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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물/서경식,돌베게-2009년의 책읽기 (21)

자몽미소 2009. 7. 16. 19:39

 

 

 

읽은 날짜: 2009년 7월 15-16 일

 

 

 

 

  •   책 속에서 꺼내다

 

한국어판 서문

 

나는 이 책으로 1995년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았다. 문필가의 삶을 희망하고 있던 나는 이 상을 수상하면서 커다란 힘과 자극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빼어난 일본어 표현'이 이 수상의 주된 이유로 꼽혔다는 사실, 그리고 재일교포로는 내가 이 상의 첫 수상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저 기쁨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제가 조선을 식민 지배한 결과 나는 일본 땅에서 태어났고, 그들의 민족차별 정책 때문에 충분한 '우리말'교육을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내 민족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일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 같은 역사가 나의 '빼어난 일본어 표현'을 가능케 해주었고 끝내 이런 상까지 안겨준 것이라 할진대, 내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 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에세이스트클럽상 수상 인사말에서 나는 자신을 '언어의 감옥'에 갇힌 수인으로 표현했다. 

 

p 84- 85

 사실 『하늘을 나는 교실』에서 가장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글은 「제2서문」이다. 이 서문에서 케스트너는 '시종일관 재미있는 이야기만 만들면서 아이들을 기만하고, 재미로 아이들 정신을 홀리려" 애쓰는 아동서 작가들에게 분개하며 이렇게 충고한다.

 

어째서 어른들은 자기가 어렸을 때의일들을 그렇게도 새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아이들도 때로는 지극히 애처로운, 가엾고 불행한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변해버리는 것일까요?(…) 아이들의 눈물은 결코 어른들의 눈물보다 가볍지 않으며, 오히려 그보다 무거울 수도 있다는 말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어른의 눈물을 아는 자가 아이의 눈물을 안다. 아이의 눈물을 이해하는 자가 어른의 눈물깢 이해하는 것이다.

 

 

p 152-3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다'는 관념이 내 머리에 싹튼 것은 중학교에 입학한 뒤였다. 그 과정은 두 방향에서 일어났다. 하나는 간단히 말하면 내가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던 것에서 유래한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과학과 인문과학 분야에서 '꼭 읽어야 할 책'들이 방대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는데 그 점에 관해서는 이 자리에서 구구하게 쓰지는 않겠다.

또다른 하나는 '사춘기의 교양 콤플렉스'라고 불러야 마땅할 방향에서 시작되었다. 이 분야에도 "꼭 읽어야 할 책'들이 숨이 막힐 정도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책들을 읽은다는 말은 적어도 내게는, 자기를 연마하고 인격을 도야하기 위해서라기보다도 특정 부류에 편입하기 위해 필요한 자격과 동일한 의미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때로 그런 생각은 감당할  수 없이 비대해져서 강박관념이 되기도 했다..'특정부류'라고 막연하게 표현해둔 까닭은, 우뚝 솟은 산 정상을 우러러볼 때 그럴 수 있듯이, 참된 지식의 거인을 향한 동경과 단순한 '문화적 특권 계급' 에 대한 선망이라는 본디 상반된 두 가지 감정이 아직 미숫한 내 머리에서 혼란스럽게 뒤엉켜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마음 내키는 대로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 칭찬받던 그 어린 시절은, 어느덧 종막을 고하고 말았다. 이제부터는 더이상 단순한 즐거움으로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마음먹었다.

 

 

p 168 

루쉰의 「고향」 을 읽은 것이 언제쯤이었을까?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마지막 부분의 몇 행은, 마치 식물이 모근에서 빨아들인 자양분처럼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내 몸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숨쉬고 있다.

 

생각해보면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대지 위에 난 길과 같다. 애초부터 땅 위에 길이란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그곳이 길이 되기 때문이다. 

  

p 225-6

1968 년이 거의 저물어가고 드디어 입학시험을 목전에 둔 어느 날, 나는 미스즈쇼보에서 막 출간된 『프란츠 파농 저작집』을 읽었다. 막상 책을 펼쳐보니 파농이 말하려는 핵심은 작은형의 말과는 사뭇 달랐다.

 

하나의 다리橋를 건너는 일이, 만일 그곳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의식을 풍요롭게 하지 못할 양이면, 차라리 그 다리는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시민들은 예전처럼 헤엄을 쳐서 건너든가 아니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된다. 다리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오른 것이어서는 안 된다. (다리는) 사회 전체에 절대로 데우스엑스마키나 식으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그런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의 피와 땀, 두뇌 속에서 태어나야만 한다. (…) 시민들은 다리를 개인의 소유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때야 비로소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아무리 다르게 읽어봐도 이 문장은 '건축가나  토목기사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민의 대립물· 장애물로 변해버릴 다리라면 그런 다리는 불필요하다.

(중략)

아프리카 대륙의 한 귀퉁이에서 울려퍼진 , 이 놀라운 한 흑인 지성의 호소는 나를 크게 뒤흔들어놓았다.

자신이 재일 조선인이라는 사실, 바로 그 소외의 상황을 의식하는 일이야말로 전진을 가능하게 한다. 그 전진이란 다름 아닌 답답하고 옹색하게 굴절된 일상에서 광활한 보편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중략)

내가 대학 입시를 치르기 1년 전인 1968 년, 작은형은 한국의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막내형은 그보다 한 해 더 빠른 196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한국 유학을 떠났다.

작은 형은 파농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일까?

형들은 어떤 꿈과 이상을 품고 스스로를 '투기'하려 했던 것일까?

두 형들이 정치범으로 구속된 것은 그로부터 2 년 후인 1971년 봄이었다. 일본에서는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그 마지막 잎새를 떨구고 있었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 가족은 한국의 동포들과 더불어 좋건 싫건 정치적 폭풍의 눈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되었다.

막내형의 출감은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뒤에, 작은형의 석방은 19년이 지난 뒤에 이루어졌다.

  

p 235-6  저자 후기

 다행히도 서준식은 1988년, 서승은 1990년에 각기 살아 출옥할 수 있었다. 두 형이 보낸 시련의 나날에 대한 이야기는 『서준식의 옥중서한』과 서승의『옥중 19년』에 기록돼 있다.

오랜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근 20년 만에 두 형과 재회한 후 나는 두 사람이 어린 시절의 기질을 놀라울 정도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천성의 기질이 극대화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좋건 나쁘건 '작은형'은 예전 '작은형'의 모습 그대로였고,'막내형'은 역시 '막내형'의 기질 그대로였다. 지난날 형제 간의 다툼까지 재연되었다. 이 같은 현실은 한편으로는 나를 안도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얼마간 낙담시키기도 했다. "경험을 쌓으면서 인간은 변해간다"는 말은 응당 옳은 명제다. 그러나 '인간이란 정말이지 아무리 애를 써도 질릴 정도로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 역시 이와 똑같이 옳지 않은가. 형제들과 재회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지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좋건 싫건 어린 시절 각인되어버린 그 무엇을 짊어진 채, 사람들은 수많은 괴로움과 얼마 되지 않는 잗다란 기쁨으로 수놓인, 인생이라는 긴긴 시간을 인내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인생을 인내할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은 어린 시절 몸과 마음에 깊숙이 아로새겨진 그 무엇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나는 이 글을 쓰면서 한낱 지난날에 대한 향수에만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 어린 시절에, 또 저 1960 년대라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대에 나에게 각인된 무엇,- 그것을 '이상주의'라 하건 단순히 '고집'이라 부르건 간에- 그로 인해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  후니마미, 책 읽고 수다

글쓴이가 몇 년에 중학생이 되었다거나 몇 살 때 무슨 책을 읽었다거나 할 때, 나는 내가 그때 몇 살이었는지 그때 나는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더듬었다.  그가 읽은 책들 중에 내가 읽은 책이 있나 살펴 보기도 했다.  글쓴이의 책읽기는 들여다볼수록 넓어지는 이야기의 세계가 있어 그많은 아픔과 즐거움, 회환과 설렘들을 다 어떻게 저장하고 기억하고 있었을까 의아해진다. 그가 읽은 책들 중 내가 읽은 것도 몇 개 있었지만, 그이보다 덜 살았던 나는 까맣게 잊어버린 것들을 그는 풍부한 문장으로 변환해서 옛 책 속의 추억을 꺼내놓으니 말이다.

 

<하늘을 나는 교실>은 국민학교 졸업 때쯤 동네 아저씨가 월부책 장사를 하면서 아버지에게 부탁하러 온 덕분에 구입하게 된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에서  골라 읽었다. 하지만 내용은 거의 잊고 있었다.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몇 년 전에 읽은 것으로 그대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그나마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이었다. 루쉰의 <고향>은 마침 며칠 전부터 그 글을 일본어로 읽고 있어서 반가웠지만 일본어 공부 차원에서 읽는 것이라 글쓴이의 독후감이 없었다면 제대로 이해하였을까 싶다. 그가 읽은 루쉰의 다른 글들도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루쉰의 전집을 사 두고서는 틈틈이 읽었지만 전집으로 읽다 보니 오히려 글만 소비하고, 남는 게 없는 독서가 된 느낌이다.

 책이 책을 부르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니 저자가 읽었으나 내가 읽지 못한 책, 나도 읽었으나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책, 나는 이 책에서 처음 제목을 알았으나 저자가 읽었으므로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이, 책장수만큼이나 되어 버렸다.

 

이 책은 어린 때에 읽었던 책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그 책을 읽을 당시의 자기 삶의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책을 덮으며 이제는 소년이 아닌 어른 서경식을 떠올리자 우리 삶의 시간이 아득해 왔다. 

그의 형들은  청춘의 20년을 언제 열릴지 모를 감옥에서 보냈고, 그의 수상소감처럼  그는 언어의 감옥에 갇혀 살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세월의 감옥에 있는 것이다. 감옥의 문은 죽음으로서만 열리게 될 것이다. 소년이 아닌 그를 생각하자 이미 소녀가 아닌 내가 보인다.

  

블로그 정리를 하다 보니 독후감을 써 올린 책과 읽었으나 독후감을 올리지 못한 것을 합쳐야 겨우 150권쯤 되었다.  고작 이것이란 말인가, 고작 이 정도를 읽으면서  '일은 안 하지만 책은 읽고 있다'고 안심했다는 말인가. 하물며 읽은 책을 기억하지 못하고  내 감상문 조차도 가끔은 낯설기까지 하는 증상을 겪으면서, 내가 읽은 책을 나는 얼마나 소화 하였다고 할 수 있을까.

남편에게  이 느낌을 이야기했더니, "당신 환경이 안 되었잖아," 라며 애써 위로를 해 주었다. 동화책을 읽고 싶던 아이였을 때, 집이나 학교나 책 없기는 마찬가지였고, 시내 고등학교로 입학해서도 도서관은 시험공부 때나 이용하였고, 가까스로 구하여 읽은 것은 친척집에서 눈치보며 빌려 읽은 삼성출판사판 우리 문학전집 정도.  그 전집이 좋아 보여 대학에 들어가자 마자 삼성출판사판 세계문학전집을 샀으나 만찬장에서 한꺼번에 먹은 음식처럼 음미는 못했던 독서.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안에서 뻗쳐 나온 것들에 대한 성찰을 못해 나는 더 진흙구덩이로 빠지고 말았다.

책보다는 사람에 치어 산 20대의 나에게  책은 돌아가고 싶으나 가지 못하는 집과 같은 것이었다. 이혼을 하고 난 서른 중반부터 책은 자존심이 되어서 어려운 책일수록 더 꽉 잡고 앉아 나는 책을 읽고 있다며  힘도 안 되는 위안을 했었다.

 

공부하는 남편과 함께 살게 되니, 나는 이제 비로소 <환경이 된>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소녀의 시대는 가버렸고, 청춘은 아스라히 멀어졌고, 시간의 속도는 더욱 빨라져버린 아줌마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얻은 이 환경에서 나는 더러 안정되지 못한다. 가까스로 내 시간이다 싶어 책을 잡고 있노라면, 즐겁게 책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이렇게만 살아도 될까?" 싶은 불안이 스멀스멀 책갈피 사이로 나오며 문장 사이를 벌레처럼 기어다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난 시간을 징그러워한다.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았단 말인가, 불안이 자책으로 이어지고  내가 저질렀던 과오들이 환생이나 한듯이 되살아나 문장을 잡아 먹는다. 책을 읽을 수가 없게 된다. 

아직 읽어야 할 책이 너무나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아 허리 반듯하게 앉아 있다가도 "이렇게만 살다가 늙어버리면 젊은 날 너무 놀았다고 후회하지 않을까?" 싶어져 글이 눈에 안 들어 온다. 그런 날은 읽었으나 읽은 것은 없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읽은 책들의 거의가 그런 식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조금 남은 인상으로 독후감이라고 올리다 보니 나중에 내가 쓴 독후감을 읽다 보면,  이 책을 내가 이렇게 읽었나 의아해지기기까지 하는 것이다. 

 

나는 책을 왜 읽고 있을까?

어떤 강박관념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같다.

그때 했어야 했는데 못했다는 마음에 나에게 해 줄 것을 해 주고 있다는 생각도 있고, 모르는 게 너무 많으니 공부를 시켜 주어야겠다는 생각도 깔려 있다. 그러나 책을 읽었다고 해도  이제부터는 내가 유식해졌다거나 성찰이 깊어졌다거나 시야가 넓어졌다는 느낌은 없으니 학습부진아 같은 내 머리에 대한 짜증과 책임 때문에 끊임없이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보이는 것이다. 

 

나에게 책읽기는 방학숙제와 같다. 

 

 

 

 *서경식의 작은형 서승을 5년 전부터 봐왔다. 매해 방학마다  서울대, 전남대, 제주대, 리쯔메이깡대,오끼나와대의 학생들이 모여서 <한일 대학생캠프>를 하고 있는데, 그 모임을 할 때마다 대학생들을 인솔하는 그를 남편과 함께 만나게 된 것이다. 서승선생을 보고 있으면 고난을 받은 이 땅에 대해 어떻게 여전히 애정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지 의아하고 또 감탄하게 된다. 그의 적극성은 아마 이 땅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한 것이지만 오히려 자라나는 젊은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사명과 책임감에서 연유하는 듯하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 왜 왜곡되어서는 안 되는지 20년 수감생활 동안 몸소 겪은 사람이기에 가능한 다짐일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아들을 그 캠프에 참석시키려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서경식의 책은 여러 권 읽었으면서도 서승, 서준식 형제의 옥중에서 쓴 글들을 읽지를 못했다. 서경식의 글에서 형제에 대한 글을 읽는 바람에 그들의 내면을 보다 더 잘 보여주었을 그들의 글들을 잊고 말았던 것이다.

두 형제의 글은 이미 번역이 되어 나와 있다고 한다.

이번 여름 일본에 가서는 <소년의 눈물- 일본어 원제 子供の涙>를 구입해 와 읽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