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책과 세계-2008년의 책읽기 (12)

자몽미소 2008. 2. 21. 16:23

책과 세계/강유원/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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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계, 또는 텍스트와 컨텍스트>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동안 살아 있는 자연만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 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책이 그들의 삶에 파고들 여지는 전혀 없으며 그런 까닭에 '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과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책을 읽지 않는 그들은 자연과 자신의 일치 속에서 살아가므로 원초적으로 행복하다. 또한 그들은 지구에게도 행복을 준다. 지구가 원하는 것은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순환의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인데 그들은 나무를 베어 그걸로 책을 만들고 한쪽 구석에 쌓아놓는, 이른바 순환의 톱니바퀴에서 이빨을 빼내는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생을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나 얼룩말처럼 살다가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 안겨서 잠든다. 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의 자기반성도 하지 않는다. 마치 사자가 지금까지의 얼룩말 잡아먹기를 반성하고 남은 생을 풀만 뜯어 먹으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는 것처럼.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오늘날의 사람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책을 읽는 이는  전체 숫자에 비해서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하고 있다 하여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압도적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소수의 책 읽는 이들이 벌이는 일종의 모임(모함?-옮긴이의 생각에)에 틀림없다.

 

책 자체가 아닌 세계, 즉 책이 놓인 공간 속에서 책의 의미를 살펴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언명의 비진리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책, 넓게 말해서 텍스트는 본래 세계라는 맥락에서 생겨났다. 즉, 세계가 텍스트에 앞서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었다. 그런데 어느덧 텍스트는 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한다는 거짓을 앞세워 자신에 앞서 있던 세계를 희롱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텍스트는 그것 자체로 일정한 힘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 와중에 세계와 일치하는 점이 전혀 없는 텍스트도 생겨났다. 이것은 인간 의식의 분열인 동시에 세계의 분열이다. 결국 이것은 세계의 불행이며 그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의 불행이다.

 

텍스트와 그 텍스트가 생산된 컨텍스트로서의 세계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이제 정확하게 알아낼 도리가 없게 되었다. 다만 몹시 뒤엉켜 있다는 것만을 짐작할 뿐이다. 그런 까닭에 역사라는 시간과 지상이라고 하는 공간 속에 나타났던 텍스트를 탐구하려는 이 작업에서는 그 둘의 관계를 규율하는 어떤 법칙도 이끌어낼 수가 없다

 

따라서 그러한 의식적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차라리 컨텍스트의 산물이지도 모를 텍스트들 스스로가 말하게 하고, 텍스트에 의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컴텍스트 스스로가 드러나게 하는 편이 더 나을 듯하다.

 

이러한 발언과 드러남을 위하여 선택된 텍스트와 컨텍스트는 어떤 일정한 기준에서 뽑아 올려진 것이 아니다. 임의로 골라낸 것이다. 그것들이 당대 인류의 생활 세계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어떻게 그 세계에 개입했는지를 흘낏 들여다보기는 하겠지만, 우리의 추체험, 즉 "미루어 겪어봄"은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러한 어설픈 지침을 가지고, 텍스트들을 들춰 보기로 하자. 과거가 오늘이며, 오늘이 과거일지도 모르고, 내일은 아예 없을 수도 있으며, 저 아래 어느 차원에서는 부동이 시간이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책에서 우리는 다만 통상적인 시간 순에 따를 것이다.

--- 이 책 3- 5쪽 

 

 

*먼 옛날의  서사시들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 없이도 세계가 쓸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또다시 같은 것을 알아차리는 건 너무 허망하다. 쓰라린 것이다

--- 이 책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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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추구할 때 가능한 가장 끔찍한 일은, 진실을 알게 되는 일이다."

     - 수잔 손택

 

 

이 책을 덮으니 신문 한 귀퉁이에 있던  수잔 손택의 말이 크게 보인다.

만화책을 정신을 갉아먹는 종이 쓰레기쯤으로 치부하던 시대를 살아온 나는  근래 들어 만화 산업의 강한 부상에 내가 진실이라고 배웠던 것들이 모조리 의심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어진다.

<책>, 그 중에서도 고전, 시간을 쌓아오면서 고전의 대열에 굳건하게 들었던 것들에 대한 믿음은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나 자신이 훌륭한 사람의 대열에 들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지 않고 심지어 책과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이 훨씬,  나보다 훌륭하게 삶을 일구어내는 것을 볼 때, 나에게 있어 책에 대한 믿음은 터무니 없는 종교를 맹종하는 신자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아진다.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책이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이었는지를 성찰하는  강유원의 이 책 <책과 세계>는 고대의 책에서부터 근대의 책 까지 우리가 고전반열에 올렸던 책들을 두루 살핀다.

그가 살핀 책들의 목록을 훑어보니, 읽은 책보다는 제목만 알면서 그 책을 읽었다고 오해하며 살아온 책이 거의 전부다. 그래서 그가 어떤 책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했어도 그 생각을 정리해 문장으로 펼쳐 보여주어도 공감하거나 내 지식의 지평이 넒어지는 것은 경험하지 못하고, 그저 '이 책 한 번 봐야 할텐데...' 새로운 숙제 하나씩을 받아드는 심정이었다. 겨우 책의 말미에 다윈의 <종의 기원> 쯤 가서야 그의 문장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책은  100페이지가 안 되는 문고본이다.

얇긴 하나 이 책 안에 담긴 책들은 오래되고 무거운 것이었다. 며칠 동안은 소설을 읽어제끼는 기분으로 빠르게 읽었는데, 오늘 이 책은 겨우 겨우 쉬엄쉬엄 읽어야 했다. 그래도 그 안에 있던 내용을 물으면 대답을 못하겠고, 겨우 한 마디 <책 소개> 라고만 대답할 수 있다. 진실로 알게 된 건, 내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다고 하지만 <고전>이라고 하는 것을 거의 안 읽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