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윤대녕 [책읽기]

자몽미소 2002. 1. 29. 21:57

생의 본질로서의 사막, 그 메마른 만남



혹여 당신은 오래 전의 시간, 또는 서투른 생의 골목에서 무심코 잃어버린 꿈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안온한 일요일 오후의 어느 틈에  스르르 잠든 당신을 깨우는 목소리였거나 스쳐 지나가는 드라마의 풍경 속에서라도 행여 오래 전의 당신을 만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앞만 보며 질주하는 자동차에서 내려 내가 선 땅과 시간과 내 몸에 대해 다시 돌아볼 수 있을까요?  그것이 혹독한 값을 치루어야 할 어떤 것이 되더라도 그럴 의향은 있으신지요?



윤대녕의 소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은 바로 여행기의 형식을 빌어 자기 생의 진정한 자아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사막과 달이 비유하는 깊은 울림이 이 소설의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갑니다. 아폴로의 달 착륙을 보았던 어린 시절에 이미 깊이 배어버린 사막에의 동경은 유년의 친구 송갑영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하죠. 전학을 가는 그의 등 뒤에서 보였던 사막,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그 친구의 단칸방에서 만나게  되는 사막은 이후 우리 삶이 어쩌지 못하는 결별의 깊디깊은 고통을 예견하게 합니다. 사막이 깊어질수록 황량한 모래같은 단절이 커 가는 것이니까요.

그의 아내의 말처럼 견고한 것들도 한 번 금이 가면 깨지기 마련이지요. 우리 생의 무엇 하나라도 결코 쓰러지지 않을 튼튼함으로 자리할 수 있는 게 있나요? 눈을 뜬 아침이면 어제의 풍경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는 모래 바람이 부는 한 사막은 언제나 견고하지 않습니다.

달의 여자를 만난 것은 여행 시간 동안의 우연이었죠. 생리통을 앓는 그녀는 아직 못 다 버린 짐이 남아 있는 당나귀 같은 그에게 잘 알지 못하는 그녀로 다가옵니다. 밤의 사막에서는 그 자신도 자기를 모를 뿐더러 그녀의 존재 또한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둘은 어둠 같은 섹스를 합니다. 그것이 또한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유년의 꿈을 찾아 떠난 사막으로의 여행에서 사막을 닮은 달을 만났으나 사막은 사막일 뿐이었죠. 여행에서 돌아오며 확인하게 되는 것은 삶의 고통, 그것에 직면한 자기 자신이니까요. 달이 또한 사막이었듯 여행을 다녀온 후 그의 가족은 그를 떠나고,  사막의 시간동안은 자신의 거울 같았던 그녀와도 이별합니다. 홀로 남은 그에게 다가온 고통은 어쩌면 진정한 성숙인가요?

그 메마른 만남이 꽃이 될 수도 있는 건가요? 혹독한 고통을 치루었더라도 그것이 우리 생을 만난 후의 성숙이 되었음은 이후 혼자 남은 그를 찾아온 두 개의 꽃이 말해 줍니다. 그 꽃은 바로 밤의 사막에서 달의 여자가 준 백합구근에서 피어오른 것이었지요. 그 백합꽃이 희미한 달빛을 받아 염염히 피어오르고 그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피아노의 환영을 접하게 됩니다. 유년의 사막과 성인이 된 후의 사막, 그것은 피아노와 백합으로 대별되지만 그것들의 매개는 메마른 땅의 신비한 꿈인 달이었군요,


백합은 사막의 기나긴 밤을 보낸 후에야 찾아오는 꽃이라니 이 메마르고 고통 가득한 만남을 모른 채 할 수나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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