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ㅣ맡겨진 소녀, 말없는 소녀

자몽미소 2023. 8. 3. 10:45

2023년 8월 3일, 책을 덮으며


  어제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한뼘 책방  편지쓰는 여자들의 글)에 외숙모의 이야기를 썼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를 보았을 테니 외숙모에게는 나와의 시간이 10년이겠지만, 내가 사람 얼굴을 알아보고 말을 하고 알아들을 때부터 기억이 생긴 것을 감안하면 나에겐 고작 5년 정도가 외숙모와 보낸 시간이다. 하지만 같은 집에 살았던 것도 아니고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이사를 가 버렸기 때문에 외숙모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일 년에 고작 며칠에 불과하다. 어쩌면 외숙모와 내가 함께 했다는 것조차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명절에 시골에 왔다가 나를 데리고 외삼촌 집에 가서 하룻밤을 보낸 일도 서너번이나 될까, 두 번 쯤 그런 걸 내가 서너 번으로 부풀려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같이 갔던 장소라고 해봐야 광양터미널 부근 할아버지 댁과 외숙모집뿐이었다. 어머니의 외삼촌을 나는 할아버지라고 불렀는데 그 집 막내는 내게 이모뻘이었지만 나보다 두 살이 어렸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우리집과 외할머니집이 있는 시골에서 명절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과세를 하러 (세배 드리러) 그 할아버지집에 들렀다.
  어느 명절엔가 아마도 내가 국민학교 1학년이나 2학년 때쯤이었을까, 외삼촌과 외숙모는 내가 왕할머니라고 부르는 분, 내 어머니의 외할머니에게 세배 드리러 갔고 나도 함께 갔다. 그 왕할머니는 애월읍 본가에서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시내에 사는 작은아들집으로 옮겨 온 것이었는데 한동안은 밀감밭 창고집에서 지내고 계셨다. 나는 외삼촌과 외숙모와 함께 그 할머니에게 세배를 드리러 가서 할머니가 주는 세뱃돈을 받았다. 어른들인 외숙모와 삼촌에게는 세뱃돈을 줄 필요가 없었지만, 아이인 내가 갔으므로 왕할머니는 주머니에서 세뱃돈을 꺼냈다.  5원짜리 동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10원짜리 지폐가 있어서 5원은 지금 500원짜리 크기 정도의 동전이었다. 하지만 역시 5원은 세뱃돈으로는 작은 액수였고, 나는 좀 실망을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인지 스스로 알았는지 어른에게 무엇을 받을 때는 두 손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신경쓰며 무릎을 꿇고 다소곳이 받았다.  5원짜리 동전을 두 손으로 받자니 동전 보다 내 손이 너무 컸고 그게 어색하였다.
  할머니가 살던 그 창고집에 갈 때 개천을 따라 난 좁은 길을 걸어갔던 기억도 있지만 전에는 좀 더 선명하던 그 날의 풍경이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희미해졌다.  눈을 밟으며 걸었던 차가운 길과  할머니 손에서 내게로 건네지던 5원 동전의  어색한 크기, 차가운 기운이 온 몸에 감기던 오솔길이 꽤 길었다는 느낌이 남아있다. 어린이의 발걸음으로 걷기에 그 길은 미끄럽고  차가워서 편하지 않았다. 그 왕할머니는  과수원 창고집에서 지내다가 광양의 작은아들집으로 옮겨왔다. 이 집은 이전에 살던 기와집보다는 낡았고 낮은 슬레이트 지붕에 초라했지만 비스듬히 기울어진 마당만은 넓었다. 하지만 그 집의 이사는 내가 할아버지라고 하는 그 분이 홧김에 공무원을 때려 치우면서  가정 경제가 곤란해져 기와집을 팔아야 했던 데서 시작된 것으로 친척들이나, 그 집의 식구들 모두 그 할아버지의 처신을 안타까워했다. 내게는 할아버지 뻘이었지만 장녀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으니까 젊은 패기로 과수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직장을 버렸을 것이다. 그 할아버지의 옛집은 외할머니와, 또는 외숙모의 손을 잡고 여러번 드나들었다. 마루가 반짝거리고 연탄 아궁이인 그 집 부엌에서는 깨끗한 냄새가 났다. 제삿날에는 우리집에서는 볼 수 없던 오징어 튀김이라든가 소고기 산적도 해서, 어린 마음에 풍족한 살림을 엿본 것 같았다.  하지만 기와집에서 슬레이트집으로 이사하면서 가세는 기울었고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그 왕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몇 년동안 그 집에서 치매를 앓았고 증세가 심했다. 똥을 싸서 떡반죽처럼 말아서는 문밖으로 던지곤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른들의 곤란이나 체면과는 상관없이 같이 살자면 살고도 싶은 시내에 있는 집이었다. 거기에다 나에게 다정하게 대하던 외숙모와 나만 보면 웃는 얼굴인 외삼촌, 시내에 나갈 일이 있으면 어떻게라도 나를 데리고 가고 싶어하던 할머니가 동시에 떠오르는 집이었다.
  왕할머니가 치매를 앓기 전에 살았던 과수원은, 지금은 연북로가 생기면서 두 토막이 났다. 지금이야 연북로에서 진입할 수 있겠지만, 내가 그 과수원에 가던 때는 변변하게 차도 없었고, 제주여고 입구에서 들어가는 오솔길을 따라 들어갔을 터였다. 꽤 먼 길이었다. 왕할머니 앞에서 절을 하고 나에게도 절을 하라고 시켜주던 외숙모는 그 왕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그 이야기를 어제 편지에 썼다. 

  이 책은 친척집에서 여름을 나게 된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이야기에 빠져들며 나도 소녀의 마음이 되어서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내 외삼촌과 외숙모로 여기며 읽기도 했다.  초여름에 갔다가 개학에 맞추어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소녀가 그 친척 부부에게서 느끼는 마음의 변화가 잘 그려졌다. 소녀는 위로 언니들이 있고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으며 어머니는 곧 아이를 낳을 것이라 친척집에서 잠깐 맡겨지게 되었다. 글의 행간에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곤란한 지경에 있는 것이 암시되고 어머니는 육아에 지쳐서 소녀를 방치하는 듯하게 보인다. 여기서 소녀는 자기를 맡아줄 친척을 아저씨, 아주머니 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주인공의 작은아버지와 어머니일 수도 있고 고모와 고모부일 수도 있겠다. 식구 많은 집에서 군식구처럼 지내다가 아이없는 집에서 지내며 따뜻한 보살핌 속에 지내게 된 소녀는, 자기 집에서의 삶과 이 집에서의 삶이 다름을 느낀다. 뭔가 보호받고 배려받는 여러가지의 것들을 감지한다. 그리고 차츰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소녀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에서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자칫 죽을 뻔한 위험한 사건을 겪으면서, 소녀는 침묵이 무엇을 구할 수는 없지만, 곤경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임을 온몸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가< 맡겨진 소녀[였지만, 영화로 만들면서는< 말없는 소녀>가 되었으리라.
 
  자기 부모가 남보다 더 나을 것도 없어 보이는 유년기의 경험 속에서, 타인에게서 부모를 느끼는 이야기였다. 부모라면 당연한 사랑이라는 것은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부모가 위험하고 차가워서 안심할 수 없기에  다른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책 속의 문장 기록

 
P70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의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p72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란다." 아저씨가 말한다. "오늘밤 너에게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지만, 에드나에게 나쁜 뜻은 없었어. 사람이 너무 좋거든. 에드나는 남한테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가끔은 다른 사람을  믿으면서도 실망할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지. 하지만 가끔은 실망하고."
 
p73
"너는 아무 말도 할 필요없다", 아저씨가 말했다. "절대 할 필요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오늘 밤은 모든 것이 이상하다. 항상 거기에 있던 바다로 걸어가서, 그것을 보고 그것을 느끼고 어둠 속에서 그것을 두려워하고, 아저씨가 바다에서 발견되는 말들에 대해서, 누구를 믿으면 안 되는지 알아내려고 사람을 믿는 자기 부인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어쩌면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듣는다.
 
p75
"보렴, 저기 불빛이 두 개 밖에 없었는데 이제 세 개가 됐구나."
내가 저 멀리 바다를 본다. 아까처럼 불빛 두 개가 깜빡이고 있지만 또 하나가, 두 불빛 사이에서 또 다른 불빛이 꾸준히 빛을 내며 깜빡인다.
바로 그때 아저씨가 두 팔로 나를 감싸더니 내가 아저씨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끌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