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등대, 등대여행-2008년의 책읽기 24

자몽미소 2008. 5. 19. 18:30

1.등대

 

(1)서문

 

등대 가는 길목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 <등대로>에서 등대 빛줄기를 '인정사정없이 냉혹한 것' 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 평화 속에, 이 안식 속에, 이 영원성 속에' 라고 하여, 등대의 편안함과 영원성을 설명한다. 이 이율배반적인 표현은 어쩌면 등대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곶 위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떠있는' 느낌의 이 하얀 집들은 때로는 폭풍우에 흔들리기도 하고, 뭉게구름 피어오르는 여름 바다에서 하염없이 졸기도 한다. 갈 곳 모르는 배들의 좌표가 되기도 하고, 너무나 자주 침략과 약탈을 위한 유도등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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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제국 시기에 한반도에 제 모습을 드러낸 우리 등대는 불행하게도 독립적 근대국가와는 무관하게 제국의 배를 인도하는 '제국의 불빛'으로 작동하게 된다. 즉, 이 책은 등대에 관한 기존의 통념인 '낭만의 불빛'에 더하여 '제국의 불빛'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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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의 고집스러운 가르침은 '기다림'이다. 등대에는 등대만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등대원들을 보면 그들 스스로 등대를 닮아가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봄 안개가 몰려오면, 그런 살벌한 전투도 없다. 그런데 안개가 걷히면 또한 그런 나른한 풍경도 없다. 폭풍 덕분에 배가 떠나지 못하여 포그에서 허탕을 친다한들, 그 다음날 날씨가 가라앉아 배를 타게 되면 오히려 깨끗하게 청소된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루에도 열두번은 변하는 것이 등대의 풍경이다. 묵묵히 기다려서 자신이 등대가 되어 남을 위하여 몸을 태워 배려하라는 그 무엇을 등대는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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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는 건축사의 과제이기도 하다. 최초로 콘크리트가 실험된 곳이기도 하고, 백암등대, 부도 등대 같은 백 년짜리 등대들은 장중하게 돌로 깍은 예술품이기도 하다. 거친 풍파와 해무를 견디게끔 설계, 시공하자면 조류학,해양토목학은 필수이며, 그 건축공간은 경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반 건축과 다르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등대는 전통적으로 기품있는 건축물로 이어져왔으니 돌담과 창문, 정문 하나하나가 예술적 품격을 지닌다.

등대 주위의 나무나 풀뿌리조차 등대원들의 대를 이어온 세심한 손길이 배어 있으며, 등대 일상사의 장기 지속성을 각인시켜준다. 또한, 서두에서 논한 바, 제국주의 침탈이야기한 해양사의 과제이기도 하고, 뱃길의 역사이기도 하다. 무수한 시인 묵객들의 문학예술 소재이자 주체이기도 하고, 오늘날도 애틋한 이상향적 관광지로서, 비밀이 쌓인 관해처(觀海處)로서, 해양문화 콘텐츠의 보고로서 도처 각 분야의 눈길을 끈다.

과거에는 제국의 유산이어쓰나 오늘날에는 근대 문화유산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긴 칼 차고 정복 입고 근무하던 순사가 사라진 자리에 등대원이 들어섰다. 일제강점기의 등대원들은 대부분 일본 사람이었으며,조선인은 잔심부름꾼 소사에 불과하였다. 등대는 해군기지 역할을 겸하기도 하였으며, 모스 부호로 상징되는 우편 체신 거점이기도 했다. 반면에 잊지 말아야 할 다른 측면은, 과거에는 그러했을지라도 오늘의 입장에서는 돌부리 하나라도 고이 간직해야 한다는 점이다.

 

(2) 이 책에 소개된  우리 등대 한 눈에 보기

 

 

2.등대여행

 

(1)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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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얻에 가면 어떤 등대가 있다'는 정보는 인터넷상으로도 얼마든지 검색된다. 등대를 총체적으로이해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등대여행은 좀더 섬세한 이해 방식을 요구한다. '아무도 가지 않던 길'을 찾아가고. 수많은 계단을 운명처럼 오르내리면서, 등대 주변의 뛰어난 경관을 굽어보며 발길을 옮기면 어느 결에 등탑에 닿는다. 등탑의 문을 열고 주물 층계를 올라가면 등롱이 있다. 거기에는 바로 등대의 핵심인 등명기가 있다. 기계실을 열어보면 공기혼의 저장 탱크가 웅크리고 있고 옥상 위에는 으레 안개피리라 부르는 무적(霧笛)이 바다를 향하여 흰 목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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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기술풍경을 찾아감은 '제국의 불빛'으로서 100년의 역사를 지닌 '역사여행'이며, 프레넬 렌즈를 비롯한 광학기술의 발달과정을 엿볼 수 있는 '과학여행'이다. 그리고 등대의 아름다운 건축을 살펴볼 수 있는 '건축여행'이며, 나아가 등대 주변의 풍광을 만끽하는 '명승기행'이자 오지로 떠나는 '오지여행', 사진을 찍는 '사진 여행'이다. 문학을 하는 이들에게 등대기행은 상상력의 원천으로서 시와 소설이 숨쉬는 '낭만여행'일 것이다.

 

(2)책의 차례

 

1. 등대 가는 길-해양기술풍경을 찾아서

2.등대의 다양성-그 풍부한 얼굴

3.등탑-원형의 상징

4. 20세기는 시멘트의 시대- 돌과 쇠를 이기다

5. 문- 빛으로 가는 출구

6.층계- 하늘 사다리

7.창문- 바다 경관의 바늘구멍

8. 등롱- 판테온의 추억

9. 등명기- 굴절과 직선의 힘

10. 담-물마루와 수평의 힘

11.무적- 물안개와 바다피리

 

 

* 여행 가기 하루 전

 

2박 3일 일정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간다. 내일 저녁 제주를 출발하여 모레 아침 울릉도행 배를 타고 금요일에  울릉도에서 포항에  돌아올 것이다. 집에는 토요일에나 올 수 있을 것이다.

주강현 선생이 쓴 <관해기>의 동해편을 대략 읽고 울릉도 편은 자세히 읽었다. <등대>에선  제주의 등대에 관한 글을 공부하듯 읽었다. 산지 등대, 우도 등대, 마라도 등대를 나는 늘 스쳐지나갔다. 가 봐야 할 곳이라거나 알아볼 무엇이 있다거나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떤 이(주 강현)는 등대로 몇 권의 책을 만들어 낸다.  <등대여행>은 사진이 좋았다. 글을 모두 읽지는 못했다. 다음에 다시 잘 읽어볼 생각이다. 지금은 내일 떠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몸이 별로 안 좋아서 정돈해야 할 집안살림도 손에 안 잡히고, 그냥 앉아 책이나 읽으며 쉬자 싶었지만  약 기운으로 멍청해진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등대>에 등대여행을 소개하는 글을 보니, 등대에서의 하룻밤을 꿈꾸게 된다. 누군가 좋은 이를 청해 우리 동네의 산지 등대나,  배를 타고 가서 묵는 우도에서의 하룻밤도 생각해 본다. 제주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 도로마다엔 무인 등대도 많지만, 나는 이제껏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것 같다. 누가 저것을 보살피고 있는지, 어째서 저 등대는 저 곳에 있어야 하는지, 저게 등대인지 등표인지 그저 바다의 일부인듯 바다의 무수한 파도와 다를 바 없이 무심히 지나쳤었다. 그리고 그 무인 등대는 보살피는 사람이 항상 있고, 우리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등대와 일생을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새삼 알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기 보다 내 무지를 깨뜨렸다. 무관심이 무지가 되었던 셈이다.

 

21, 22일, 23일을 바다 위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여행에 앞서 책에서 본 것들은 동해  위를 춤추듯 흐르는 바다물결의 한 부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여행을 시작한다. 나는 알고 있는 만큼 밖에 보지 못할 테지만, 보고 난 후엔 내 마음에 동해의 드넓은 푸름이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본다.

 

제주 바다만 바라보고 살던 나에게 동해는 귀한 외출이고, 설레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