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자전거여행/김훈 [책읽기]

자몽미소 2002. 4. 2. 21:58

 

이제 그의 글을 낱말로 또는 문장으로 기억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 긴 여행동안 산천을 떠도는 무수한 마음들을 어떻게 나의 짧은 기억으로 담아낼 수나 있단 말인가.

그의 문장에 대한 찬사는 그만두기로 한다.
나는 나의 짧은 언어로 그를 또는 그의 글자 하나하나에 감동하던 나를 말할 수 없다.
다만 하나, 나는 그의 글을 통해 나를 대신할 닉네임을 동백꽃으로 바꾸었던 것을 고백할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인지도 모른다. 그이가 동백꽃에 대해, 목련에 대해 말하는 동안 나를 무엇으로 명명해야 가장 적절한지를 눈치챘다고나 할까. 그러니 그의 글은 읽는 이를 호사하게 한다.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자전거는 느리고 힘들게  땅 위를 살폈지만 나는 그이가 이룩해 놓은 영혼의 길을 참관하며 행복하였다. 문장마다 두어 번씩 헤어리며 읽어야 하였던 것은 길 위에 흐트러진 꽃처럼 두고두고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은  느리게 읽을 책이다

그의 글을 통해 그가 갔던 길에 대해 다시 사유하는 일도 그만두기로 한다. 이제 나는 그의 길을 다시 기억할 수 없으며 그 길위에서 그가 느꼈던 삶에 대해 조금씩 고개 끄덕이던 나를 기억할 뿐이다. 그는 그의 자전거를 통해 길을 만나고 나는 그의 글을 통해 길을 만났다. 만남의 깊이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하랴. 몸으로 길을 만나는 일을 나는 하지 못하였고 몸으로 만난 길에서 나온 글은 나에게 길에 대해 미련을 갖게 한다.그가 길 위에서 던졌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일은 행복한 일만은 아니다. 길이란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러니 은 가벼운 책이 아니다.

나는 지금 어떤 길 위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인가.
눈 덮인 길 위에서 그가 쓰러질 듯 숨을 몰아쉴 때 나는 엄살이 많은 하루하루가 부끄러웠다. 나는 그가 생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만큼 살지도 못하면서 아직도 내 삶에 무엇인가 있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내 희망은 그 자체의 싱싱함을 잃어버린 채 늘 노력없이 하는 넋두리였을 뿐이다. 그래서 희망하는 일조차 고단하였다. 길은 언제나 고단한 것일테지만 아직도 내 길 위엔 먼지바람 투성이다. 발 밑에 묻은 과오의 흔적들이 길 위의 바람으로도 떨어져 나가지 못할 것을 안다. 이것 또한 쓸데없이 긴 연민의 사설일 테지만 그러니 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책을 덮어 서가에 꽂는다. 읽었던 많은 책이 그렇듯이 이 책 또한 길 위의 들꽃처럼 지나치며 잊혀질 것이다. 우리의 모든 인연이 그러하듯 가까이 있을 때만 마음에도 가득한 것이니 이 책에 대한  지나친 찬사는 모독일 수도 있다. 그러니 더는 말하는 걸 그만두기로 하자. 그러나  가던 길 멈추고 돌아보게 하는 건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이 꽃이었든 사람이었든 풍경이었든..., 책 또한 그러할 것이다.

# 03|03|29 20:3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