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
열불 나면 걷잡을 수 없는 거라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쯤이면
날계란 하나로는 어림도 없는 거라
김칫국물 정도로는 턱도 없는 거라
그럴 때면 막걸리나 한 잔 하면서
가만 나둬야 하는 거라
그러면
씩씩거리다가도
제 스스로 몸 낮추고
차분하게 마음 가라앉히는 거라
제 자리로 돌아가는 거라
사랑도 그런 거라
분노도 다 그런 거라.
거짓말
"선생님은 무얼 먹고 그렇게 키가 커요?"
풋과일 같은 여자애들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올려다본다
시선은 집중되고 정적이 감돈다
"착한 마음"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아이들 벌떼같이 소리지른다
책상 탕탕 내려치는 놈
자다가 벌떡 깨는 놈
힐끗힐끗 눈 흘기는 놈
머리 싸매고 뒤집어지는 놈
우웩우웰 토악질 흉내내는 놈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놈
교실안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다
그래, 이 놈들아
말도 안 되는 소린줄
낸들 왜 모르겠냐만
그래도 우기고 싶구나
너희들 앞에서만큼은
착한 척이라도 하고 싶구나
가을 운동회
소풍날보다 운동회가 더 싫었다
소풍날은 어떻게든 점심만 때우면 그만이지만
운동신경이라곤 쥐뿔도 없어
그날만 다가오면 괜시리 가슴이 두근거렸고
추적추적 비라도 내려주길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나님께 빌고 또 빌었다
달음박질하면 따 놓은 꼴등이고
줄다리기해도 우리편은 언제나
땅바닥에 코를 박곤 했다
내가 던진 오자미는
왕대 끝에 매달린 바구니에
가 닿지도 못하고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맥없이 떨어졌다
던져도 던져도 바구니는 열리지 않았다
내가 청군이면 청군이 졌고
내가 백군이어도 늘 그랬다
하늘에 매달린 만국기도
팔랑팔랑 나를 비웃었다
어느덧 내가 선생이 되고 애비가 되었건만
그래도 운동회가 싫었다
나보다 빠른 우리 반 학생이거나
우리 집 아이가 달음박질하다가
'선생님과 발묶어 달리기'
'아빠와 손잡고 달리기'를 주워들고 나를 찾을까봐
운동회가 싫었다
파란 하늘이 그렇게도 싫었다.
연변 여자
그 여자를 보면 괜히 신경질이 난다
그녀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일제에 빼앗긴 조선땅이 싫어
살아도 더는 살 수 없는 조국이 싫어
흑룡강으로 떠났는데
그 여자는 할애비가 버린.
땅 설고 물 설은 모국의 귀퉁이에 와서
허벅지 하얗게 내놓고 상반신 출렁이며
'이름도 ~ 모~올~라요 서~엉도 몰라.
첨 만난 사내 푸우움에 어~얼싸 ~ 안겨여어~'
곰팡내 물씬 풍기는 단란주점에서
올망졸망 두고 온 식솔들
눈망울에 수평선을 담고 노래 부르는데, 씨발
왜 그리도 부아가 치솟는지
휘청휘청 밖에 나와 해장으로 국수를 먹는데, 씨발
국물은 왜 그리도 뜨거운지
전봇대에 기대어 오줌 누는데, 씨발
왜 죄없는 가랑이만 축축이 젖는지
시
고희 넘긴 지 오래인 어머님은
텃밭에 시를 쓰신다
골갱이 들고 고랑을 파 이랑 만드신다
배추도 심고 무도 심고
부둥이 깨진 독에 삭힌 오줌으로
잎 키우고 꽃 피우신다
노란 배추꽃엔 노란 나비
하얀 무꽃엔 하얀 나비
오늘도 텃밭에 앉아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시를 쓰신다
行間에서 字間까지 완벽하다
퇴고가 필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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