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영화 映画の話

映画、福田村事件

자몽미소 2023. 9. 26. 11:47

    2023년 9월 1일에 개봉된 영화, 무라다마을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치바현 무라다 촌과 다나카 촌에서 일어난 일본인 집단 살인사건을 다룬다.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1923년 9월 1일 이후 경찰이 조선인을 조심하라며 경계심을 부추기고 있는 가운데,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는 수정없이 퍼지고, 신문은 진실이 무엇인지 쓰지 않는 가운데 수많은 조선인과 중국인이 일본 자경단에 의해 살해 되었다( 추정, 6000명). 그런데 이 광란의 시간 속에 일본인이 일본인을 죽이는 일이 발생했다. 
   그 당시 전국을 돌며 약품을 팔러 다니는 행상인들 15명( 임신부 포함)이 이 마을을 거쳐 다른 마을로 가려고 강을 건너려던 중에 조선인으로 오해 받는다. 그들이 쓰는 말이 이상하다며 자경단의 의심을 사고 10엔 50전을 말해보라며 시험했지만 동북지방의 발음이라 더욱더 조선인으로 오해 받아 결국은 죽임을 당한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이들이 국가가 인정한 약행상인이 맞으며 그러니 일본인이라고 자격증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려보자며, 흥분한 자경단을 진정시키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조선인이라고 의심을 하기 시작하자 이것은 집단광기가 되어 버린다.
 
  이 사건이 영화화 되어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까지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사건에 관한 진실규명도 1980년에서야, 한 공무원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 사건을 조사해서 책으로 나온 것도 2013년의 일이다. 집단 살인을 저지른 마을 사람들은 알고 있는 사람도 말하고 싶지 않아 일에 입을 다물어 버렸고, 그들이 침묵한 채 죽자 사건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되어 버렸다.  사실, 자경단 중 4명은 3년에서 10년 형을 선고 받긴 했으나, 2년 후 쇼와 천황의 즉위하면서 풀려난다. 결국은 살인을 했어도 2년 반의 수감생활이었다. 그 중 한 명은 나중에 촌장이 되고, 시의원도 되었다. 살인자였지만 그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명령(조선인을 경계하라)을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 먹혀 들어갔던 것이다.
 
    또한, 피해자의 생존자는 그 일을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 일을 밖으로 꺼내어 말을 하면 또다시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으로  평생,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못했다. 피해자가 그 사건의 진상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도 어려웠다. 행상을 다니던 사람들은 이미 그 당시부터 부락민으로 차별집단이었기에,  자신의 자손들에게 제 2의 가해가 올 것을 염려했기에 가족들에게도 그 일을 말하지 않는다. 생존당시 13살이었던 소년이 1986년에야 입을 열게 된 것은,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어 조직이 세워지고 그에 따라 조사가 이루어졌을 때였다. 그러나 그가 그날의 실상을 전할 때는 그 사건으로부터 60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미을 사람들은 왜 그토록 잔인했고, 어리석었던가. 
   영화에서 자경단의 대표직을 맡은 이는 <국가를 위해> < 마을을 위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관객인 내 입장에서 그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불안을 해소하고 싶었서 살인도 서슴치 않은 사람일 뿐이다. 영화에서 그는 러일 전쟁에서 전사해서 돌아오는 아들의 유골 앞에서 오열하는 어머니를 비난하고(명예로운 죽음에 왜 우느냐?), 조선에서 돌아오는 친구(사회주의에 물든 지식인)를 질투한다. 1920년대 일본의 데모크라시 시대에 들어가려 하였을 때 군국주의가 가장 싫어한 것은 민주주의였고 자유였다. 그는 조선에서 들려오던 3.1운동에 대해서도 일본 국내 신문이 알려주는 대로 조선인이 일본인에 대해 자행한 폭동으로 믿고 있었다. 그 당시 일본의 신문은 조선의 3.1 운동이 한 나라의 독립을 요구하는 운동이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가 말하는 대로 신문을 기사를 내 보낸다. 한 나라를 자기 식대로 통제해서 이익을 얻어야 하는 입장에서, 그것에 항의하는 것은 반란이고 폭력일 뿐이었으므로 신문은 조선인들은 도적으로 표현된다.
   3.1운동으로부터 4년 후에 일어난 일본 관동지역의 대지진, 그로 인한 사회불안 속에서 조선인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유언비어를 만들어 내고, 조선인이 일본인을 미워하여 우물에 독을 풀었을 것이라는 말은 그럴듯해 보인다. 직접 보지 않고도 불안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그 말을 퍼뜨리고, 모든 사람이 그 말을 믿으면서 유언비어는 사실이 된다. 그러므로, 조선인은 죽여도 될 도적이 되고 만다. 이미 일본 내에서 조선인은 일본자국민에 비해서 사회적 지위가 낮았고 차별대상이었다.
  후쿠다마을 사건으로 일본인에 의해 살해당한 약 행상인들조차도 조선인과 차별부락민인 자기들 중 누가 아래고 누가 위인가를 놓고 말싸움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만큼 그 당시의 일본사회는 차별과 편견이 가득해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위험하게 여기고 있었다. 영화의 한 쪽에서는 그당시 일어나던 일본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불안 때문에 사회주의자를 처형하는 장면도 있다.  
  후쿠다무라 사건은 잘못된 믿음이 만들어 낸 어처구니 없는 폭력이었다. 이는  그 당시 일본제국주의가 자행하던 폭력이기도 했다. 이웃나라의 자주권을 빼앗고도 그 항거에 대해서는 또다른 폭력을 일삼는 행위가 후쿠다 마을에도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 폭력 선의를 가장한 폭력은 지금도 여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마을과 국가를 위해서 몽둥이를 든다는 자경단의 선의는 100년 전 후쿠다 마을에서 집단살인을 저지른다. 그런데 그러한 선의가 요즘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건이 일어나 가해자로 지목되면 인터넷 상에서 퍼져가는 언어폭력이 그때의 몽둥이와 무엇이 다를까. 오늘 아침에 뉴스를 보니 100년 전 일이 지금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교사가 자살에 이르게 했다고 학부모의 신상을 터는 사람들도 선의로 시작한 일일 것이다. 갑질하는 사람들이 없이 모두가 신뢰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으로 나쁜 사람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선의. 그러나  가해자로 지목된 학부모의 가게를 널리 알려버리고자 하는 마음, 얼굴도 알려 살기 어렵게 해 버리고 싶다는 마음으로까지 가 버린다. 한편 그건 너무 심하다며 자제하라는 목소리가 있지만 그런 말은 들으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가해자를 옹호한다며 비난을 쏟아낸다. 
 
  영화 말미에는 철사에 묶여서 곧 죽게 될 행상인들이 수평사 선언문을 읊는 장면이 나온다. 수평운동은 우리나라에서는 형평운동으로 불린다고 한다. 형평운동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선언을 만들며 100년 전에 시작된 운동인데 세상은 여전히 비난과 폭력이 난무하고,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23년 9월 26일, 美廷 書く)


映画を観に行く、https://kinocinema.jp/tachikawa/movie/movie-detail/575
<무라다마을 사건>, 2023년 9월 25일, 다카시마야 백화점 영화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