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홍합- 2010년의 책읽기

자몽미소 2010. 5. 10. 19:44

 

 

이전 읽었던 한창훈의 산문집에 홍합 공장(합자 공장)에서 일하던 아줌마들과 재회하는 장면이 나왔다.

깔깔 잘 웃은 아줌마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의 웃음이 궁금해서 책을 주문하게 되었는데  책은 제 3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었다. 한계레 문학상은 제 7회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이외에는 거두어 읽지 못했는데,  이제 13회까지 간 이 상의 수상작이 있으니 몇 년 동안 우리 나라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고 관심도 희미했다는 게 맞다.

 

이 소설의 문기사의 일화엔 한창훈의 경험이 녹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문기사는 이 소설의 중요한 주인공은 아니고, 문기사가 전해주는 홍합공장의 여러 여인네들, 그들의 남편들과 삶이 이 소설의 살과 뼈를 이룬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두 가지를 생각했다.

 

소설 속에 나온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그 사람들을 그려 낼 수 있어?

소설 속 여자들처럼 살 수 있어?

 

 국민학교 저학년 때, 머리카락을 서로 뜯으면서 싸움하는 여자 아이를 본 적이 있다. 학교 운동장에서였다. 간혹 그렇게 언니들이 싸웠고, 그렇게 싸운 언니들을 나는 슬금슬금 피했다. 나는 싸움을 싫어할뿐만 아니라 두려워했고, 그렇게 머리 끄댕이 잡아 싸우는 건 보는 눈이 너무 많을 것이기에 나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절대 해서는 안 될 일로 여긴 마음 때문이었는지 싸움을 피해 그랬는지, 친구들과 심하게 싸울 만큼 화나는 일도  없었다.

이 책 중간에 여자들의 싸움을 읽으면서 어릴 때 봤던 싸움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그렇게 싸우던 언니들은 나중에 살아가는 일도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 싶었다. 그럴 것 같았다.

내가 그 홍합공장에 가 있을 상황도 생각해 봤는데, 솔직히 아주 끔찍했다. 20 대의 어느 때 공장 생활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분위기도 생각이 나고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는 회로를 막고 이 소설만 읽고자 하였던 며칠이었다. 지금의 내게 있어 홍합공장이란 일터는 상상하기 싫은 곳이었음에도 책에서 여자들은 웃고 떠들고 집안을 책임지고 시부모와 마음에 안 드는 남편과 살아가고 있었다. 이 일은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소설에서 작가가 말한 것처럼 나는 과자와 커피를 먹으며 삶에 권태로워 하는 여대생 쪽이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이룬 사람들의 삶을 문학으로 만나는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만나려 하지도, 만나서 어떻게 대처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문학으로는 만날 수 있으나 현실에서는 만나 관계 맺기를 어려워 할 사람인 것이다. 이것은 나의 이중성이고 잘 고쳐지지 않는다. 

 

 작가는 홍합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고단한 삶에 애정을 가져주었던 게 틀림이 없다. 그랬으니 그가 대신 전해준 홍합 공장의 원초적인 표현과 적나라한 일상이 문학적 글쓰기로 거듭 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보여주지 않았다면  잘 알 수 없었을 서남해안 지방의 삶의 현장과 사는 일에 튼튼한 여자들을 나를 비롯하여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잘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왠지 나는 이런 여자들에게는, 특히 이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잘 웃고 떠들 수 있는 여자들에게는 사는 일에 있어 한 수 뒤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패배감이 더 했다. 손을 담가보지 못하고 무엇을 말할 수 있으랴, 무엇에 대해 쓴다거나, 아니면 그 무엇의 주체가 되는 일에서 몸을 아끼며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 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