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이문구의 관촌수필- 2010년의 책읽기

자몽미소 2010. 5. 1. 23:00

 

 

  *책을 읽고 내 생각 

내가 중학교 1학년 겨울을 보낼 때 나온 책이니  세상 나온 지 삼 십년이 더 되는 책을 이제야 비로소 읽었다. 그새 현대 한국문학전집 류에서 이문구의 글을 읽었을 것도 같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없었으니 아예 못 읽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 책장을 열어 몇 장을 건널 때만해도 이 책을 다 읽게 될까 싶었다. 한창훈의 글에서 이문구의 문장에 진한 호기심을 묻혀 오지 못했다면  서너 장 읽다가 책장에 꽂아두고 다시 몇 년을 흘려 보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읽기 잘 했다, 고 책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관촌수필>엔  고향 사람이 내 옆에 와서 말하는 것처럼이나 대화체의 문장이 많아서 소리가 글자가 되고 문장이 되니 내 눈에서 읽는 글이 귀에서 울리는 즐거움을 느꼈다.  책을 잡고 있을 때마다 좋은 수확물을 얻은 듯한 기쁨을 누렸다.

 

부가적으로는, 출신 계급간 구별이 여전히 그 흔적을 남기고 있던  50년대 초반의 육지 농촌을 들여다 보았다. 내가 살았고 기억하는 농촌 공동체엔( 아무리 그게 6-70 년대였다 해도) 육지 농촌의 경우처럼 양반 상놈의 구별이라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살던 마을, 아니 이 섬의 사람 살이가 아예 그러한 구별 없이 살았었기에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과 주인공이 관계하는 모습은 옛영화를 보는 듯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저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주인공이 속한 집안과 소설 속 인물들은 사회학적인  지식으로라면 계급간 갈등을 빚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 어디서도 주인집을 향하여 반항하는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노골적으로 상놈 양반을 가름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항변이 일어나지 않았고 주인공 또한 그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여 커서도 나이든 사람에게 존대말을 쓰지 못하였다고 고백하는 것을 읽었다. 이외였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이 소설 연작은 꼬마 주인공이 커서 어른이 된 다음까지 이어졌다. 작가가 어떻게 유년을 보냈는가를 보다 보니 시절은 가난했지만 사람다운 사람이 있던 때를 살아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새 아이와는 너무나 다른 아이, 새벽 4시에 깨어 할아버지의 요강과 타구를 씻는 손자는 작가가 그려낸 옹점이, 대복이, 석공등 소설에서 중요하고 소중히 다룬 다른 인물들의 사람됨과 더불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게 되는 인물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50 년대이고 쓰여진 때가 70년대인데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은 2010년이니 벌써 60년의 시간 간극이 있다는 걸 자꾸만 확인해야 했다. 가난하지만 사람이 살았던 세상이라는 부러움도 일었다. 그러니  요즘 세상이라면 여간해서는 만나 보기 힘든 인물들을 소설 속에서 만나본 셈이다. 

 

글의 중심에 사람과 그의 삶을 오롯이 담음으로써 그 삶에 어떤 환경과 배경을 두고 있는지도 알게 되는 이문구의 소설은 글쓰는 일에 대한 지침을 알려주었다. 문학은 인간을 이야기 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문구의 소설을 읽으면서 내 고향을 생각해 봤다.

어찌하여 나는 내 고향에 대해서 쓸 이야기가 빈약하고 고향의 사람에 대해서 말할 것이 없을까.

도시라고 하지만 같은 섬이고 내 집과 고향집이 지리적으로 너무 가까워서일까, 가까운 나머지 그리움을 쌓을 시간이 얇아서 그런가 하다가 며칠 전 서울에 갔던 때의 내 마음이 떠올랐다.

 

나는 광화문역 출구 옆에 있는 자콥이라는 스파케티 식당에 앉아 있었고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들과 거기서 만나기로 하고 먼저 올라가 자리 잡은 곳은 제라늄 화분이 놓인 이층 창가였다. 아, 나는 그 장소가 행복했다. 창밖으로는 동아일보 옛건물과 새 건물이 보였고 굵직한 회사의 빌딩들이 즐비했다. 서울 한복판의 그 거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스무살 때 이곳에 왔었다면 지금은 어땠을까 싶었다.

 

내가 살던 동네, 내가 살던 집을 싫어하고 벗어나고 싶어하던 아이에게, 그리고  10살 무렵 어느 틈엔가부터는 공기놀이, 고무줄 놀이, 숨바꼭질, 바닷가에서 헤엄치는 일 따위 고만한 아이들이 밤늦은 줄 모르고 하던 그 일을 거의 하지 못하고 집안에서  동생들 돌보고 늦게 오는 어머니를 대신 해 밥을 하고 물을 데우느라 동네를 추억하고 그곳 사람들의 삶을 엿볼 시간도 그닥 없었던 것일까, 그러나 시간 보다 내 마음이 먼저 고향을 떠나는 걸 소망한 나머지 바라보면 좋았을 것들을 스쳐 지나버린 탓이겠지 싶었다. 나는 고향의 풍경도 사람도 좋아하지 않았고, 어서 도망가고 싶어 그들과 충분히 정을 맺지 않았다. <관촌수필>은 글쓰기에 관해서 특히 더 내 자원이 부족함을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무릇 문학은 사람에 대한 것을 써야 함에도 나로서는 삶을 들여다 본 사람이 적고 그들과 맺은 인연의 두께는 더없이 빈약하기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