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내 생각
생각해 보면 지나간 세월은 너무 빨리 지나가버렸다. 그러나 다가올 세월이 그렇게 빨리 가 버릴 것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다가올 10년이 지나간 10년 보다 더 길게 느껴지고, 거기엔 가능성이나 희망을 집어 넣을 수 있는 것도 시간에 대한 우리들의 착각에서 만들어진다.
다시 잘 생각해 보면, 내가 나이 50이 될 것이라는 걸 거의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았다. 주로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곱씹으면서 후회와 자책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일과 내년과 10년 후는 오늘보다 낫고 그때는 어제가 될 오늘을 그다지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살게 될 걸로 믿고 있다.
20대의 자식을 키우면서도 내 무의식의 저변에는 10대의 어린 내가 산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 속에 비친 내가 어제보다 하루더 늙었음에 틀림없지만, 그런 아침이 모두 합쳐져 50 세의 내가 되었음에도, 며칠 전 구입한 영양크림이 눈가의 주름을 없앴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화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버릇이 된 건, 내일은 오늘보다 더 젊어지고 어려질 것이라는 기대다. 대개 새화장품을 샀을 때 그랬다.
이 책에 나온 다섯 명의 주인공들에게서 내가 본 것은 <어떤 당황>이다.
<결혼상담소>에서 주인공은 정년을 맞은 남편과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지 않다며 이혼하고 독립한 후 새로운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만나는 남자마다 실망이 커져간다.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 에서는 갑자기 직장에서 잘려나온 주인공이 자기가 곧 홈리스가 될지도 모른다며 불안해 한다.
<캠핑카>의 주인공은 정년 퇴직 후, 캠핑카를 구입해서 아내와 함께 여행하려던 꿈이 자기만 꾸던 꿈임을 알고 낙담한다.
<페트로스>는 남편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는 애완견을 잃고 나서 살아갈 힘이 떨어진 여자가 주인공이다.
<트래블 헬퍼>의 주인공은 트럭 운전사였는데 젊은 시절엔 돈이 생기는대로 살다가, 퇴직 후에 보니 저축해 놓은 돈도 없고 가정도 없는 자신이 한심해진 남자다.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고, 옆 동네에 살고 있는 내 지인이나 이웃의 이야기라고 느낄만큼 인물들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계획이나 소망과는 어긋나 버린 삶, 애썼다고 생각했으나 결실은 없는 인생, 거기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생겨나면서 감당해 내기 어려워진 중년의 애환이 잘 그려졌다.
작가의 말에, 이 소설에서 공통되고 그려내려고 했던 것이 <신뢰> 라고 했는데 결국, 사람의 일은 사람과의 관계로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에 동의한다.
또한, 사람과 사람, 또는 자기 자신과의 화해와 다짐에서 공통되게 등장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물이다.
<결혼상담소>에서는 얼그레이 홍차가,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에서는 미네랄 워터가, <캠핑카>에서는 커피, <페트로스>에서는 중국차, <트래블 헬퍼>에서는 일본차가 나온다.
"홍차, 물, 커피, 중국차와 일본차"는 주인공들이 어려울 때 그들의 기분을 가라앉혀 주고 다시 힘을 내게 도와주는 물질이다. 자신을 일으켜 주는 이 물질들은 주인공들이 만나는 또다른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전해진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이 물질들이 매개물이 되어 화해를 하게 하고 두 사람간의 관계를 개선시킨다.
소설마다에 나오는 이 물질들은, 작가가 이 소설의 주제라고 한 "신뢰" 에 보다 더 구체적인 증거처럼 보인다. 자기를 정화 시키는 물질이 다른 이를 정화 시키며 두 사람 간의 관계를 신선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관계의 개선이 새로운 삶을 향한 첫걸음이 됨을, 소설말미에 보여주며 각 이야기는 작은 희망을 보여준다. 55세부터의 재출발, 55세부터의 새출발이 시작되는 것이다. / 2013년 9월 12일 오후에 쓰다
◑작가의 맺음말(번역)
신문연재로 다섯 편의 중편소설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매일 마감까지 써내야 한다는 것보다는 400자의 원고지로 80- 120매 분량의 중편을 다섯 편, 연속하여 쓰는 일이 힘들었던 것이다. 실제 해 보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장편 소설은 주요인물을 디자인하고, 작품의 기초를 구상하고 나면 이야기의 커다른 물결 같은 게 생겨난다. 그것이 가이드라인의 역할을 해 준다. 그러나 단편은 스냅샷처럼 단숨에 잘라내는 것이 좋다. 중편 소설은 필요불가결한 것같은 에피소드를 이래저래 겹쳐나가면서 하나의 소설 세계를 제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 책은 연작중편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이러저런 작품이 합쳐지면서 울림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다만, 주인공들 모두가 인생 반환점을 지나서 뭔가 재출발이란 것에 다다른 것 같은 중년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사람들로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체력이 떨어져가고, 경제적으로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거기다가 닥쳐온 늙음 또한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힘든 시대를 어떻게 이겨나가야만 할까, 그 질문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러나, 다섯편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지금까지는 없었던 신파시(?)를 발견한 게 사실이고 보면, 나는 그들에게 의지해 가면서 이 소설을 썼던 것이다. 나와 주인공은 동년배들이고 입장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년 후 또는 노후에 찾아오는 곤란은 한가지 모양이 아니다. 경제적 격차에 따라서도 서로 다르다. 그래서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유유자적층, 중간층, 곤궁층, 등으로 그들 마다마다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설정했다. 하지만 모든 계층에 공통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각 인물이 그때까지의 인생에서 누구라도 어떤 신뢰관계를 구축해 왔나 하는 것이다. <신뢰>라고 하는 말의 개념을 여기서처럼 의식해 가면서 소설을 쓴 적이 없을 정도다.
2012년 가을에 무라카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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