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마루야마겐지-<달에 울다> -옮겨쓰기

자몽미소 2009. 11. 4. 15:14

 

10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설국을 읽으며 가슴 저 쪽에서부터 차오른 감회 때문인지, 아들에게 넘겨준 책장을 뒤져 <달에 울다>를 꺼내 들었다.

11월은 기말 리포트 작성도 해야 하고, 매주 내는 쪽글도 읽어야 할 분량이 많아 여러모로 분주한 마음이지만, 11월 하늘은 푸르러 드높고, 밤에 고개를 들어 보면 별과 달이 차갑고 충만하여 그것들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문장 좋은 이의 글로 다독일 뿐이다.  

 

12년 전의 메모.

 

마루야마겐지 <달에 울다> 

 봄 병풍에 그려져 있는 것은 중천에 떠 있는 어스름 달, 동녁 바람에 흔들리는 강변의 갈대, 그리고 거지 법사다. 늘어진 버드나무 뿌리께에 털썩 앉은 법사는 달을 향해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짜내며, 격렬하게 비파를 타고 있다. 눈은 둘 다 멀어서 광대한 강변 일대에 내리붓고 있는 푸른 달빛을 전혀 못 본다. 그러나 때가 꼬질꼬질한 그의 오체는 삼라만상을 남김없이 포착하고 있고, 무궁한 시간과 공간에 잘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팽팽한 현의 떨림은 미지근한 밤 기운을 자극하여 봄을 증폭시키고, 나아가 병풍 곁의 초라한 이불에 기어들어가 있는 소년의, 아직 두부처럼 어린 영혼에도 깊이깊이 스며든다. 볏짚을 채운 요와 잉어 기치를 부셔서 만든 이불 사이에 낀 아이는 꼭 30 년 전의. 막 10 살이 된 나이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뒤척이지도 않는다. 이불에 누운 채, 달빛에 의지해서 눈 한번 깜짝이지 않고, 낡은 병풍의 묵화를 바라보고 있다. 벌써 오랫동안 그러고 있지만, 몸은 전혀 따뜻해지지 않는다. 특히 발가락 끝이 시리다.

 

봄 폭풍우는 지금 막 가라앉았다.

식수림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마을은, 다시 한번 바닥없는 정적에 푹 잠기고, 여기저기에서 실개운 소리가 되살아나고 있다. 안개처럼 조용하게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것은 몇만이라는 누에가 뽕잎을 부지런히 뜯어먹는 소리이다. 하얗고 통통하고 살찐 그 벌레들은, 짧은 인생을 충실함의 연속으로 보내려고 하고 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방 밖의 기척에 온 신경을 모으고 있다.

 

 이윽고 현관문이 기세 좋게 열렸다 탕 닫힌다.

면장네가 한턱 내는 술을 얻어먹기 위해 아버지가 나가는 길이다. 질질 끄는 발걸음 소리가 여느 때와 달리 힘차게 느껴진다. 그 소리는 마당에서 나무다리로, 다리에서 풀길로, 길에서 둑 아래 사과밭으로 옮겨가, 뚝 끊어진다. 나는 페에 고인 탁한 공기를 조용히 토해내고, 한참 있다가 병풍 속에서 불고 있는 산들바람을 가만히 들여 마신다.

 

오늘 하루 종일, 아버지는 정말 신나 있었다.

부자유스러운 다리로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만큼 달리고 또 달렸다. 오후가 되자 녹초가 되어 죽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 속출했지만, 아버지만은 지칠 줄을 몰랐고, 그 눈은 사냥개 보다 빛났었다.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틀림없이 생선 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 옷은, 사람을 좇을 때에 입는 윗도리하고 바지일지도 모른다.

 

 

아직 온 마을의 개가 흥분하고 있다.

어느 한 집의 개가 생각난 듯이 짖으면 차례차례 짖기 시작해서, 일대 합창이 되어 산과 계곡에 메아리친다. 그래도 우리 집 흰둥이는 가담하지 않는다. 흰둥이는 지금 광 처마 밑에 쌍아 놓은 볏짚 위에 엎드려 있다. 아버지가 여느 때의 아버지가 아니게 되어 버린 오늘, 흰둥이는 여느 때의 흰둥이이기를 계속 했던 것이다. 

처음에 아버지는 집요하게 흰둥이를 충동질했다

흰둥이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눈앞을 추적대의 무리가 굉장한 기세로 달려 지나가는,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러나 흰둥이는 잠시도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까지도 흰둥이를 쓸모없는 놈이다, 고 단정지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흰둥이가 좇지 않았던 것은 상대가 산돼지나 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그것도 같은 마을 주민을 추적하거나 하는 것은, 똥개 중의 똥개나 할 짓이다. 흰둥이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움직이는 똑똑한 개라고 하는 사실을 어른들은 어째서 모르는 것일까.

 

소동은 저녁 나절에는 끝났다.

이런 일은, 아마 앞으로도 100년 정도는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쪄 말린 생선 냄새가 나는 생선 껍질 옷을 벗었다, 땀과 진흙투성이인 그 옷은 여기저기가 터져 있다. 어머니는 강물에서 풍덩풍덩 빨고 나서, 집 앞 사과 나무 가지에 널어 놓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 아버지가 대륙에서 가지고 온 것은, 질질 끄는 오른쪽 다리와 그 괴상한 옷, 두 가지였다.

 

병풍 속에는, 아직 도망치고 있는 사나이가 있다.

날이 저물고 달이 떴다고 하는데도, 사나이는 여전히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다. 숨소리는 거칠고, 입 가장자리에는 끊임없이 잔 거품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넓은 강변 자갈밭 한가운데를 흐르는 여울, 그는 물보라를 튀기면서 거기를 건너간다. 그렇지만 추적대의 모습은 아무 데에도 없고, 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메밀껍질이 든 베개에 흐른 침을 손가락으로 닦는다.

그리고 나서 나는 입에 하나 가득 고인 생침을 꿀떡 삼킨다. 몸은 기진맥진 지쳐있지만, 눈과 머리만은 맑다. 오늘밤은 아마 온 마을의 사람들이 잠들지 못할 것이다. 특히 아예코는 당분간 한숨도 자지 못할 것이다. 그뿐더러, 모내기방학이 끝나도 학교에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분간은 시내에 있는 친척집에 가 있을 것이다, 라고 남자들은 이야기 하고 있었다.

 

법사는 여울을 건너는 발소리를 알아차린다.

순간 법사는 입을 다물고, 동시에 손바닥을 비파에 꽉 대어 현의 떨림을 멈추게 하고, 귀를 기울이며 아무것도 못 보는 눈을 두리번거린다. 얼마 있다 철퍽철퍽하는 소리는 멀어지고, 도망치는 사나이의 모습은 작고 작아져, 끝내 황혼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다,. 뒤에 남은 것은, 갈대 잎 끝을 건너는 따뜻한 바람, 엷은 달빛, 그리고 깊이깊이 깊어지는 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