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예수의 생애/엔도슈사크 [책읽기]

자몽미소 2002. 3. 31. 21:36

나, 봄처럼 환해지고 싶어!.


모든 뒤척임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때는 벌써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이었고 사방은 환해지기 시작하였을 때 내 몸 속과 내 영혼을 정돈하고 싶었다. 일본소설가 엔도 슈사꾸가 쓴 [예수의 생애] 는 적어도 새로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조신한 대답을 하고 있는 듯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우리 교회의 분명한 할 일로서 쇄신을 역설한 바 있다. 새롭게 한다는 것은 늘 마음보다 몸이 뒤늦은 법이어서 해야 할 것을 아는 것과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는 것과는 판이한 차이를 만들곤 하였다.

작은 일상사를 사는 우리들, 한 치 앞도 못 보는 우리네 삶을 사는 일에도 그러한 노력이 필요할진대 그것이 전 인류를 항했을 때 그 노력은 얼마나 한 힘을 가져야만 하는 것일까.


그러므로 이 책은 전 인류를 항해  사랑의 마음을 열고 있었던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엔도슈사꾸의 소설적 상상력을 따라 예수의 삶의 언저리를 더듬다보면 이 작가의 대담한 상상이 결코 허무맹랑한 소설구조를 따르는 게 아니라 감히 이야기하지 못하던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각종 복음서의 연대기를 따라가며 또 다른 해석을 통해 진실을 만나고자 하는 이 작가의 노력은 예수의 부활사건에서도 그 사건의 진위를 가르는 게 아니라 예수의 부활이 어떻게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를 추구해 나간다.

그가 주목하는 12제자의 모습은 상당히 현재의 우리 모습을 닮아 있으며 그는 그것을 주목하여 면밀히  그들의 행동 전면을 살펴 나간다. 우리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비겁함, 몸 다침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을 그들 또한 가지고 있었는데 어찌하여 예수 사후 그들은 전세계적으로 포교할동을 할 수 있었으며 예수의 진실을 말하고자 그토록 두려워 하던 죽음조차 초월할 수 있었는가.

그는  그 초월적 힘이 결국 예수가 사랑의 하느님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그 전 시대에도 구세주라고 칭해지는 예언자들이 있었으나 그들이  하느님을 말하는 방법과 예수가 하느님을 말하는 방법의 차이는 예수 사후에 그를 전승하고 예수를 신격화 할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위협과 심판의 신을 말하던 전시대의 예언자에 비해 이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다윗의 시편을 암송하며 죽을 때까지 사랑의 하느님을 믿고 있었다. 예수가 일개 민족의 구원자가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  는 믿음이었는데 제자들은 예수 생전에 그의 뜻을 알아차릴 수 없었고 그 일은 예수 자신을 매우 슬프게 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우매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동안  우리의 삶에 대해 그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다.  우리가 사랑했었던 시간에 대한 깨달음도 무언가 혼곤한 잠, 지루한 시간, 고통의 터널을 지난 어느 시점에서나 발견하게 되는 애석함인 것을. 하물며 예수가 마련해 놓은 인류에 대한 사랑 앞에서야.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은 그의 죽음이 있고  제자들이 저 자신의 새로운 변화에 의해서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사랑만이 변화를 안을 수 있다. 꽃들은 단단한 뿌리의 생에 대한 사랑으로 피어났고 봄은 그렇게 이곳 저곳의 사랑의 몸부림으로 환해졌다.  이 작은 생을 환하게 하고 싶으면  가슴 안에 숨겨 두었던 사랑을 다시 살릴 일이다.  나를 향해 팔벌리는 건 도처에 가득하거늘  그 무엇이 두려울 일 있으랴.  이미 나는 사랑인 것을.


(2002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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