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사육과 육식-2008년의 책읽기 32

자몽미소 2008. 9. 4. 17:27

 

 

리처드 w 불리엣 지음, 임옥희 옮김, 알마

 

▣ 내가 읽은 이 책, 『사육과 육식』

 

1. 돼지

매 세 끼 마다 <것>을 주었다. <것>은 돼지에게 주는 먹을 것을 일컫는다. 어머니 아버지는 밭에 나가 집에 없고 자식들 중 누구라도 학교에서 돌아와 돼지우리, 돗통시에서 꽥꽥 거리는 돼지 울음 소리를 들으면 돼지 것  주는 일을 해야 했다. 책가방 벗어던지고 지체없이 <것> 한 바가지 떠서 다공질현무암으로 만든 둥그런 돼지것통에 부어 주었다.  돼지것통에 다 붓기도 전에 성질급한 돼지들은 돌담으로 쌓은 우리 밖으로 발을 척 걸쳐놓고  빨리 달라 재촉했다. 이 돼지는 내 똥과 우리 가족들의 똥을 먹고 크는 똥돼지였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돼지가 그러는 줄 알고 자랐다. 돼지를 키우는 건 사람 똥 말고도 부엌에서 나오는 구정물과  채소 찌꺼기와 보리를 깍으며 나온 누런 가루도 있었다. 사람이 먹다 남긴 모든 것을 먹였다. 전분공장에서 나오는 허연 슬러시는 영양제처럼 돼지를 살찌게 했다. 돼지도 똥을 누었는데 돗통시에 보릿짚을 깔아 두면  돼지 똥은  발효되어 거름을 만들었다. 돼지가 만들어준 거름은 밭으로 가서 사람이 먹을 작물을 키웠다. 그 작물을 사람이 먹고 부산물은 돼지가 먹고, 그 돼지를 사람이 다시 잡아 먹었다.

일 년에 두 어번  대개는 추석이나 정월 명절 때면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 돼지를 잡고 조상 제사상에 올릴 산적감으로 앞 다리, 뒷다리, 갈비뼈 등등으로 나누어 가져갔다.   동네에 잔치가 있을 때면  세 마리, 네 마리,  그 보다 더 많이 또는 적게 잡았다. 어느 집에서 몇 마리의 돼지를 잡았느냐는 그 집의 경제 상태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집안의 대소사를 위해 돼지를 길렀고, 거름을 위해 길렀고, 기름진 밭을 위해, 그 밭의 작물을 위해, 결국 사람들을 위해 돼지를 길렀다.

 

언제부터 이 섬에 돼지를 키우게 되었는지 연구한 적 없는 나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이 섬의 농촌 마을에서 돼지는 선순환의 오랜 역사를 가졌음은 보고 자라면서 알았다. 사람은 돼지를 키우고 돼지는 사람을 키웠다.

 

그러나, 88년 올림픽, 또는 그 보다 먼저 전국 소년체전이 있던 몇 년 전인가 이 섬의 똥돼지는 기념물로서만   겨우 살아남게 되었다. 그 후 이 섬에 사는 돼지수는  섬 사람의 3 배가 넘었지만 더이상 똥돼지가 아니었다. 

이제 고기로 나오는 돼지들은 똥을 먹지 않고 사료를 먹는다. 거름을 만들며 인간의 부산물을 먹던 돼지는 3 평이나 5평 정도의 자기 집이 있었으나 지금 제주 돼지는 공동 생활, 수용소 같은 돼지우리에서 부대끼며 산다. 돼지 몸 아래 푹신하게 깔아주던 요와 이불 같던 마른 풀도 없이 쇠로 만든 우리 속에 갇혀 산다.

사람들은 그 전 보다 더 많이 돼지고기를 먹고 살고 있지만,  그 음식의 이전에 무엇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근래에는 마케팅의 일환으로서 돼지고기마다 고유한 이름까지 붙여져 있다. 그러나 그건 어떤 돼지가 아니라 어떤 회사의 돼지들이다. 그때 돼지는 동물이 아니다. 거래되는 상품으로서  마트의 진열장에 있고, 그건 반찬거리의 일종으로서 식품이다. 그것은 역시 무슨 무슨 고기집이나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메뉴의 하나가 될 뿐, 사람들은 그것이 원래 인간과 마찬가지로 매 끼마다 먹을 것을 찾는 생물이라는 것도, 먹을 것을 보면 반갑고 급하게 달겨들던 생명이라는 것도 잊고 있다. 지금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돼지고기가 사실은 죽은 돼지의 몸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할 수 없다. 게다가 돼지가 죽을 때, 돼지는 어떤 상태인지라든가 돼지를 죽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제사와 명절만을 위해서 돼지를 죽이는 사람은 없다. 다만 돼지는 현대식품의 하나로서 자리잡았기 때문에 돼지공장에서 돼지고기를 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2. 개

 

국민학교 1학년 때 엉덩이 한 짝을 개에게 물렸다. 친구 집에 갔다가 검은 개가 짖고 있길래 빨리 도망쳤더니 오히려 흥분한 개가 더 빨리 달려와 내 엉덩이를 꽉 깨물어 버렸다. 내 기억의 단편은 내게로 달려오던 검은 개의 앞면 뿐이다. 그 다음 기억은 된장을 발라서 냄새가 나는 내 몸을 못견뎌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의 기억은 사라지고 없다. 친구가 어떻게 나를 구했는지 알 수 없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우리 집  강아지는 고개를 자꾸 까딱까딱 하였다. 가정방문을 한 선생님이 개가 어른에게 인사를 잘 한다고 칭찬을 하였다. 그 개의 어미는 몇 마리의  강아지를 낳았지만 잘난 것들은 모두 다른 이들이 가져갔고 집에 남은 건 인사를 잘 하는 그 개 한 마리 뿐이었다. 아마도 무슨 병에라도 걸렸던 것인지, 사람들이 가져 가지 않아 남은 그 강아지가 개가 되고 나서는 또다른 개를 키우지는 않았다.

그 개였는지 어미 개였는지 한 번은 우리 집에 몰래 들어온 다른 집 개와 흘레를 붙는 것을 보았다.  그때는 그게 흘레인지를 몰랐다. 개들은 이상하게 싸운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쯤인가 어머니가 맛있는 고기를 내 주었다.  작은 할아버지도 오셨다. 내가 고기를 잘 집어 먹자 작은 할아버지가 여자애가 잘도 먹는다며 나무라는 투로 말씀하셨다. 맛이 무척이나 좋은 그 고기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보양을 위해 사온 개고기였다. 한마리를 통째 사왔기 때문에 아이들도 먹이고 작은 할아버지도 부른 것인데. 나는 그 전에도 몇 번 겨울이면 아버지의 보양을 위해 사왔던 개고기를 먹었었다. 거부감 없이 먹었다.

 

커서 다시 먹게 된 보신탕은 어머니가 주던 것과는 달리 미나리도 넣고 들깨도 넣어서 오히려 고기 보다는 향신료 때문에 먹기 거북했다. 그러나 그 맛에 익숙해지고 난 다음부터 나는 여름이면 누가 보신탕 먹으러 가잘 때 사양하지 않았다.

 

한 해, 보신탕을 먹고 몹시 앓은 후에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아졌다.  전에는 음식이라고 보았던 것이  개가  보신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게 되면서 음식으로 여길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개가 좋아진다든가 애완견으로 키우고 싶다든가 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개는 개대로 살고 사람은 사람대로 살아야 한다는, 애견가들의 입장에서라면 몹시 냉정한 인간 군상에 드는 사람이다. 근래의 도시민들을 둘로 나누는 가름선은 아마 개가 될 것이다. 개를 먹는 사람, 개를 먹지 않는 사람, 또는 개를 키우는 사람,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

나는 개를 먹지 않고 키우지도 않는 사람이다. 개를 집안으로 까지, 특히 마당도 아니고 거실까지, 더 해서는 침대까지 들어오게 하는 사람과 나는 가름선을 두고 서로 반대편에 있다.   개를 데리고 오지 말라는 수목원 산책길까지 개를 안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지나치면서 생각하기를 저 사람도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겠거니 한다.

애견가들은 개와 정을 나누어 보지 않은 사람은 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짐승인지 모르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럴 수 있겠지만 나는 애초에 개와는 정을 나누고 싶지 않다. 그건 야생의 이리가 집을 지키는 개가 된 오래된 역사에 새로이 변화를 야기하는 행위라고 생각된다. 이후 어떤 역사가는 이 시대를 일컬어 애완견시대라고 할 것이다. 드디어 들판에서 자유롭던 생명 하나가 인간에게 포섭되어 자유를 포기한 대신 안락을 얻은 것이다. 혼자서는 조상 들이 하던 대로 먹을 것을 찾아 먹을 수 없고,  매일 개 샴푸로 목욕하며 때빼고 광낸 탓에 자기 오줌으로 영역을 표시하던 고유의 능력을 상실해서, 한 번 아파트 문을 나가면 자기 집이 어디인지 찾아오지도 못하고, 주인의 감시감독하에 교미 상대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개는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옮아가고 있는 중이다. 인간이 그들의 묘까지 만들어 추모해 줄 줄은 그들의 옛조상은 물론  몇 십년 전의 개들조차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일이다.

 

  

3.닭

유정란이며 무정란이란 말이 생소했다. 달걀은 닭이 되고 닭은 알을 낳고, 처음과 끝을 구분할 수 없을 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말을 하였기 때문에, 모든 암닭은 알을 낳고 모든 닭알-달걀은 닭이 되는 줄로 생각한 것은 몹시 우매한 것이었다. 이미 소와 돼지 보다 먼저 닭들은 공장으로 간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할머니 집에서 키우던 병아리는 어느 틈에 자라 암탉 되고 그 암탉이 낳아 준 달걀은 흰 쌀밥 위에 얹혀져 내 도시락이 되었었다. 그때의 독새기(닭새끼, 달걀)는 할머니가 품는 사랑이었다.

 

지금은 누구도 달걀을 그렇게 귀한 음식으로 여기지 않는다. 달걀은 가장 흔하고,  싼 음식재료다. 도시 곳곳에 있는 삼계탕 집은 사시사철 손님을 대접해야 하기 때문에, 태어나서 얼마 되지도 않는 병아리들이 뜨겁게 식탁 위에 오른다. 그것들은 적게 먹고도 빨리 커야할 의무를 이제 막 삼계탕 그릇안으로 부려 놓은 셈이다. 역시 이 즈음의 사람들은 삼계탕 뚝배기에 들어가는 새끼 닭에 대해서 그것이 이 세상에서 살았던 날에 대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공급되는 재료에 관해서 아는 게 없기 때문에 할 말도 사실 없고, 켄터키치킨은 다양한 회사의 다양한 소소맛으로 닭을 팔기 때문에, 정작 닭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닭보다 회사와 소스 맛을 먼저 생각한다. 

 

다만 몇 안 되는 옛날 사람들이 마당에서 노닐던 노란 옷의 병아리와 어미닭의 무리를 생각할 뿐이다.

 

4.소

 

어머니가 다른 날 보다 이르게 밥을 짓는 날이면, 어슴푸레 새벽빛을 따라 남자 어른 한 명이 집안으로 들어오셨다. 우리 아버지도 남자 어른이었지만  한 해에 몇 번, 그 날이 오면 아버지는 힘없는 사내처럼 뒷전에 밀려나 있고,어머니가 <장남>이라고 부르는 이웃 아저씨가 우리 집의 주인처럼 늠름해졌다. 

그 날 아침 밥은 다른 날보다 흰 쌀이 좀 더 많이 들어가 있고 붉은 팥도 듬성듬성 들어가 있고, 밥상은 다른 날보다 많아진 반찬 수로 그득했다.  밭을 가는 날이었다

 

우리 집엔 소가 없었고 이웃 아저씨네는 소가 있었다. 우리 집엔 쟁기가 없었고 이웃 아저씨네는 쟁기가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몸이 약해서 쟁기질도 못하고 다른 농사에 바빠서 소를 키우지도 못했다. 그래서 밭가는 일은 늘 이웃 아저씨 몫이었다. 그날 아침 어머니는 마을 구판장에 가서 담배도 사다 두고, 일하러 가기 전인데도 반주로 소주도 내 놓았다.  아침 해가 오르기 전에 밭에 간 아저씨를 위해서 일찍 점심도 해서 가져가고, 그 아저씨를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는 공손하고 조심스러워 평소의 어머니와 달랐다. 이른 아침의 밥과 담배와 술로 어머니는 우리 밭을 가는 <장남> 아저씨를 예우했고 그 예의 속에서 우리는 다른 날과 달리 더 친절한 어머니에게서 더 맛난 밥을 먹었다. 

 

쇠고기를 먹어 본 건 스무 살이 되어서였다. 어쩐 일인지 마을에서 소를 잡았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돼지는 여러 번 잡았고 나무에 매달려 꽥꽥 거리다가 숨이 다 끊어지면 불에 그슬려지는 광경은 익숙하기까지 했는데, 소는 내가 자라는 동안 마을의 어느 누구네 집에서도 죽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스무 살이 되어서야 친구네 집에 갔다가 친구네 가족과 같이 시내 유명 고기집에 갔었다. 그때 소고기 전골인가를 먹었는데, 맛있는 줄은 모르고 먹었다. 그때까지도 또 그 후로도 오래 우리 집의 제사와 명절엔 돼지고기와 상어고기 산적은 했어도 쇠고기 산적을 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이십 대 후반 쯤 되었을 때부터는 쇠고기 산적을 제사상에 올리긴 했으나 일부러 쇠고기를 먹으러 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쇠고기가 냄새가 난다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렇게 많이 해 보지 않은 쇠고기 산적은 요리법이 서툴렀는지 제사상에서 내려오면 곧 말라버려서 비싸게 주고 산 음식재료였는데도 돈값을 못했다.

 

어느 새 소로 밭갈아 주던 아저씨도 새벽밥을 먹으러 오지 않았다. 기계가 소를 대신하자 마을엔 외양간도 사라져갔다. 어떤 때는 무거운 짐을 지어 날라주고, 달구지를 끌어주고 쟁기질을 하던 소들은 기계의 빠르고 효율적인 성능을 따라갈 수 없었다.

 중산간으로 밀려난 소들은 가족형 외양간에서 축사 라는 신식집에서 살게 되었다. 소들은 그곳에 갇힌 듯이 보였다. 그런 농장을 지나칠 때면 몹시 냄새가 났다. 외양간이 있던 친구네 집은 고약하기 보다는 정다운 거름냄새가 났던 것 같다. 그러나 축사로 옮겨간 소들은 냄새가 심했다. 그런 냄새 때문에 소들은  점점 마을을 벗어나 사람으로부터 멀어졌다.  중산간 도로를 따라 나들이를 하던 가족들은 어쩌다 목장의 풀밭에서 소들을 발견하고 환호했다. 그림책에서 보던 광경을 실제로 보는 아이들이 더 놀라워했다. 동물원에 갔을 때처럼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 소들이 마트에서는 정육코너에서, 식당에서는 스테이크라는 음식이름으로 팔리는 것을 바로 떠올리는 아이들은 드물었다. 그런 어른도 많지 않다.  풀밭의 소는 낭만적인 소일 뿐이고, 식당의 쇠고기는 맛난 음식일 뿐이다. 그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가 점점 거대해지는 육가공공장이라는 것과 그 속의 과정에 생명을 의도적으로 잘라내는 폭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요즘은 싼 고기와 비싼 고기가 있고 수입 쇠고기와 한우가 있는 대신, 소와 인간의 역사에 대한 연민은 없다. 소는 최근에 인간과의 역사적인 모든 기억을 배제하고 오직 먹을 것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한우 또는 수입 쇠고기는 있는데 인간을 돕던  소, 일하는 소는 없어져 버렸다.

 

 

5. 사육과 육식에 대한 성찰

 

이 책< 사육과 육식>은 동물의 가축화 하던 시대부터 현대 까지를 구분하는 말로서 전기 사육시대, 사육시대, 후기 사육시대로 나눈다. 수렵채집 시기를  전기 사육 시대로 보고 인간이 야생동물을 가축화 하던 시기를 사육시대라 하였다. 이 책은 전기 사육 시대를 거쳐 사육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동물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를 주목하면서  지금 후기 사육시대의 사람들이 그 전 시대에 살던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와는 사뭇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사람들의 논문과 책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주장했으나 미처 이야기 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 특히 앞에 내가 읽은 책 <총 균 쇠>에서 작가가 주장했던 가축화와 식량생산에 관한 의견에 동의 하지 않으며 나름의 주장을 하려 하는데, 사실 나는 이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요지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굳이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 책의 작가는 후기 사육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동물의 권리를 생각하는 등의 행동이 상당히 모순된 인간의 행동이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였다.  그 전의 전기 사육시대였다면 인간은  동물이 원래의 동물성을 보이는 것들에 거부감도 덜 했고, 오히려 동물들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어 가축화한 동물을 죽여 그 동물의 시체를 먹는 행위에서도 매우 조심스러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육시대를 거치면서 소, 돼지, 닭, 오리 등이 그저 인간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대상일 뿐, 그것들의 삶에 관해서 도덕적인 성찰은 하지 않는다. 동물의 시체라는 생각 보다는 돼지는 햄을 만들고 소는 햄버거를 만드는 재료라는  생각을 할 뿐 그것들이 원래는 인간과 다름없는 동물이며 생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소와 돼지와 닭은  공장 라인에서 탄생하는 것이지 그 전에 생명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최종 소비자는 마트의 진열장에서 다른 공장 제품과 똑같이 음식재료로서만 그것들을 구입한다. 

 

그런데 이렇게 동물들에 대한 인간들의 인식이 거의 무감각해진 수준으로 온 지금, 후기 사육시대는  동물들과의 동거를 전혀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특정한 동물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풍조가 생겨, 어떤 개는 주인 인간에게 유산을 물려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개를 좋아하지 않는 배우자와 이혼을 결심하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을 대강 읽기와 꼼꼼이 읽기를 번갈아 하며 읽었다. 뒤에 기술한 일본의 경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 양을 �는 모험>과  미야자키하야오 감독의 애니 영화 <원령공주>를 예로 들면서  2차 세계 대전 후 쇠고기 소비가 급증한 일본이지만 아직도 일본 사회 속엔 동물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 숨어 있음을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앞의 내용 대부분은 읽어 내기가 힘들었다. 이 작가의 글쓰기 방법이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서술어가 뒤로 오는 우리말의 특성을 무시해 버렸는지 한 문장안에서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얼른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그게 문단이 되고 한 주제에 대한 글쓰기가 되었을 때는 읽었으되 다가오지 않는 책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마지막 문단을 두 번 세 번 꼼꼼히 읽으며 이 책의 가치를 되새겨 봐야 했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의  421 쪽

 실제 세계에서 마주치게 될 인간/동물 관계의 미래는 후기 사육시대적인 양식이 보여준  착취가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팽창할 것이며 그로 인해 점점 더 분노하게 된 후기 사육시대 활동가들이 그것에 얼마나 저항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당분간 어느 진영도 낙관할 계제가 못 된다. 육류가공업자와 채식주의자들, 사냥꾼과 밍크 해방주의자들, 제약회사와 동물실험 반대자들 사이에 중도적 노선은 없다. 철학자들, 과학자들, 작가들, 영화제작자들은 엄청난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 들어왔다. 하지만 후기사육시대의 유산인 상상의 영역에서는 상징적으로 격하된 짐승 무리를 산업 상품으로 변질시벼 버림으로써 창조적인 심성에 어떤 것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을 남겨 놓지 않았다. 진정한 천재가 나타나 전기사육시대의 마법을 재발견하도록 기다려야 할 것이다. 동물이 신과 교감하고 반인반수가 존경받던 시대, 동물을 죽이는 것이 경외감과 죄의식이 들도록 만들었던 시대의 마법을 재발견하려면 진정한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공감은 크지 않은 책이다. 문학이 아니니 공감이란 말은 부적절한 것일 수 있으나 누구에게라도 꼭 읽어보시라 할  수 없는 책이라는 점에서 아쉽다.  육식과 사육에 대한 글쓰기의 의도는 좋았고 책 내용도 여러 문헌을 조사하고 비판하는 등 노력이 많이 들어간 책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글을 밀고 나가는 작가의 역량 문제가 큰 것 같다. 혹은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다.

다만, 책을 읽다 지치면 내 생이 지금까지 오는 동안 나와 육지동물과의 관계는 어떠했는지만을 거칠게 더듬어볼 수 있었다. 말과 토끼에 관한 생각도 났지만 여기서는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몰던 마차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