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거짓말의 진화-2008년의 책읽기(4)

자몽미소 2008. 1. 12. 17:22

 

 

 

대통령선거가 끝난 며칠 후 택시를 탔더니 60대 초반의 운전수 아저씨가  선거결과는 원하는대로 나왔냐고 물었다. 운전수 아저씨도 나도 원하는 사람 한 사람씩 당선자가 되었는데(대통령과 교육감), 운전수 아저씨가 찍어 당선된 사람은 정말 저 사람은  되지 말았으면 했던 이명박 당선자였다.

 

목적지에 갈 때까지 내가 좀 더 안 참았으면 싸울 뻔 했다. 운전수 아저씨의 말인즉슨 대통령 선거일 며칠 전에 대통합신당에서 공개했던 2000년도의 씨디( 내가 비비케이를 만들었다고 했던 것)마저도 조작일 수 있어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삼성의 잘못도 우리끼리 덮어주어야 우리 나라가 잘 살게 된다는 논리, 이명박씨의 여러 잘못도 부풀려졌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치려 들었다.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의 대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물론 지금도 대변인들의 언어 유희를 보고 있노라면, 저 사람은 우리가 의심하고 있는 것을 의심을 해 보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국민이 가짜를 가짜라고 하면, 호도하지 말라고 국민과 언론을 질타하고 가끔은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자기들의 진심을 믿어 주지 않는다고 호소하기까지 하는 대변인들의 머리 속, 가슴 속이 어떤지 궁금했다.

 

우리 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의 부시는 이라크에 미군배치를 이제까지도 잘하고 있는 일로 말한다. 여론이 아무리 그의 귀에 진심을 알려주어도 자기가  한 일을 되돌려 놓을 수 없으니 앞으로 전진만 할 참이다. 지나치게 자신감이 있는 요즘의 인수위가 그렇고 대통령 당선자도 대운하는 이 나라를 위해 꼭, 기필코  해야할 일인데 무슨 걱정이 그리 많느냐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라나 세계정치와 입장을 달리하는 타인끼리만 그러는 게 아니라, 가족간에도 왜 너는 내 말을 안 듣고 네 말만 하느냐는 섭섭함 때문에 그게 분노가 되면 명절날 싸움하다 누가 다치거나 죽거나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번 주 내가 읽은 < 거짓말의 진화>(엘리엇에린슨과 캐럴 태브리스 지음, 추수밭, 13,000원)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왜 생기는지에 관한 사회심리학 연구서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만이 아니라, 민족간 갈등과 국가간 전쟁이 왜 이토록 오랜 세월동안 사라지지 않는지에 관한 고찰까지 읽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틀렸다는 증거에 직면하면 자신의 견해나 행동방침을 바꾸기보다느 훨씬 더 강하게 자신을 정당화 하게 되는데, <자기 정당화>는 바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 새로 알게 된 진실 앞에서 자신을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심리학적 갑옷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정당화는 그 자체로는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어서 자기 결정을 더이상 번민하지 않게 하고 후회를 덜 하게 만들고 회의를 적게 해서 현실 적응을 돕는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실수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교훈을 얻을 수 없다면 자신의 삶을 성장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개인 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너무 지나치게 자신의 판단을 믿는 경찰관과 검찰에 의해 무고한 희생이 따르기도 하고,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를 파고 들다가 가족을 파탄으로 몰아 버리는 심리사들도 있다. 의료사고가 났을 때 의료진들이 보이는 자기 정당화의 행동 패턴은 환자들을 이중 삼중으로 힘들게 한다.

 

이 책은 기억에 관한 것, 사랑에 관한 것을 다룬다. 그래서 우리 삶의 여러 실례에서 나 스스로 보이고 있는 자기 정당화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 준다.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과는 왜 자꾸만 멀어지게 되는지 심리학적인 문제를 과학적으로 풀어 이야기 해 준다. 

이 책에 인용된  것들은 어떤 가설을 두고 연구했던 대학원생의 연구서부터 사회 심리학자들의 연구, 그리고 유명한 정치인들의 대화와 그곳에 남겨진 오류들, 그리고 직접 조사했던 여러 형태의 연구도 있지만 지은이 스스로 빚어내고 있는 자기정당화의 모습들도 볼 수 있다.  추론에 따른 이야기가 아니라 추론에 따른 다방면의 실례들도 보여주는 것이라 읽기에 좋았다.

 

게다가 나는 전부터  심리학의 <기억요법>이라는 것에 일종의 회의감이 들고 했었다. 그래서 김형경의 글이 어느 정도 공감하다가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고 뭐, 이렇게 까지 해석해야 하나 싶을 때가 많았다. 또는 대개의 프로스트 이론을 근거로 한 심리학 설명들이 그랬다.

한때 나도 정신분석학 부분의 책을 읽고 또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곳을 나오고 나면, 뭔가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너무 까불었다(솔직하게 말한 것)는 느낌도 들어 불쾌한 기분도 들었다.  이 지역에서 상담심리사로 일하면서 교사 연수를 하기도 하고, 직접 상담일을 하기도 하는 이와 알고 지냈는데, 그는 상담일을 몇 십년 동안 했던 사람인데도 여전히 부부문제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의 부부 문제의 상담자는 내가 되기도 했다. 남을 돕는 공부를 하고 그 일로 밥먹고 살면서 정작 자신의 문제는 왜 해결하지 못해서 그 모양이냐 했더니, 이론과 실천은 다른 거란다. 이런 앞 뒤 안 맞는 말이 있나...,  

한 번은 그가 새로 배운 상담 요법이라면서 전생요법을  소개했다.  그에게 그 요법을 받으려고 내방했던 사춘기의 소녀 하나는 발이 매우 시리다는 증상 때문에 그에게 시술(?)을 받았는데 그는 그 소녀가 전생에 어떤 시냇가에 서 있는 것을 보게 했다고 나에게 전했다. 나는 좀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호기심이 일어 나도 해 보자고 하였다.  방에 들어가 눕게 하고는 자꾸 의식을 놓아버리라고 주문 했는데 나는 의식불명이 되지 않았고, 전생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빈 방에 남자 여자 둘이만 있다는 경계가 더 심해서 혹시 사기 치는 건 아닌가 외람된 생각까지 들어 버렸다. 그 후 그를 멀리 하게 되어 버렸다.  그런 경험이 있던 터라 이 책에서 비판한 심리사들의 문제에 공감했다.

 

또 가장 눈여겨 본 곳은 < 사랑의 암살자: 결혼 생활에서의 자기 정당화>라는 부분이다. 나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혼으로 결론난 이전의 결혼 생활의 원인이 혹은 자기 정당화의 덫 속에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바로 맞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자기 정당화>가 매우 높은 사람이다. 자기 존중감이 큰 사람이고, 말로는 나는 이것도 잘 못해! 저것도 못해! 하면서도 나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커서 실은 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를 못마땅해 하고 있는 것이지 내가 못난 사람이니까 남이 아무렇게나 대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내 기대에 못 미치는 남자를 어떻게 지아비로 여겨 잘 지낼 수 있었겠나, 아이 아버지와 이혼할 때도 나는 이혼해야 할 이유가 수도 없이 많았었는데 그 이유의 하나 하나에 <나는 이렇게 잘했는데 그는 이렇게 못했다>는 원망이 깔려 있었다. 내가  그에게 화를 내면 마땅히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가 나에게 잘못하는 것은 나를 힘들게 한다(이렇게 잘 하고 노력하고 애쓰는데 말이야!)고 여기는 일이 결혼생활 내내 파도를 탔다. 그 바다에서 나는 점점 나빠졌고 그도 점점 나빠졌다.

주위의 부부 문제의 대부분이 서로 자기 입장이 바르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상대 탓을 하는 바람에  서로 상처 받은 것을 치유하지 못해 딱지 앉을만 하면 또 딱지를 떼고 상처를 내는 악순환을 하는 데서 비롯된다. 나는 그렇게 한, 바로 불행한 부부의 사례에 들어 맞았다. 결혼의 시작이 이혼의 결말까지 갔으니까. 그러나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것은 불행한 부부의 사례만이 아니라, 행복한 부부들은 어떻게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하는 사례도 있었는데 바로 5: 1의 비율이다. 이 비율에 대한 이야기는 책을 보시는 분들을 위해 생략하겠다.

 

개인의 심리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거나 사회적인 문제에 있어 왜 저런 일들이 개선되지 않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 국가간의 전쟁과 정치의 부도덕은 왜 자꾸만 재생산되고 있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나는 재미있게 읽었고, 내가 이 분야에 매우 관심이 많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