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임철우의『봄날』을 읽는다/양진오 [책읽기]

자몽미소 2003. 4. 13. 08:00

『봄날』을 빌어 절실함을 묻는다.-


“너는 그때 어디에 있었니?”

 

그 봄날에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새 순이 돋고 꽃잎이 물들고 바람이 돌담 사이로 숨바꼭질 할 때 휴교령으로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앞 집 대학생 언니는 뭔가 할 말을 숨기고 있었던가,  이후로 소문인 듯 전해지는 소식은 심상치 않은 두려움이기는 했지만  텔레비젼에선 연일 불꽃과 연기가 가득한 거리, 돌멩이를 던지다 쓰러지는 푸른 등의 청년들과 곤봉을 휘두르는 또다른 청년들이 얼키곤 했는데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그런 격렬한 시위가 이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보도에 동조하기도 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의식도  환경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게 부끄러움을 지워줄 이유는 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히 나이가 들고 몸이 자라났으며 주변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지만 자기 삶의 좁은 골목에서 길을 잃어 우왕좌왕 하는 사이  그 봄의 일은 역사가 되어 나와 또한  별개가 되어 버렸다.

“『봄날』을 읽으려구요.”


라고 할 때마다 힘들어 읽지 못할 것이라는 만류를 겪었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고, 어쩐지 그 만류는 『봄날』의 시대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 아픔들과는 동떨어져 살았던 내 삶이 어찌 거기에 고개 내밀어 아는 척을 할 수나 있겠냐는 듯한 질책으로도 들려 『봄날』은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하는 어려움의 한 목록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책 『임철우의 『봄날』을 읽는다』를 읽으면, 어서 『봄날』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평론집은 마치 성당에 무릎 꿇어 그 동안의 죄를 사함 받고자 한다면 『봄날』을 통해 당신의 삶과 그간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라고 속삭이는 듯 하다.
『봄날』이 발표 되기 이전에도 1980년 5월을 다룬 소설이 존재함에도 『봄날』이야말로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최초로 소설화 한 작품이라는 이 작가의 견해는 『봄날』의 문학사적 의의가 망각과의 싸움 혹은 기억 투쟁의 서사  라는 데 있다.

임철우 씨가 어떻게 『봄날』의 작가가  될 수 밖에 없었던가를 따라가는 제 2장 를 읽다보면 색깔과 소리와 냄새로 가득한 유년이 이후 『봄날』의 언어적 이미지( 색채의 언어, 소리의 언어,  촉각의 언어)와 상통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임철우 씨의 삶을 그림자처럼 따라가며 그의 문학의 길을 살펴보는 평론가의 꼼꼼한 애정도 보게 된다. 그러한 애정은 여러『봄날』론의 성과와 과제(제 3장)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 비판은  4장에서 봄날을 독자적으로 해석하게 하는데 글쓴이는 『봄날』은 증언의 문학이며, 피와 불씨의 언어로 쓰여졌고 5월 광주의 사람들의 시점으로 쓰여져서 피해자의 시점과 가해자의 시점을 뛰어넘었다고 한다. 5월 광주 사람들은 『봄날』에서 말하고 있다. 5월 광주는 추한 현실이며 죄의식을 지니게 하는 사건이며 추악한 범죄라고.그러므로 『봄날』은 힘든 소설이며, 이 소설 읽기 또한 대단한 애정 위에서나 가능할 일이다. 임철우를 읽고 이 소설을 읽은 글쓴이는 묻는다. 절실함이란 무엇인가? 글쓴이는 임철우를 통해 절실함을 묻고 진정한 문학, 진정한 글쓰기에 대한 성찰을 이끈다. 살아남은 자 슬퍼하거나 부끄러워 하기만 할 것인가? 그러면 진정 나는 나에게 묻는다. 너는 앞으로 무엇으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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