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킴 투이 소설 3권, 루, 만, 앰

자몽미소 2023. 8. 8. 11:01

루, 만, 앰
 
< 루>를 처음 만났던 지난 해에 베트남을 월남으로 이야기 하던 1975년의 어느 날을 기억했다. 그날 5학년 1반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교실로 오더니, 월남이 망했다. 전쟁이 끝났다, 라고 말했다. 매우 진지한 표정이어서 가만히 듣기만 했었는데 그 외 다른 말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동네에 어머니들에게 인기가 있던 월남치마와 월남이란 나라가 망한 것과 나보다 1년 위인  S의 아버지가 월남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잘 연결하지 못했다. 군대는 20대의 젊은이만 다녀오는 게 아닌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흘려 보냈고 월남이나 베트콩 이라는 말이 생소한 만큼 빨리 치워버리면서 베트남은 내 어린 시절에 잠시 왔다가 잊혀졌다.
어느 날 보니 베트남이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여행과 붙은 단어가 되었다.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가 전하는 베트남 소식은 그저 무척 더웠고 땀이 비오듯 했다는 정도여서 나도 그곳에 가 보리라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15년 전 쯤의 이야기다. 곧 이어  베트남 처녀와 한국의 노총각을 맺어준다며  국제결혼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베트남의 여성들이 가난한 집과 나라를 등에 짊어지고 굴욕을 참으며 바다를 건너 오는 것 같았다. 그들은 조선족보다 성격이 온순하여 국제결혼 커플 중에 한국에 가장 적응을  잘한다는 말도 돌았다. 뭔가 사람이 물건처럼 취급 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 주위에도 베트남에서 온 여성들이 늘어갔다. 한국어 교실에도 왔고 이윽고 우리 동네 마트 한 쪽에서 물건을 팔기도 했다. 남편의 사업을 베트남 아내가 운영하는 것 같았다. 외국어인 한국어를 가르쳐 주면  혹시 도움이 될까하여 말을 붙였을 때 그녀의 한국어는 내가 쓰는 일본어보다 유창했다. 결혼이주민으로서 그들의 생활력은 가끔은 우울증에 넘어가 기력이 약해지는 나를 부끄럽게 할 때도 있었다.
 
지난 달에 처음으로 베트남에 다녀왔다. 지인들이 하노이에서 가 볼 수 있는 하롱베이도 소개해 주고, 삿파라는 지역에도 가보라고 권했지만 5월에 귀에 생긴 병 때문에  어지럼증으로 고생을 했던 터라   하노이 시내에만 머물렀다.  하노이 시내에 있는 베트남 역사박물관, 여성 박물관, 전쟁역사관, 호치민 기념관 등을 둘러보았다.  프랑스의 식민통치, 그리고 일본, 또다시 미국, 거기다 용병으로 참여했던 한국군이 저지른 만행이 건조한 문장과 사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다녀와서 <루>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킴 투이의 다른 책을 이어 읽었다. 독후감을 써두어야겠다 생각하면서 여러 날을 보냈다. 무어라 말로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벅찬 감정이 생겼지만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게 어려웠다. 그것은  문장 하나하나마다 저자인 킴투이가 베트남의 시간을 응축시켜 보여주었기 때문이었을까, 그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구멍난 가슴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큰 것이기 때문일까, 알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며 만나는 베트남 여성의 삶은 나와 상관없는 삶일 수가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나는 베트남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고 이 책들에 소개된 사람들과  다른 시간을 살았기에  식민지가 되고 전쟁터가 되면서 겪어야 했던  아픔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나라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은 또 몇 십년의 차이로 한국전쟁을 살았던 사람들이 먼저 겪기도 했으니까.
킴투이의 글들이 갖는 독특함 때문에 이 책들은 별로 두껍지 않은 분량으로 장편 소설이 되었다. 그러나 책표지를 고운 장정으로  입혔어도 책 안의 이야기에는 이걸 다 어떻게 견뎠을까 싶은  끔찍한 시간들이  선명하고 무겁다.  베트남 여성의 삶에 대한 작가의 애잔한 마음도 진하다.쌀국수를 팔기 위해 장대지게를 메고 가는 베트남 여인의 어깨에 짐지워진 것들이 국수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남자들이 총을 매고 나라를 구하는 동안 여성들이 짊어진 것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펴보여준다. 그러나 역사에서 보여지지 않는 여성들은 침묵으로  고된 시간을 견뎌야했다.

일본에도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고 친구가 알려왔다. 우리나라와 장정이 다르고 제목도 달리 해서 출간되었다. 이 책이 세계 여러곳으로 번역되면서 베트남을 다시 보게 하는 것은, 저자의 문장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 문장의 맛과 함께  이야기 방식도 새로웠다. 인물에서 인물로, 또는 단어에서 단어로 이어지면서 사람을 말하고 역사를 말하고 삶을 이야기한다. 나는 킴투이의 문장이 좋아서  몇 달 후에는 또 이 책을  열어 다시 읽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