뒷편에 대통령이 있으니,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대로라면, 잘못된 지도자는 몰아내는 게 순서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뽑은 사람이니 그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아, 여전히 촛불로서 개선할 시간을 주고 있지만, 정부의 하는 양을 보면 그 밥에 그 나물, 밥상을 엎고 새로 차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문제는 쇠고기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쇠고기만의 문제일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엔비의 정부는 꼼수의 정부이다. 근본을 생각하지 않는다. 얽힌 실타래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나 하나 천천히 시간을 갖고 풀어나가든지 엉킨 부분을 과감히 끊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엉키게 해 놓고는 계속 딴 수만 부리고 있으니 엉킨 게 더 엉키기고 있다. 천천히 풀어낼 인내는 없고  술수를 부려 빨리 해결하려는 조급만 있으니 국민의 에너지만 고갈 되고 있다. 신문 지면에 나오는 답답한 정국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어리석음이  바로 독이 된다는 것이다. 거기엔 잘못 뽑은 지도자도 들어간다. 독은 치명적인 것이지만 더 무서운 것은 그 폐해가 오래 가고, 한번 마신 독을 씻어내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와 등등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현재 우리 정국은 주둥이에 독사발을 갖다댄 모양이다. 마시고 싶지 않아도 서서히 독기가 들어오는 느낌처럼 위험하다. 들이붓는 사람들만이 괜찮다 괜찮다 한다.

 

 

 2.  미국적인 것, 또는 산업이라는 것

 

현대 사회를 살면서 우리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비행기처럼 빠른 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수입하는 쇠고기뿐만이 아니라 많은 먹을 것들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여러 변형된 형태로 우리 입으로 들어가 몸의 일부가 되고 있다.

 

음식의 재료가 수입과 수출의 길을 가게 되는데는 자연히 산업의 논리가 끼어들었다. 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고, 최종 도달점인 인간의 몸에 어떤 형태로든 쾌락의 느낌을 축적하면서 인간의 몸은  산업적 이윤을 내 줄 도구가 되었다. 그래서 지난 세대 보다 훨씬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현대인들은 입이 더 즐거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종 소비자인 인간의 삶이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때로 비만은 개인의 노력 부족이 원인이라고 여겨진다. 운동을 하고 식사를 적게 하기만 하면 될 일을 개인이 노력하지 않아서 뚱뚱한 몸으로 살고 있다고 이야기 된다. 그러나 작가는 이 비만병이 미국에서 발병한 유행병으로 보고 있다. 바로 미국식 음식이 전세계로 수출되면서 일어나는 유행병이라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농업장려금을 받은 옥수수는 옥수수 자체로서가 아니라 여러 모양의 음식산업의 재료로 탈바꿈하는데 예를 들면 옥수수에서 추출한 액당은 값이 비싼 설탕을 대체하면서 옥수수의 사용범위와 세력을 넓혀 가고 있고, 그 옥수수를 사료로 먹고 있는 소들은 전세계의 프랜차이즈업계로  공급되고 있다.

 

미국의 농업은 경제이고 정치이다. 미국의 정치 세력은 드넓은 미국 농업의 자본을 이용하면서 공생한다. 미국의 무기 산업과 마찬가지로 농업 또한 산업이 된 1970년대 이후, 햄버거, 코카콜라의 나라 미국은 세계 사람들의 식탁 또한 미국식으로 바꾸고자 끈질기게 노력해 왔다.

이제 곧 고유의 음식 문화를 가졌던 유럽도 일본도 이 미국의 농업 산업의 영향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벌써 그러한 증거는 상당히 많이 나와 있다. 유럽이나 일본에서 해마다 증가하는 비만관련 질병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미국식 프랜차이즈 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공장식 농업이 그 나라의 음식 산업까지 발을 뻗었기 때문이다. 미국형 비만은 전염되고 있다,고 작가는 판단한다.

 

 

3. 식품 산업, 비만을 부추기다

 

식품산업계는 우리 인간이 잡식동물의 딜레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이 본능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대형화 경향이 그렇다. 대형화는 힘과 관련이 있어서 더 큰 것을 고르는 사람들이 힘이 있다는 인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여기에 먹보 이론을 추가하여 이윤을 극대화 했던 것은 영화관을 찾은 손님들에게 팝콘과 콜라를 파는 방식에서 증명되었다.

 

작은 것 두 개를 먹는 것보다 처음부터 큰 것 하나를 고르도록 마케팅을 바꾼 것이다. 두 개를 사서 먹으면 먹보처럼 보일 것이지만 처음부터 두 개의 양이 담긴 하나를 고르고, 그게 두 개를 샀을 때보다 값이 저렴하다면 사람들은 모두 큰 것을 고른다. 먹보라는 인상을 주지 않고 절약했다는 흐믓한 마음도 드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근래 대형 마트에서 흔한 수법이다. 그래서 별로 필요하지도 않지만 손해 보기 싫어서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샀으니 더 먹어야 한다. 해가 갈수록 섭치하는 칼로리가 높아진다. 근본적으로 식품산업회사들은 사람들의 욕구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익을 얻으려고 사업을 한다. 기업의 이윤추구 마케팅은 인간의 욕구를 연구하면서 인간을 도구화 한다. 

 

그 중에서도 빈곤층은 가장 많이 피해를 보게 된다.  더 나은 음식을 먹지 못하고 운동 시설을 이용할 시간과 기회가 적은 탓이다.  예전에는 돈을 받고 일하면서도 몸매 유지가 되었지만 현대 사회의 주요한 변화 중 하나가 몸매를 가꾸는 데 돈이 들어가는 것이다.  스포츠 센타에서 운동을 하며 몸매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 달 등록비 말고도 꾸준히 다닐 수 있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돈 버는 데 보내야 하며, 여가를 내거나 먹을 음식을 꼼꼼하게 따져볼 겨를이 없다.  비만은 그래서 사회 불평등과도 관련이 있다.

 

 

4. 제국의 위협

 

이 책은 또한 미국의 축산업 시스템과 농업의 먹이사슬에 대해서도 살핀다. 미국 축산업의 현상황은 이전에 읽었던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도 알려준대로 이미 고기를 먹는다는 것이 불안을 먹는 것, 끔찍함을 외면하는 것이 되고 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미국의 소와 닭과 돼지는 목가적이고 근원적인 생명이 아니라 산업재료다. 공장 시스템의 일부이다. 거기다 그 소와 닭과 돼지를 먹여 살리려고 사료인 옥수수는 질병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게  유전자를 조작했다.

각종 화학처리가 가미된 옥수수 액당은 설탕의 세계를 침범한 지 오래다. 고기와 옥수수는 이제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불안이며 위협이다. 미국에서 남아도는 것들이 전세계인의 몸, 미국과 무역을 하고 싶어하는 나라들, 그 국민들의 몸으로 들어간다. 미국의 농업과 정치는 그들 나라의 이윤을 위해  침략자가 되었고 결코 좋지 못한 탄알을 우리 몸에 쏘아 대고 있다. 다만 우리는 그 징후를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빠지는 비만이라든가 언제부터인지 좋지 않은 몸으로, 그저 그런 몸이 제 부주의 탓이겠거니 여길 뿐 그 너머의 원인에 제국의 위협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맥도널드에 코카콜라를 먹으면서 미국에 분노할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렇게 작고 사소한 보이지 않고 알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를 점령하고 있는 것들이 생긴다는 데 있다. 그 원인이 꼭 미국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미국적이다는 것, 산업적이라는 것, 신속과 대형화의 상징 속에 그 미국은 들어 있다. 이미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미국식으로 살고 있는 것, 미국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음식은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일부분일 수 있다.

 

 

5. 질문해야 하는 것

 

이 책의 저자의 질문처럼 본질은 다른 데 있는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 이 책은 음식 속의 독성 물질이 어떻게 이 사회에서 만들어지고  어떻게 사람들을 이용하며 어떻게 사람의 몸을 파괴하고 있는지를 살핀 것이만,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을 뒤로 하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삶에 들어온  가치의 혼란이야말로 어쩌면 산업사회를 살아가며 겪어야 할 독소는 아니겠는지. 경쟁 사회를 살자면 똑바로 앞을 보고 달리라는 충고 속에, 일등이 아니라면 아무 것도 안된다는 조장 속에, 교육보다는 시험 연습장인 학교의 현주소에서, 돈이 제일이라는 현대 사회의 풍토 속에 이미 독은 가득하고, 조급증과 스트레스가 덧붙여져 우리 몸과 영혼을 갉아 먹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거듭해야만 하는 질문.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를 이 책의 결론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