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2009년의 책읽기(3)-대기근 조선을 뒤덮다

자몽미소 2009. 1. 13. 23:53

 

 

지은이: 김덕진

출판사: 푸른 역사

 

* 우리가 몰랐던 17세기의 또 다른 역사

대기근은 한 번 발생했다 하면 수년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며 조선 사회에서 엄청난 충격을 가했다. 

경제적  고충이나 사회에 불안에 그치치 않고, 정치적 긴장이나 외교적 갈등을 격화시킬 정도로 고강도였으며 조선 왕조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책표지에서.

 

 * 책을 읽고 내 생각

1. 잠시만 낭만

 

눈이 내렸다. 이틀 전 내린 눈이 하루도 안 되어 녹아버리자 몹시 아쉬워했었다. 한 일주일만이라도 눈이 계속 왔으면 좋겠다고 소망처럼 말한 게 그제 저녁이었다. 소원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오늘은 눈이 녹을 새 없이 계속 내렸다.  오후에는 집에서  20분쯤 걸어 커피숖에 갔다 왔고 두 어시간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굵은 싸락눈이 내렸다.  저녁에 이러면 내일도 눈이 내리겠지? 참 좋다. 나는 감탄하듯 내뱉었다. 거위털 파카를 입은 내 몸은 전혀 추운 줄을 몰랐다. 겨울의 흰 눈은 내게 낭만을 부풀려 저녁 어스름을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눈 속에서 고소한 빵 냄새를 맡은 것도 같았다. 눈이 내린다는 게 좋기만 하다고 느끼는 감정에는 당장은 걱정할 것이 없는 사람의 오만이나 주변에 대한 외면이 담겨 있었다. 택시 운전을 하는 동생에게 눈 오는 날의 노동은 위험을 함께 실어나르는 일과 같을 것이었다. 길 위에 떨어진 싸락눈은 금방 녹아 사라졌다. 나도  동생에 대한 걱정을 버리고 싶었다. 동생의 일을 내가 어찌할 수 없다고 동생을 지우자 농사를 지으며 일기에 민감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항상 라디오를 곁에 두고 있었다. 내일 뉴스엔 어딘가에서 오늘의 눈 때문에 고통을 당한 사람의 소식이 나오지 않을까, 내겐 낭만인 이 눈이 누군가에게는 실시간 진행형으로 괴로운 무엇일 것이다.

 

2. 우리 밭의 배추 

냉해를 입었다, 고 아버지가 말하는 걸 들을 때면 어린 우리들도 같이 시무룩해지곤 했다. 2월 말에 밭에 정식을 한 어린 배추가 3월 어느 날 몰아친 꽃샘 추위에 피해를 입은 것을 그렇게 말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이웃 아저씨와 이야길 나누는 것을 들으니 아버지가 '작년엔 3월 19일에 눈이 내렸다' 고 했다. 나는 작년에 눈 내린 날까지 기억하는 아버지의 기억력에 탄복하고는, 3월에도 눈이 내리는 것이구나, 3월은 봄인데, 라며 새삼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된 사람처럼 신기해 했다.  3월은 학교에 가서 새 학년이 되는 달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나와 달리, 아버지에게 3월은 느닷없는 공격을 대비해야 하는 달이었다. 전장의 군인처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달이, 3월이었다.

9월은 바람의 달이었다. 여름의 끝무렵, 매해 태풍이 찾아들었다.  3월에 봄배추를 꽃샘 추위에서 보호해야 했다면, 9월엔 가을 배추를 태풍에서 구해야 했다. 태풍이 한 번 지나고 나면, 몇 주 전에 밭에 모여 가을 배추를 심었던 아낙들이 다시 밭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곤 했다. 보름의 시간 차로 어떤 밭은 벌써 푸릇푸릇 실하게 커진 배추가 보이는가 하면, 어떤 밭은 태풍 때 들이닥친 물때문에 싹쓸이를 당해, 다시 시도도 못하고 맨밭으로 벌건 땅을 그대로 두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늘 라디오를 가까이 두고 일기 동향을 체크했다. 어느 한 해인가는 3일 후에 큰 태풍이 올 것을 알고 꼼꼼이 대비하여 배추묘상을 잘 지켜내었고 그 해 아버지는 크게 돈을 벌었다.  태풍이 보통 때와 다름없는 큰 비 정도로 여겼던 사람들의 묘목은 강풍과 강우에  맥없이 쓸려 나갔다. 농부들은 변덕스런 기후 앞에서 온 몸을 내맡긴 사람처럼 고분거릴 수밖에 없다. 그간의 경험으로 대비를 한다해도 대개는 인간의 능력 밖의 것들은 너무 힘이 셌다. 농사란 항상 놓쳐서는 안 되는 때가 있기 마련인데, 급작스런 기상의 악화는 농부들의 손을 잘라 버리는 것처럼 가혹하고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매와 같았다. 농사 때를 놓치고 나면, 땅은 비고 농부의 곳간도 비게 되기 때문이었다.

 

3. 가슴 타는 농부들

 

일기예보라는 게 있고, 돈만 있으면 씨앗을 살 수 있는 종묘상이 있고, 자연재해로 농사를 망쳤을 때는 국가에서 일정하게 보상해 주는 복지 제도가 있는 현대에도 농사는 기상의 변덕을 두려워한다.  오히려 옛날에는 없던 농기구나 농약, 비료 등 농사 기본 장비 구입에  빚을 지고 농사를 짓고 있는 현대의 농부들은 풍년이거나, 흉작이거나 가슴 졸이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요즘은 흉작일 때는 수입해 온 농산물 때문에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풍년일 때는  공급 과잉으로 농산물이 똥값도 안 되어 투자한 돈을 회수할 수 없고 땀흘린 노력조차도 갈아 엎어 버린다. 이런 진퇴양난의 길 위에 현대의 농업이 있다.  농부의 가슴은 가뭄든 논처럼 바짝 마르고, 다음 해를 위한 계획이나 미래를 위한 저축 같은 건 홍수의 물결에 사라진 듯 허망한 말이다. 안 할 수 없고 달리 방도가 없으니 농사를 짓는다. 가뭄이나 홍수에 작물이 죽어 버리듯, 농부들은 현재 상황을 이겨낼 수 없어 죽을 지경이다. 가끔 제초제를 잡초에 쓰지 않고  목으로 부어 삼키는 농부가  생겨나는 것은,  해마다의 좌절 때문에 가슴에 심을 씨앗조차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부들이 하나 둘 농사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삶을 포기하는 쪽보다는 농사를 포기하는 쪽이 나은 농부들이 생겨나고 있다.  게다가 우리 정부는 농사를 포기하는 농부들에게 격려금까지 주고 있다.  우리 땅에서 우리 농부들이 농사를 짓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땅에서 식량을 얻게 될까?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권력자들은 말해 왔다. 휴대폰과 자동차를 팔아 너희들 먹을 것을 싼값에 사오겠다고 장담한다.

 

4.  먹을 것이 사라진다면

 

게다가 농사를 짓지 않는 대부분의 우리들도  농업과 농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부, 관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편이 맞다.

 농업의 위태로움과 농부들의 절박함에 비하면, 구매자로서 우리들 대부분은 먹을 거리에 대해서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마트와 시장에는 항상 먹을 거리가 있다. 위험이라면 수입산 쇠고기나 가공식품의 첨가제처럼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이지, 먹을 것이 아예 없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조국의 근대화 시기를 보내면서 이 나라에는 배고픔 이라는 단어는 옛 이야기 할 때나 나오는 말일 뿐, 현재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만약, 혹은, 어쩌다가 우리 나라가 전체가 식량부족 사태가 온다 하더라도 세계화된 세상이기에, 이 나라의 먹을 거리는 세계의 어느 곳에선가 공급이 될 것이고, 돈이 있는 한 먹을 걸 못 먹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각이다.  맞다. 그 말이 맞다. 그런데, 우리 나라 전체가 아니라 이 세계 전체가 어떤 상황에서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질 때는 어떻게 되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있지만, 내일 일은 모르는 일, 이 말이 혹시 더 맞는 말이 아닐까?

 

돈이 있어 시장을 다 돌아보아도도 먹을 것을 살 수 없다. 먹을 걸 갖고 있는 국가는 자기 나라 국민을 위해 원조 식량을 주지 않고, 이웃은 자기 식구를 먹이기 위해 문을 잠근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지? 내게 있던 약간의 식량은 내일이면 다 사라지고, 어디서고 먹을 것이라고는 찾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게 될까? 

 

5. 그래서 저자는 말하길

 

책,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는 현종의 치세 시기에 있었던 경신 대기근에 대해서 다룬다. 느닷없이 몰아친 한파가 이상 저온 현상을 몰고 왔다. 기후학자들은 그때가 전세계적으로 소빙기였다고 말하고, 천문학자들은  소빙기의 이유가 태양의 흑점 활동이 쇠퇴 하면서 태양의 발열량이 감소 했다고 하기도 하고,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면서 태양을 가려 급랭 현상이 일어났다고도 한다.

 

 

소빙기 기후는 각종 자연 재해를 가져와 식물의 성장 시기를 단축하고, 경작지를 축소해 농산물의 생산을 감소시켰다. 특히 여름철 저온 현상은 작물의 발육 부진과 고산 농지의 페기를 가져왔고, 겨울철의 혹한은 강과 운하의 결빙을 초래하여 교통을 마비시켰다. 여기에 더해 사람과 동물의 방역 체계까지 흔들어 면역력을 크게 떨어 뜨렸다. 그 결과, 기근, 전염병, 불황이 끊이지 않아 사람들은 굶주림, 질병, 빈곤의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사회적 동요가 지속항 반란, 전쟁, 혁명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 책 23 쪽 인용-

 

 

이 책은 <현종실록, 현종개수실록, 비변사등록, 승정원 일기> 역사적 사료를 기초로 현종 시대의 사람들이 겪었던 기근을 보여준다. 배고픔은 배고픔으로 끝나지 않고, 전염병으로 조선을 휩쓸고, 한파, 냉해, 가뭄, 홍수로 이어지는 흉포한 재해는 이 땅의 곡식을 죽이고 백성을 죽였다. 올해의 굶주림이 해를 넘기며 끝을 모르게 이어지니, 배고픔을 이겨내지 못한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잡아 먹는 일이 생기고, 옆에서 남편이 죽어도 얻어 먹는 죽사발을 놓지 못하는 아낙도 생겼다. 배고픈 땅의 백성들에게서 인간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민중은 민중이고, 정치는 정치인 상황도 있었다. 기근으로 백성이 죽어나가지만,  나라의 곳간은 채워야 하고, 일단 채워진 것들은  권력자들의 입장 차이 때문에 느리게 열렸다. 그 와중에 눈치 빠르고 셈 좋은 사람들이 배고픈 백성에게 가야 할 것들을 미리 빼내 배를 불리기도 하였다. 있는 자들을 독려하기 위해 급히 만든 제도들은 원래 의도와 다르게 이용되기도 하였다.

송시열 같은 이가  권력의 핵심에 있어 이 난국을 정치에 이용하려 하거나 백성의 일은 나 몰라라 하는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백성의 구휼에 온 힘을 다하고도 정치적으로 세력을 키우지 못해 권력의 뒷전으로 물러나는 사람도 있었다.  빈곤하고 배고픈 백성과 권력 다툼을 하는 엘리트들 속에 있던 임금이 현종이었는데, 그 임금이 매우 훌륭하게 정치적 역량을 발휘한 것 같지는 않다. 지도자로서 현종은 너무 큰 자연의 재앙과 서인과 남인의 권력 전쟁 속에서 만성 스트레스성 질환을 앓았던 것 같다. 실록에서 전하는 현종의  몸상태가 그러해 보인다.

 

이 책의 주제는 다만 17 세기에 일어났던 재앙과 그 시기의 상황만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욕심을 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것에 방점을 찍는 것 같다. 이 시기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 시절을 이겨냈는지에 관한 것을 말하면서 이 재앙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위기의 시대를 기회의 시대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 재앙을 통해 임금은 왕권을 회복하고, 이후의  국가제도를 크게 변화 시켰다.  18 세기에 와서는 경신 대기근 때  불거진 각종 모순을 수습해 새로운 틀로 사회 안정을 이루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그 자세한 설명을 이 책에  찾아 볼 수는 없다. 저자의 다음 책이 그걸 말해주기를 기다려 봐야겠다.

 

6. 17세기에서 보는 미래 

 

그러나,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것은 그대로 존중하고, 나에게 있어 이 책이 중요한 것은 17 세기의 일이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17 세기의 대재앙은 어느 날 순식간에 우리에게 찾아올 수도 있는 미래 또는 가까운 현재의 일이다. 게다가 근래 지구의 지구 온난화로 발생하는  급격한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감소 등은 우리의 미래가 그닥 안전한 것이 아님을 계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하던대로 그냥 산다. 불순한 상상을 하면 나쁜 일이 정말로 일어날 것이므로, 미래에 대해서는 항시 낙관만을 하기로 마음먹고는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 미래는 풍요와 발전만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산다. 과연 그러한가, 나는 책을 읽으며 잠깐씩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3일만 굶어 봐라 눈에 뵈는 게 있나 하는 상황이, 한 달 이상, 일 년 이상 계속 되는 어떤 때, 손수 곡식을 지어 먹을 땅 한 조각 없는 나는 과연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기나 할까, 배고픔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내가 도저히 그 상황을 상상할 수는 없지만, 배고픔에 정신을 놓아버린 어떤 여인이 내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17 세기의 이 나라는 그래도 농업을 나라의 근본으로 여기던 나라였다. 그러던 것이 등따셔지고 배불러진 다음부터는 농업과 농부, 몸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먹을 것을 생산하는 일에 대해서 이토록 무신경하고 예의 없어진 지는 몇 십년 안에 일어난 일이다. 나를 비롯해 국민 전체가 천박한 자본주의의 편리함에 몸을 맡기고 옛 것과 근본을 잊어 버린 탓이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리밭을 지났다. 보리는 눈을 맞으면 풍년이 든다고 했나? 아닌가? 언젠가 뉴스를 들었는데 보리밭에 내린 눈으로 냉해를 입지 않게 하라는 말도 들었었는데. 농촌에서 자랐으면서도 나는 모르는 게 많구나.

감귤밭을 지나며 보니 아직 따지 못한 감귤은 눈을 맞으면서 껍질이 부풀어 올라 있다. 아마 상품으로는 시장에 내놓지 못할 것이다. 밭 주인은 벌써 이 밭의 과일을 포기 하고 말았나, 그럴 수도 있겠다. 아직껏 따지 않는 걸 보면. 

 

나에게 낭만이었던 흰 눈이, 들판을 지나며 휘휘 바람소리를 낸다. 어느 새 차갑고 힘이 세졌다. 너무 오래 머물지 말고 견딜 수 있을만큼만 머물다 가시라, 오늘의 낭만을 접어 책갈피에 꽂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