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민족지 8강

자몽미소 2009. 11. 3. 16:02

 

국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생활 실태와 적응 전략에 관한 사례연구 -서울대 인류학 석사논문- 을 읽고


 한국학과정 1학기

MJ.K 

(2009. 11.3 화)



1.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의 특수성


-서구와 달리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역사가 짧고 그 수도 적어 1980 년 후반에야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외국인의 합법적 취업을 제한한 출입국관리법에 의하여 다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불법 취업자이다

- 한국에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들은 단기 체류자가 많고 지리적으로 분산되어 서구에서의 집단 거주지는 발달하지 못했다

- 건설, 서비스업 보다는 영세 제조업 분야에 취업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율이 높다. 서구 사회에서와 같은 노동시장에서의 다양한 분화는 진행 되지 않고 있다.


2. 왜 방글라데시 노동자인가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중국, 필리핀에 이어 그 수가 많은 외국인 노동자 집단이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서도 한국인들에게 낯설고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을 지난 민족집단 중의 하나로 그러한 특성들이 지배와 저항의 문제를 파악하는 데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3.국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실태


국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20- 30 대 중반의 남성들로서 본국에서 중간계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본국에서 만난 브로커를 통하여 한국에 들어오지만 한국에서는 내국인의 절반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 영세 제조업에 취업하고 있다. 공장 내의 사회적 위계에서도 나이, 근무연한에 상관없이 차별대우를 받고 열악한 작업 조건과 추운 기후, 음식 문제와 장시간의 노동으로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을 한편 묵인하면서도 취업에 따른 법적 권리는 불법 체류라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외국 인력 정책 때문에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산재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서로 활발히 교류한다. 비공식적 연망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협력관계를 만들어낸다.


4.  서로에 대한 이미지가 만들어 가는 것


한국인 관리자들과 근로자들은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 대하여  ‘미개하거나 게으른 사람’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부정적 이미지 만들기에는 미디어도 한 몫 거드는 측면이 있다. 한국인들의 방글라데시 노동자에 대한 인종주의적 이미지와 담론들은 임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기본 권리도 인정받지 못한 채 착취와 노동 통제의 대상이 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어두운 공간’을  은폐하고 정당화 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한국인들이 오염된 것을 먹고(개), 동물처럼 섹스를 즐기는 집단으로 여긴다. 심지어는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한국 여자를 섹스에 강하며 섹스를 원하는 표시로 보기도 한다. 자기 나라의 여성과 비교하였을 때 한국 여자들은 매우 위험한 존재이다. 그러나 한국 아줌마들은 그렇지 않다.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대립적으로 작용하여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함축한다. 한국인들은 겉으로는 문명화 된 듯 하지만,  야만적인 풍습을 지녔고 도덕적으로 오염되어 있는 사람들로 여기면서 반대로 자신들은 외면적으로는 무력하지만 한국인과 달리 도덕적으로 청결한 존재로 생각한다.

그들은 경제적 이득을 위하여 그들을 비인간적으로 취급하려는 한국인들을 자신들의 종교, 문화적 상징들을 동원하여 비도덕적인 존재들로 범주화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연대를 강화한다.


5. 자본주의에 매달린 가난한 삶


이 논문을 읽으며 처음 읽는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많이 본 주제와 문제가 논문 전체에 깔려 있음을 느꼈다. 


내가 초등학교 어린이였던 70 년대, 내 친구들 중엔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집엔 어딘가 우리집보다 윤택한 느낌이 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텔레비전과 전기밥통 이었다. 차차 그 아이들의 아버지가 일본에 가 있으며 그것들은 일본에 돈 벌러 간 아버지가 보내온 것들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엄격한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안방에 있는 텔레비젼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내 친구들이 부러웠다.

이 논문의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일본에 돈을 벌러 간 내 친구 아버지들과 다름없었다. 친구들이 시집을 갈 때쯤 해서 친구들의 아버지는 매우 늙어 버린 아버지로 고향에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같이 일하던 누군가의 밀고로 또는 일본 경찰에 재수 없이 잡혀서 강제로 귀국한 경우도 있었다. 대개 그들은 고향인 여기서 적응하지 못하고 또다시 밀항을 했다. 친구 아버지의 얼굴을 확인하고 ‘이제부터 친구는 마음대로 텔레비전을 못 보겠구나’ 측은하게 여겨주는 것도 잠시, 어느 틈엔가 친구네 집은 예전처럼 아버지 없이 다사롭게 살았다.

아이들 다 키우고 나서 고향에 돌아온 아버지들은 일본에서의 생활을 자세히 이야기 하지 않았다. “고생이야 했지” 라는 말에 모든 게 함축되어 있었다. 일본 사람들 보다는 그들이 밀항했다는 것을 아는 한국인 공장 주인들이 더 지독하다는 말도 들렸다.


논문을 읽으며, 방글라데시 노동자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을 본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하려면 공용어로 영어를 써야 하겠지만 한국인 노동자들이나 관리자들은 영어회화에 능통하지 못하다. 그들이 쓰는 말은 한국어뿐이고, 한국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말을 못하는 바보 취급한다. 한국말을 못할 뿐이지 언어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닌데도 한국인 노동자들과 관리자들은 방글라데시 노동자들보다 그들이 우위의 인간이라고 여기는 태도를 보인다. 

한편, 한국인 관리자들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임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당성 획득을 강화한다. 그러므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 마련이나 임금 수준의 변화, 그들의 문화를 이해 해보려는 노력 등은 저조할 수밖에 없고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집단적인 대응을 당연한 노사 문제로서 서로 의논해야 할 일로 여기지 않고 “우스운 일”로  치부한다. 심지어 이들의 노동을 대신할 전자동 기계화를 구상하면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을 노동 수단의 하나로 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그들의 인간 존엄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하는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한국인들의 문화가 자신들의 문화 보다 낮고 비도덕적이라는 담론 이상이 되지 못한다. 가끔 메니저 역할을 하는 리더가 있긴 하지만 그들이 누려야 할 것들을 얻어 내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정을 겪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다시 친구나 친척들을 한국으로 부르고 또다시 입지가 불안한 상태에서 한국에서의 외국인 노동자 역할을 이어나간다.


논문이 쓰여진 1993년에서 15년이 흐른 지금이지만 한국 노동시장에서의 제 2, 제 3의 노동자 집단들은 여전하다. 그 전보다 한국으로 입국하는 노동자의 나라 수가 좀 더 많아졌을 뿐이고, 이들의 복지나 처우에 관해 획기적인 변화는 없다. 여전히 그들은 한국 사람들이 마다하는 작업에 투입되고 한국 사람들보다 더 낮은 대우를 받는다.

뉴커머 한국인들이 거품경제가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으로 가는 것처럼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노동 실태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들의 적응 전략이 각각의 나라, 각각의 세대 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노동자란  기계를 대신할 노동수단이라는 자본주의 사고 사고 체계가 자본가들의 생각 속에 굳건한 이상, 부자 나라로 가는 가난한 나라 국민은 가슴에 억울함과 분노를 담으며, 이 나라의 돈이 고국에서 대치시킬 가치에 자신의 삶을 매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