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가랑비 속의 외침-2008년의 책읽기(14)

자몽미소 2008. 3. 1. 17:26

 

 

위화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 후 네 번째로 읽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책읽기의 순서가 (가랑비 속의 외침-> 인생 -> 허삼관매혈기 -> 형제  ) 이렇게  되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나는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나서야 위화의 소설에 매료되었다.

 

<가랑비 속의 외침>은 기억에 관한 소설이다.

여섯 살 소년이 스무살에 고향 남문을 다시 떠나기까지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그와 조우했는지가 이 소설의 내용이다. 어린 시절 남의 집에 보내지고 다시 그 집에서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은 부단히도 자신의 안식을 위해 애쓴다. 자신이 믿고 따라야 할  사람들로서 친부모, 양부모, 할아버지,선생님, 형제와 친구들 곁으로 다가가 보지만  인간관계는 상처와 헛된 희망만을 낳는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의 험악한 증오, 또 아버지가 주인공 소년에게 보였던 무관심과  폭력, 아들과 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간의 반목.. 인간애의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끊임없이 찾고 있는 것은 어디를 가도 주인공을 피해가기만 하는 온화한 사랑이다.

 

 

이 소설은  시간에 대한 기억, 장소에 대한 기억,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엮인다.

여섯 살의 기억, 그리고 점점 자라 어른이 되기 전까지의 기억이 이 소설의 시간에 대한 기억이라면

때때로 소설은 주인공이 태어났으며 친부모가 사는 곳 남문과,  12살까지 살았고 양부모와 함께 살았던 쑨광을 오고간다. 그 시간과 공간 속에 그가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억에 시간을 덧입히면 추억이 된다. 때때로 나는 추억이야말로 우리 삶의 아름다움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보여지는 기억은 아름다움으로 변하는 추억이 아니라, 성장기의 상처를 고름짜내듯 다시 들여다 보게 하는 불쾌함이다. 억울함이고 쓸쓸함이다.

다만 소설은 그렇게 살았던 시간 때문에 지금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 나는 여전히 불행하다 라는 식의 프로이트적인 자기 검열이 없다. 이것은 소설을 읽는 재미를 준다. 현재를 이야기 하기 위해 과거를 끌어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독자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경험 그 자체로 함께 느끼면 된다. 쓸쓸하게 버려졌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가는 소년을 독자의 가슴에 품고 있으면, 혹여 자신의 어린 날이 불우했던 이들도 한동안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소설의 주인공은 고향 남문을 떠남으로써 어린 시절을 끝내었고, 그 시간을 들여다보면서도 현재의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소설엔 65년에 여섯 살이었던 주인공이 목격한 역사가 선명히 보여지지는 않는다. 이것은 혹시는 이 소설이 쓰여지던 때가, 작가가 아직은 감히 역사의 추잡한 증거를 드러낼만하지 못하던 때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작가 자신이 그 문제를 드러내놓기에는 개인적인 용기가 적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소설은 비슷한 시기를 다룬 다른 소설, <인생>과 ,허삼관매혈기>와 달리  근현대기의 중국, 역사적 사건이 신음하던 중국이 보이지 않는다. 한 아이가 겪는 어른과 친구와 동네가 있고 먼 배경처럼 간간이 중국이란 나라가 보일 뿐이다.

 

이 소설엔 아이와 어른이 그 시간 차이를 두고 갈등하고 타협한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의 어른이란  이 나라의 옛 어른인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유교적 어른도 아니고, 혁명을 일으켰던 사상적 어른도 아니고,  언제나 따라가고 싶은 모범적인 어른이 나오지도 않는다.  아이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힘들게 만들며,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는 쉽게 자신의 책임을 버리는 어른들이 나온다. 그 속의 아이들이 또 이 소설을 이끌어간다.

그래서 이 어른들과 아이들은 그 시대를 둘러싼 역사나 그 시대의 흉흉한 소문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채, 보다 더 개인적인 삶을 이 소설 안에서 살아낼 수 있었다. 그게 추억이라기 보다는 아픔에 관한 기억이었다 해도 이 소설은  거대한 물줄기인 역사와 사회에 대해서보다는 사람에 관해서, 그것도 정말 보잘것 없고 추악한 일면이 있는 사람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함으로써 소설로서의 매력을 보다 더 굳건히 할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