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설국-글로 그린 그림

자몽미소 2009. 11. 4.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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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 책을 읽고 내 생각 

작가의 눈을 붓으로 삼아 내가 그 눈의 마을을 그리고 있는 듯 했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

(코꾜노낭아이톤네르오누케루또 유끼구니데앗따.요루노소코가시로쿠낫따.신고쇼니기샤가토맛따 .)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끝이 하애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추었다(다락원)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민음사)

 

에도시대의 습관대로 현과 현 사이의 접경을 국경으로 쓰는 바람에, 처음에 일한대역문고를 읽을 때는 다소 헷갈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일본어를 왼쪽에 놓고 읽는 동안은 일본 여자의 낭랑한  낭독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 후 대화체 에선 더욱 그랬다. 그리고 눈 내리는 온천 마을에 마치 온천을 하러 간  듯했다. 가끔은 여행으로 갔던  닛꼬의 온천을 생각했다. 밖엔 하얀 눈세상이고 사람들은 온천을 즐기는 겨울의 고요가  문장과 단락 속에  차갑고 희게 스며 있었다. 

 작가가 그려 보이는 풍경은 말 그대로 이젤 위에 종이를 놓고 지금 막 하나하나씩 마을의 나무며 비탈길, 눈바지를 입은 사람들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작가는 그의 붓으로 마음도 그려내고 있었다. 그가 그리는 언어는 독특하게도 색깔이 환하게 느껴졌다.

 

시마무라는 밖으로 나오고서도 요코의 눈길이 그의 이마 앞에서 타오르는 것 같아 어쩔 바를 몰랐다. 그건 마치 먼 등불처럼 차갑다. 왜냐면 시마무라는 기차 유리창에 비친 요코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 야산의 등불이 그녀의 얼굴 저편으로 흘러 지나가고 등불과 눈동자가 서로 겹쳐서 확, 환해졌을 때, 뭐라 형용하기 힘든 아름다움에 가슴이 떨려왔던 어젯밤의 인상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것을 떠올리자 거울 속 가득 비친 눈 위에 떠 있던 고마코의 붉은 뺨도 생각났다. (민음사   51쪽)

 

시마무라는 밖으로 나와서도 요코의 눈초리가 그의 이미 앞에서 불타고 있는 것만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은 먼 등불처럼 차갑다. 왜냐하면 기차의 우리창에 비친 요코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산야의 등불이  그녀의 얼굴 저편을 흘러 지나가고, 등불과 눈동자가 겹쳐서 확 밝아졌을 때 시마무라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떨렸던, 그 어젯밤의 인상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 거울 속 가득한 눈 속에 떠올랐던 고마코의 빨간 볼도 생각이 난다.( 다락원 99 쪽)

 

 

이윽고 제각기 산의 원근이나 높낮이에 따라 다양하게 주름진 그늘이 깊어가고, 봉우리에만 엷은 볕을 남길 무렵이 되자, 꼭대기의 눈 위에는 붉은 노을이 졌다.

마을 냇가, 스키장, 신사 등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삼나무숲이 거뭇거뭇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시마무라가 허무한 애수에 젖어 있을 때, 따스한 불빛이 켜지듯 고마코가 들어왔다.( 민음사  55쪽)

 

 

가늘고 높은 코가 약간 쓸쓸해 보이긴 해도 그 아래 조그맣게 오므린 입술은 실로 아름다운 거머리가 움직이듯 매끄럽게 퍼졌다 줄었다 했다. 다물고 있을 때조차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어 만약 주름이 있거나 색이 나쁘면 불결하게 보일 텐데 그렇진 않고, 촉촉하게 윤기가 돌았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지도 처지지도 않아 일부러 곧게 그린 듯한 눈은 뭔가 어색한 감이 있지만, 짧은 털이 가득 돋아난 흘러내리는 눈썹이 이를 알맞게 감싸주고 있었다. 다소 콧날이 오똑한 둥근 얼굴은 그저 평범함 윤곽이지만 마치 순백의 도자기에 엷은 분홍빛 붓을 살짝 갖다 댄 듯한 살결에다, 목덜미도 아직 가냘퍼, 미인이라기보다는 우선 깨끗했다. ( 민음사, 31) 

 

작가는 설국의 이야기를 세 개로 갈랐는데, 처음엔 산에 눈이 조금 남아 있고 신록이 올라오던 봄, 고마코를 처음 만나던 때, 두 번 째는 흰 눈 가득한 정월, 세 번째는 단풍이 들기 시작한 가을무렵이다. 나중에 작가 연보를 보니 처음에 냈던 글은 「저녁 풍경의 거울」 이었다. 온천으로 가던 기차에서 요코를 발견하는 그 대목인 것 같다.  그 후 2 년 뒤 연작형태로 냈던 단편을 모아 『설국』으로 출간했다.

 

『설국』에서 남자는 삶에 대한 허무함, 또는 헛수고라는 느낌을 갖고 살고 있다.

 

고마코가 아들의 약혼녀, 요코가 아들의 새 애인, 그러나 아들이 얼마 못 가 죽는다면, 시마무라의 머리에는 또 다시 헛수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고마코가 약혼자로서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 것도, 몸을 팔아서까지 요양시킨 것도 모두 헛수고 아니고 무엇이랴.

고마코를 만나면 댓바람에 헛수고라고 한방 먹일 생각을 하니, 새삼 시마무라에겐 어쩐지 그녀의 존재가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졌다. (민음사, 55쪽)

 

전혀 헛수고라고 시마무라가 왠지 한번 더 목소리에 힘을 주려는 순간, 눈(雪)이 울릴 듯한 고요가 몸에 스며들어 그만 여자에게 매혹당하고 말았다. 그녀에겐 결코 헛수고일 리가 없다는 것을 그가 알면서도 아예 헛수고라고 못박아 버리자, 뭔가 그녀의 존재가 순수하게 느껴졌다.(민음사, 39쪽)

 (중략 )

그러나 그런 도회적인 것을 향한 동경도 지금은 이미 깨끗한 체념에 싸여 무심한 꿈이 되고 말아, 도시의 낙오자처럼 오만한 불평보다는 단순한 헛수고라는 느낌이 짙었다. 그녀 자신은 이를 쓸쓸해하는 낌새도 없지만 시마무라는의 눈에는 묘하게 애처로워 보였다. 그런 사념에 빠져버린다면 시마무라는 자신이 살아가는 일도 결국 헛수고라는 깊은 감상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그녀는 산 기운에 젖어 생기 넘치는 표정이었다.(민음사 ,40 쪽)

 

소설 속의 남자는 서양 인쇄물에 의지하여 서양 무용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다. 문필가의 말단에 끼였으나 그런 자신을 스스로 냉소하면서도 이렇다 할 직업이 없다. 그의 기쁨이라면 서양인의 춤을 볼 수 없었기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쓰며  자신의 공상으로 환영을 감상하는 것이다. 겪어 보지 못한 사랑에 동경을 품는 것과 흡사하다.  그렇기에 소설 속의 남자는 자기 앞에 진지하고 순수한 여자를 보면서 자신이 여자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작가는 1972년 수술을 받고 퇴원하고 나서 한 달 후에 자살한다. 그의 나이 74세였다. 작가 연보에서 그의 죽음을 보면서 혹시는 작가가 이제 그만 살아야 할 이유로 이 소설의 남자 주인공 같은 마음을 겪은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가 썼던 모든 글에 대하여 자긍심은 커녕, 삶이라는 게 다 헛수고 란 생각으로 자살을 결심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작가 연보에 결혼과 가족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왜 일까, 일찍 부모와 누이 보살펴 주던 조부모까지 잃었던 작가에게 생을 이끌어 가게 한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잠시 스치듯 만나는 인연처럼 문학을 만나고 그러나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동안, 어느 날엔가는 이 모든 게 헛수고라는 느낌으로 남은 생을 스스로 잘라 내 버린 건 아닐까, 아래의 문장과 작가의 세상 이별이 겹쳐 느껴지는 건 지나친 상상일까?

 

시마무라는 돌아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줄곧 불을 지켜보는 고마코의 약간 상기된 진지한 얼굴에 불길의 호흡이 일렁거렸다. 시마무라의 가슴에 격한 감정이 복받쳐왔다. 고마코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목은 길게 빼고 있었다. 거기로 저도 모르게 손을 가져갈 듯, 시마무라는 손가락 끝이 떨렸다. 시마무라의 손도 따스했으나 고마코의 손은 더 뜨거웠다. 왠지 시마무라는 이별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설국의 상황은, 이 글이 쓰여진 시간으로부터 70년이 지난 현재의 눈으로 볼 때, 무척 낯설다. 눈내리는 온천마을의 자연이야 그다지 변한 게 없다는 걸 일본 온천을 겪어 보니 알겠지만, 그곳 게이샤들의 일, 온천의 손님들은 그때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냥 넘어가고 덮어 두게 되는 부분이다. 아내 있는 남자가 온천에 가서 여자를 만나고 세 번이나 다시 찾는다. 그러면서 자기를 데려가 달라는 또다른 여자의 요청을 받기도 한다. 남자의 아내는 여행을 떠나는 남자에게 그저 옷에 나방이 슬지 않도록 주의만 줄 뿐, 남자 또한 아내에게 크게 죄책감 같은 건 없고, 게이샤도 스물 일곱 쯤 되면 늙은 여자가 된다. 스물 일곱의 나이를 늙었다고 하니 주인공 남자의 나이는 몇 살쯤 된 것인지? 책으로 읽어 한 남자와 한 여자로만 상정하지 않는다면  소설 읽기는 몇 시간 동안 몰입할 수는 없었으리라 . 이를 토대로 만든 영화가 있더라도 일부러라도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마코와 시마무라의 대화도 설명과 묘사가 적은 짧은 호흡이라 그 사이 사이에 겪는 감정 변화를 시마무라가 자기말로 묘사하지 않는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일본인들의 정서라면 이해가 될까, 현대 일본인들도 여자와 남자가 나누는 짧고 단순한 대화로 남자와 여자의 들고나는 감정 상태를 이해할 수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러나 이해 불가능은 그대로 둔다. 굳이 그걸 이해하지 않고도 이 소설이 주는 맛은 경이롭다. 그건 바로 문장이다. 그림을 그리듯 그의 문장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가 되어 설국을 방문하게 한다. 그가 보는 게 바로 내 눈이 보는 것이 되게 한다.  

『설국』 읽기는 온천의  희고 순진한 겨울을 느끼는 여행이었다.

 

 

일본어로 이 소설을 옮겨 적겠다고 해 놓고 하다말다 했다. 소설을 다시 읽으며 이번 겨울엔 다시 그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에만 해 봐도 좋을 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