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는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에서 펴낸 책이 다섯 권 있지만, 읽을 수 있었던 책은 스기야마 토미 한 사람의 이야기 뿐이었다.
나머니 4 명의 책은 각각의 면담자가 구술한 것을 정리한 것이어서 스기야마 토미의 책이 위의 4 책과 다른 것처럼, 한국 사람을 면담하고 정리한 이 책들도 서로 각각 달랐다. 살아온 인생 만큼이나 내용과 말하는 방법이 달랐다. 당연한 일이다. 정리한 사람들이 모두 다르니 그럴 수 있을 것인데 재미있게도 이들 책의 공통점은 모두 책으로서 읽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곰곰 따져 보았는데, 그것은 마치 가락과 리듬이 없이 노래를 읽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리듬이 있으면 가사가 단순해도 감동이 오는 노래가 있고, 가락 때문에 노래 가사를 더 크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구술한 내용을 글로 옮기려면 화자와 면담자간에 소통되던 정서도 표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화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 나라 사람을 정리한 위 4 개의 책은 읽을 수 있는 텍스트라기 보다 구술 자료의 가치가 부각되었다. 구술 자료로서는 훌륭하달 수 있는데도 나로서는 이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읽을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의 일생이 책으로 나오긴 했지만, 책이 아니라 자료만 되는 듯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 이유는 바로 언어에 있었다. 말하는 사람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옮기려 했던 것이 편집의 주된 목표였지 않나 싶다. 그러나 그 강조점이 출판의 의도와 독자 사이를 가로막는다.
이전에 뿌리깊은 나무 출판사에서는 <숨어사는 외톨박이1,2>와 < 털어놓고 하는 말 1,2>를 내 놓은 바 있는데 거기엔 구술 자체의 원래 모습 보다는 그들을 만난 작가들의 글이 더 많아서 구술한 사람들은 작가의 글 뒤로 숨어 버린 느낌이었다. 그 책들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한 것은 편집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일까. 출판사 사정이 그렇게 돌아가 버렸던가, 요새야 생각해 본다.
그러나 스기야마 토미는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의도로 만들어진 것인데도 잘 읽을 수 있었다. 그것 또한 언어 문제이고 언어 덕분이다. 구술을 채록하고 그것을 문자화 시키는 데는 대동소이한 방법을 썼을 것이다. 질문자는 조금 더 뒤에 서고 구술자가 앞으로 나오게 하는 것도 비슷했다.
그러나 스기야마 토미는 구술할 당시 일본어를 사용했고(당연히)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었기에 일본어로 최종 편집된 것을 번역하면서는 한국어 표준어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스기야마 토미의 책만은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다(나에 한정하여 말한다면).
스기야마 토미를 인터뷰 하고 기록했던 혼마 치카케는 스기야마 토미의 인터뷰를 있는 그대로 채록한 것은 1차 텍스트로 두고, 다시 수정 보완 했다고 서문에서 밝혔는데 스기야마 토미의 채록이나 수정 보완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텍스트가 일본에서 출판되어 일본어로 읽히게 될 때 어떨지는 일본어에 민감한 일본의 독자만이 알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스기야마 토미가 이미 벌써 면담 당시에 표준어를 주로 썼고 말도 유창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여러 요인이 그의 인생을 책으로 엮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사람들의 경우는 지방에 사는 노인들의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그들의 말은 소리로 들어야 더 알기 쉬운 것이었다. 지방의 방언을 글자로 옮기면 눈은 더듬으며 글을 따라가게 된다. 내게 우리나라의 구술열전이 잘 안 읽히는 이유는 내가 다른 지방 말에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내 눈이 표준어에 익숙해 있다는 것, 그리고 말과 글을 구분하여 듣고 이해 하는 데 이미 습관이 들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대개 말은 비문이 많은데 그런 것이 자꾸 걸리고 그래서 내용 파악을 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면 책으로 나온 게 마치 어떤 외국의 책을 원서로 읽는 것처럼 글자는 읽었는데 내용은 무엇인지 아리송하게 되어 버린다. 책으로 펴낸 사람들의 인생은 보이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한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언어해석에 노고가 더 들어가 버리게 된다.
오늘 아침에 우리 부부가 하는 작업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메모를 해 두었는데, 책장에 꽂혀진 구술열전을 보다가 생각나는대로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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