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논문 읽기- 모유와 분유 사이에 끼어 든 파시즘

자몽미소 2009. 2. 11. 21:23

2009년 2월 12일, 음식문화학습모임

                                                            

논문, 모유와 분유 사이에 끼어 든 파시즘,



1. 일본에서의 인공영양-우유-의 등장


도쿠가와 시대에는 마비키라는 인구조절 관습이 있던 일본에  명치 시대가 되면서 이 악습을 폐지하고 부국 강병을 강조하며 인공양육이라는 것이 일어났다. 모유가 부족한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이자는 인공영양설이 등장(쿠와다, 국학자 사토, 이시쿠로) 하였다. 유제품 가운데서 연유의 소비가 증대되었고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외국산 연유의 품귀 현상이 일어나자 일본 연유가 독점하게 되었다.  1920년 모리나가는 일본 최초로 기계력에 의한 분유 성공에 성공하여 판로를 넓혔다. 중일 전쟁 후에는 만주, 조선, 대만 등지로 공급을 늘렸는데 이런 유업사들은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갔다.


한국의 경우,  1902년 유용종 젖소를 길러 생산 홀스타인 젖소를 들여와 착유우 목장 개설한 게 효시이다.


한일 합방 후 일제는 1911년 우유영업취체규칙을 만들었고 1935년 부터는 일본의 유업회사가 들어와 각 지역에 목장을 설립하였으며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비행기 접착제인 카제인 공급을 위하여 한국의 낙농을 장려 하였다. 1937 년 경성우유동업조합( 서울우유협동조합의 전신)이 유처리장을 세움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유가공장이 탄생되었다.


2. 1920년대 일본사회의 우생학적 국면


1920년대 일본의 우생학은 유행 사상 혹은 유행과학기술이었다.

즉 훌륭한 심신을 가진 인간 집단을 과학적으로 형성가능하다는 견해,  일본 국민을 향상 시킴으로써 일본 민족을 세계 제일선으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3.1920 년대의 생물학적 정치: 합리적 교화와 국민건강을 통한 전투력 양성


(1)식민통치를 위해 모성을 도구화 한다:  조선여성에 대한 교육은 일본식 양처현모주의 교육이념으로 체제에 순응하는 여성을 양성하는 데 주력함

- 1911년의 제 1 차 조선교육령: 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부덕과 국민된 성격 도야, 생활에 필요한 지식기능 부여

-1922년 제 2차 교육령: 신체의 발달 항목을 추가 하여 체조가 주당 3시간으로 확대

-교육이라는 과목: 가정에서의 자녀양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주목적. 아이 낳는 법과 양육지식에 관해서도 가르침

-1927년 여자고등보통학교 규정을 개정하여 공민 과목 추가:  지덕함양, 준법정신, 공존공영, 공공을 위해 봉사협동하는 국민된 소지를 육성하는 것을 교수목표로 함. 미래의 충량스런 일본국민을 교육하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염두에 둠.

-가부장제와 성적역할분업의 강조

-천황제 가족국가 이데올로기 강화: 일본의 호적법이 적용된 민적법을 강제로 시행함으로써 호주인 가장에게 복종하고 천황에게 충성할 것을 강요.


(2) 국가적 의료 통합

-위생경찰의 등장: 보건 부분과 방역부분 등을 장악하고 지역 행정기관과의 협조체제를 갖추어 국민의 건강을 보전한다는 명목으로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고 필요에 의해 강제하였다.

-경찰이 관장하는 사항

*보건부문: 의사, 기타요원, 상수, 음식물, 약품, 약품영업, 아편홉용 및 모르핀주사 취체, 도살장과 도축,여관 요리점 음식점 예기 창기 작부 등, 행려병인과 사망자, 오염된 곳의 청소, 묘지 화장장 밀 매화장에 관한 업무

*방역부문:전염병 예방 해항의 검역, 전염병원과 격리병사,급여 및 구조,종두,지방병, 수역예방,검우 등에 관한 업무


(3) 가족의 의료화 및 아동보호사업

 식민지배의 안정적 재생산을 위해 여성과 아동의 건강에 관심을 가짐.

-1916년의 우량아 선발 대회

-1924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지정

-유유아 애호주간 만들어 무료 건강진단으로 확대

-임산부의 건강에 대한 관심, 유아사망률 저하를 목적으로 함

-'아동 애호의 근본 의미는 민족의 우량한 종을 보존하고 거기서 태어나는 아동을 국민 총동원을 위해 애호하는 것에 있다'는 입장

-모자복지사업을 위한 최저표준의 설정

-유유아의 보호를 위한 아동 건강상담소 아동병원 순회진료기관 순호 간호사반 유아원 보육소 모자 홈 및 우유보급소의 설치를 규정

-신생아의 표준치 제정(동경제국대학의학부)


4. 모성과 양육에 관한 사회 변화

-근대적 육아방식: 기독교적 모자보건사업의 영향, 위생과 영양, 양육의 수량화와 표준화, 산파의 등장, 의료도구와 분유

-모유에 대한 관념의 변화: 수유의 규칙성과 절제의 강조, 인공 수유의 영양가 강조, 아이들이 우유로 양육되지 않는 것을 영양악화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파악함.

 

 

 

논문을 읽어보니.

 

 

완성된 논문이 아니라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세히 알지 못하겠다.

 

 

논문의 요지는 1920년대의 일본제국주의가 본국은 물론 식민지인 조선의 여성과 아동들을 장차 천황의 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보건과 영양면의 관심을 가져줬다는 것으로 조선의 우유 제조도 그 시대부터 이루어졌음을 보고하고 있다.

아이를 낳을 어머니들에게는 조선교육령을 개정해가면서 여성보통교육 때 체조 교육 시간을 더 첨가함으로써 건강한 몸을 만들도록 하였으며, 그때까지 조선 백성의 유아들에게도 의료사업과 아동보호 사업을 펼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문 제목에서 예상하는 대로 식민지 시대의 조선 아이들이 모유에 의존하다가 우유 공장이 설립되면서 우유를 섭취하게 되었다든가 낙농이 되면서 우유가 조선의 영아사망률을 얼마나 낮추어 주었는지에 대한 검토가 없다.

 

인공영양을 위해서 일본의 아이들에게 우유 섭취를 권고 하였다고는 하였지만, 조선의 아이들에게 그랬다는 말은 없다. 과연 이 글을 읽으면서 모유 수유만이 전통적인 육아법으로 알고 있던 조선백성들이 분유로 기꺼이 바꾸는 것이 가능했던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 시기의 일본 제국주의가 주장하던 인공영양의 의도가 천황에 복종할 신민을 기르는 데 있다고 하더라도, 모유를 먹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분유를 먹이도록 하는 운동이 조선 땅에서도 이루어졌다는 보고가 이 글에 없다. 또한 모유가 분유로 대체되어 아이들의 상당수가 인공영양의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은 우리 나라가 일본에서 해방된 후의 일이 아닐까 싶다. 모유가 분유로 대체되기에는 조선의 우유산업은 미비하였다고 보여진다.

필자가 밝힌 바와 같이 목장에서 생산된 원유는 개별적으로 균처리하여 특수층이나 일본인들에게 팔아오다가 1937년이 되어서야 우리 나라 유가공장이 세워져 상업적인 유가공산업의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했고, 2차 세계 대전 때의 낙농은 비행기의 카제인 공급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였으므로, 일제 식민지 시기의 낙농과 유가공제품이 조선의 여자들이나 아이들을 위해 소비되기에는 절대 부족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논문, 모유와 분유 사이에 끼어든 파시즘을 읽으며 나는 누가 파시즘의 대상이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1920 년대의 생물학적 정치를 비판하는 데에 글의 상당 부분을 배치한 이 논문에서 정작  합리적 교화와 국민건강을 통한 전투력 양성을 위해 일본이  이 땅에서 한 일은 여성교육과 의료에 대한 통제, 아동에 대한 관심이지 모유 부족인 아이들을 분유로 키우게 한다든지 하는 교육이나 운동은 아니었다. 그럴 수 있을 만큼 낙농이 보편화 되지 않았고 상업으로 확산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모유와 분유 사이에 끼어든 파시즘이 어떤 것이라고 하는 것인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