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한창훈 산문집,향연- 2010년의 책읽기

자몽미소 2010. 4. 26. 19:46

 

 

 책을 읽고 내 생각

그가 보인다.

 

소설에서 보다 산문에서 작가 한창훈이 보인다. 아니, 사람 한창훈이 더 잘 보인다고 해야겠다.

산문집에 녹아나온 한창훈을 보고 나니 또, 내가 보인다. 섬에 살지만 결코 섬사람이고 싶지 않은 나와 섬에서 태어났기에 섬으로 돌아와 사는 한창훈은 섬 출신이라는 것 말고는  남자와 여자가 다른 성별이듯 너무도 분명하게 다른 게 많아서 책을 덮고 나자 심한 열등감마저 든다. '나이도 나 보다 한 살 밖에 더 안 먹었구만은 어찌 이 사람은 작가로서 이토록 훌륭한가' 싶은 마음이 들자, 꿈에서라도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꺼내서는 아니 될 것 같다.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문학을 하고 싶다거나 어쩌다가 소설가라도 꿈꾸는 사람이라면  "~  하고 싶다" 식의 말은 변집섭의 노래 '희망사항' 처럼 가볍게 지껄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 "( 문학, 소설, 글 )로서 ~ 하고 싶다" 했으면   한 이 십 년쯤은 (문학,소설, 글)이라는 우물 터를 파면서 혹시는 파는 우물터에서 물이 나올 가망성이 보이지 않는다손치더라도 그런 것에 흔들리지 말고 묵묵히  파고 파야 할 것이다. 한창훈은 오래 달리기 같은 것도 잘 할 것 같다. 그의 글을 읽다 보니 사람이 무겁고 진중하고 성실하고 솔직해서, 조그만 바람에도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날씨에 따른 기상변화 다양한 나와 같은 사람과는 매우 다른 지점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게 된다. 그래서 바로 아래의 항목은 내가 한창훈에 비해서 몹시도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몇 가지로서 책을 읽는 동안, 아, 나는 이런 게 없으니까 글로 밥도 못 만들고, 글로서  내 삶의 길도 못 만들었음을 절실히, 아프게, 뼈도 아프게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는지, 

이십 대 중반부터 나는 여수에서 일했다. 수산물 가공 공장과 현장, 작업선 위가 내 거쳐였다. (중략) 가는 곳마마 인정 물태가 넘쳐났다.

화려한 과거와 강인한 근력과 술을 장기로 삼은 사내들이 있었고, 가난과 정신력과 자식에 대한 애정을 재산으로 갖고 있는 여인네들이 있었다.( 중략)

사내들은 힘으로, 여인네들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그 일을 해 냈다. 쥐고기 공장에 다니는 여인네는 어깨 힘이 좋았고, 새우 까는 할매는 손등이 맨들맨들 했다.

(중략)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기에 그들은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지치고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거꾸로 들어 털어보면, 철학자 한두 명 가지고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무게의 고통이 쏟아질 것 같았다. 니체 말대로, 세계사 한 편씩 기록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우는 여인네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대신 웃었다. 깔깔깔. 대화의 반 이상이 웃음으로 채워졌다. 웃음이 없었다면 여인네들은 말라 죽어 버렸을 것이다. 눈물은, 나중에 환갑상 받아 놓고서야 한 방울 흘릴 일이었다. ( 61- 63 쪽)

 

 

일주일 여관 잠 자며 원주 박경리 선생 댁에서 마당 평토 작업을 하고 간이 화장실을 급조하고 야외 부엌을 만들었다. 간간이 박경리 선생께서 새참을 직접 만들어 주셨는데 그럴 때마다 ' 말씀만 하시면 오늘 밤 안으로 사층 연립주택도 지어놓겠습니다.' 마음 속으로 복창하곤 했다 ( 135 쪽) 

  

삶은 어떻게 이고 가는지,   

새로 얻은 집은 차가 올라올 수 없어 사람 힘으로 짐을 옮겼다. 지금까지 했던 숱한 이사 중에 가장 힘들었다. 도와주러 온 동료들이 땀께나 쏟았다. 앞으로도 최소한 한 번 이상의 이사가 보장되어 있는 셈이라 이사의 이력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마 여러 번 더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 숱한 이동은 나를 어디에 이르게 하는 장치들일까.

고향으로 가니 좋야, 고 물어온다. 고향이라고 무조건 좋을 것만도 아니어서 대답이 쉽지가 않다. 단지 아침에 일어나 빗자루를 들 수 있어서 좋다. 마당 비질하는 소리가 가슴 속 묵은 때를 벗겨내는 소리만 같다. 고향이든 아니든, 살기 좋은 곳은 스스로 부지런해지는 곳이지 싶다. ( 84 쪽)

 

 

"형은 작가라서 기차나 버스 탈 때 생각을 많이 하지요?"

웬걸 그게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 아닌가. (중략) 

여행이 정신을 살찌게 하는 것은 여행 중에 부닥친 사건이나, 동행 또는 우연히 만난 사람 때문이지 폼 나는 사색 때문이 아닌 것이다. 사색은 사건이나 사람 사이에서 부딪히고 소통하다 보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 아니어겠는가.( 중략)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눈에 보이는 저곳을 가기 위해, 먼 곳을 우회 하는 것, 하긴 그게 여행이다. 

 

 

나는 삶을 이겨내는 기능으로써의 웃음을 좋아한다.

힘들수록 웃는 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살려고 웃는 것이다.

 

나는 이야기 할 때 스스로 세운 원칙이 하나 있다. 말 많은 이들과 오랫동안 술좌서을 같이 하다가 터득한 것으로 '새로운 의미나 정보. 웃음. 그외는 다물고 있자.' 이다.  유머와 위트는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웃으면 건강에 좋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고 깃털로 이불 만드는 격이다. 손해 볼 것 없다. 밑천도 안 든다. 이렇게 좋은 게 또 어디 있겠는가 ( 250 쪽)

 

 

봄은 사람들 신발 옆으로도 온다. 누웠던 야생 달래가 끄응 일어서고 있다. 파릇파릇 살아 오르는 중이다. 이것 캐다가 무쳐 씹으면, 봄은 이빨 사이에서 웃을 것이다.( 254쪽)

 

글은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가난과 외곽을그리는 소설은 의미를 잃는 시대에서 나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 변방의 삶을 그들의 언어로 쓴 소설이 나오면 으레 고색스러운 방 하나에 한꺼번에 모아놓고 체크인 해 버리는 게 요즘 풍토이다.

토속적이다. 질펀하다. 한 마디 내뱉어 주면 된다고 여긴다. 평론가들의 모국어 기피, 근친혐오, 그 배경 속에 살고 있다.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욕망과 만나고, 그렇게 때문에 우울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웬만한 책임은 피할 수 있는 소설이 대부분이다. 대중 속의 고독도 사람의 일이라 작가가 그곳으로 손을 뻗지 않으면 안 되지만, 너무 많이들 어두운 카페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 개인의 우울이 사회의 비참보다 더 크고 강렬해져 버린 것. 이른바 문학적이다. 그러나,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99쪽)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 먹은 게 공장 생활을 하던 이십대 중반이었다. (중략)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를 전혀 몰랐다 (중략)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 눈에서는 형형한 광채 내뿜으려, 독함 줄담배 뿜어대며, 미친 듯 써대다가 북북 찢으며 아니야, 이 따위가 아니야, 이렇게 울부짖어야 했다. 새벽에는 피를 토하는 지경에 이르러 쓰러지고 정신력 하나로 소생하여 다시 머리카락 쥐어뜯으며 펜을 집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한 줄 써 놓고 허리 비틀고 그 한 줄 지우고 머리를 긁고, 누구 술병 들고 놀러오는 놈 하나 없나, 문이나 자꾸 열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큰 충격이었다.( 124 쪽)

 

내가 선생께 배운 것은 글 쓰는 기교가 아니라 삶을 궁리하는 방법이었다. ( 126 쪽)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어디만큼 울타리를 치고 어떤 괭이로 땅을 갈고 무슨 씨를 뿌리고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지 한 가지도 알 수 없었을 때 문득 내 눈 속으로 들어온 장면.

아하, 소설 속에서 인물이란 이런 것이구나, 주인공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깨닫게 해 준 소설이다. 현실에서 어떻게 소설이 나오는가를, 사람에게 어떤 마음을 지녀야 되는가를 가르쳐준, 손때 묻은 소설이다. (143 쪽) 

 

 

그의 글에서 엿보았다.

 

오전엔 남편과 수목원엘 걸었다.

집 마당엔 바람이 일었고 후두둑 비도 뿌리더니 수목원 소나무 숲길엔 바람이 자고 비도 멈추었다. 해는 나지 않았으나 다른 날에 비해  공기가 순했다. 

 

산책길엔 한창훈의 산문집에 나왔던 작가와 동네 사람들도 동행했다.

왜냐하면 한창훈의 글 쓰는 능력만큼이나  인간 관계 능력에  감탄을 했기 때문에 산문집에 나왔던 사람들에 대해 뒷담화를 해야했다. 그러나 그 뒷담화는 한창훈의 능력에 대한 감탄이기 보다는 '나 라면 그렇게 못해' 라며 내 약점의 고백이 되었다.

나는 말했다. " 송기원 씨는 술 마시면 동성에게 키스를 한다대,  혀 까지 집어 넣었던 일도 있나봐, 그런 일도 있었는데 한창훈 씨는 그 사람과  평소에 잘 지내더라. 어떤 시인은 술만 먹으면 야밤에 전화를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늘어져서 차비 달라고 한대, 그런 걸 어떻게 견디지?, 그리고 글로 써내기도 하는 거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글 소재도 안 될 거야. 거지하고도 형, 아우 하면서 지낸 것도 있던 걸!"   나 같으면 말이다 유명한 소설가라 했어도 송기원 씨 징그러워 버렸을 것이고, 어떤 시인은 상종을 안 했을 것이며, 거지 하고는 형 아우는 고사하고 말도 안 붙였을 것이다.

 

솔직하자면, 나는 문학판의 그런 흐트러짐, 또는 지나친 어울림이랄까 그런 게 싫은 것 같다. 문학판 이라고 하는 동네 사람들을 싫어하고 있다. 시인, 소설가를 사실은 그의 문학적 성과 를  먼저 보지 않고 그의 평소 행동 거지 및 바른 생활 정도, 사회 예절 등등 으로 먼저 예단을 하는 것이다. 내 애니어그램 성격 패턴에 <자>가 등장 했는데 내 성격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자>는  문학적 낭만성을 보이는 <문학하는 사람들>을  때리듯이 바라보게 한 다음에 절대 내 곁에서 오지 못하도록 하는 막대기 같은 걸로 쓰고 있나 보다. 그러다 보니  내 주위에서  <문학>의 간판을 달고 있는 이로서 마음에 들었거나 흠모하게 되는 사람을 만나게 되질 않는다. 그 사람 괜찮은 작가야 할 정도가 되려면 내 눈에 그의 생활은 절대로 안 보이고 오직 출판된 작품만 보여야 할 것이다.

 

산문집, <향연>에서 나는 작가가 쌓아올린 글의 탑에 열등감을 느꼈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과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경계를 봤다. 나에겐 매우 없고 그에겐 상당히 있는 그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경외이다. 그가 몸 부려 살고 있는 작은 섬 처럼 보잘것 없어 뵈는 사람들, 변방의 사람들, 아웃사이더들을  바라 보고 그들의 삶을 쓰고 있다. 자칫 우리 눈에 안 띄거나 무시하거나 할 인생들이었지만  그는 건강한 정신력으로 삶을 마주하여  그들을 살리고 자신도 살려내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글은 살아있는 글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