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전장의 베이비-2008년의 책읽기 37

자몽미소 2008. 10. 3. 00:27

 

 

 

 전쟁터의 베이비!- 다찌짱과 엄마의 오끼나와 전쟁

 

 

  사탕수수 농사를 짓는 오끼나와 사람들

 

닷짱네 집은 오끼나와 본섬 남부에 있는 나하시 근처의 토미구스쿠 마을에 있습니다. 옛날부터 이 곳은 넓은 사탕수수 밭이 있는 농촌이었습니다. 농가 마당에는 닭이 지 맘대로 놀며 자라고 있습니다. 닷짱의 집도 사탕수수 농사를 지으며 돼지와 염소와 닭을 키우는 농가의 하나입니다.- 6쪽

 

일본군을 도와 노력봉사를 해야 하는 주민들

 

닷짱의 아버지는 버마(지금의 미얀마)에 가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닷짱과 엄마를 잘 대해 주려고 했습니다.  그 즈음,   국가는 확실히   <총뒤를 지키자>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여자들이나 어린이들과 노인들도 전쟁에 나가 있는 병사들의 빈자리를 지키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끼나와현립 제 2 중학교 학생들은 노력봉사라며 닷짱의 집에 도와 주러 왔던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장작을 패고 밭을 갈고 힘을 쓰는 일을 도왔습니다. 

엄마는 일본군의 타마부가 닷짱네 마을에 만들고 있는 포대진지호 작업에 끌려가있었습니다. 그 포대는 수리성을 향해 있었습니다.- 10쪽 

 

 

 

 

미군을 피해 도망가면서 그동안 지냈던 다짱의 집을 불태워 버린 일본군, 그들에게 섭섭해 하는 엄마

 

미군이 오끼나와 섬에 온다는 것을 알고 피난을 가는 주민들, 엄마등에 업힌 다짱

 

 

 

피난처인 동굴에 들어가 봤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로 꽉 찬 동굴 내부

 

화염 방사기를 쏘는 미군들

 

책 내용-미군들에게 동굴 속을 가리키는 엄마

 

 

 

 

 

미군이   동굴에 있던 피난민을 구출하고 있는 사진

 

 

 무덤 안을 조사하는 미군들 사진

( 거북 등 모양의 오끼나와 무덤에는 미군을 피해 숨은 주민과 일본군들이 있었다)

 

 

이 책의 실제 주인공,  닷짱, 4 살 무렵

 

 

 

 

이 책에 나오는 어머니

 

 

 

 

  번역(김미정)

닷짱네 집은 오끼나와 본섬 남부에 있는 나하시 근처의 토미구스쿠 마을에 있습니다.

옛날부터 이 곳은 넓은 사탕수수 밭이 있는 농촌이었습니다. 농가 마당에는 닭이 지 맘대로 놀며 자라고 있습니다. 닷짱의 집도 사탕수수 농사를 지으며 돼지와 염소와 닭을 키우는 농가의 하나입니다.- 6쪽

닷짱은 아직 네 살의 어린 아이입니다.

엄마와 둘이서만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일본군 병사로 버마(지금은 미얀마)에  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

아버지는 소와 말 등 가축의 병을 고쳐주는 수의사였습니다.

아버지가 버마에 간 것은 닷짱이 아직 엄마 배 속에 있었던 1939년 (소화 10 년)의 일입니다. 그래서 닷짱은 아버지의 얼굴을 모릅니다.

 아버지가 버마에 갈 때 마을회관에서는 성대하게 송별회를 하였습니다. 이윽고 아버지가 나하항에서 배를 타던 날 엄마는 큰 솥 가득 밥을 짓고 주먹밥을 많이 만들어 아버지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그런 후 오년이 지났습니다.

1944년(소화 19년) 미군이 오끼나와 본섬 공격이 가까워지자 일본군 아가즈끼부대가 닷짱의 집을 쓰게 되었습니다. 닷짱네 집은 지붕도 시멘트기와로 다른 집보다 넓었던 때문입니다. 책상을 갖다 놓고 닷짱네 집을 부대전선본부로 삼았습니다.

같은 집이지만 그 옆에는 본부장이 살았습니다 . 그래서 닷짱과 엄마는 부엌에서 잠을 자야했습니다.

병사들은 친절해서 닷짱을 귀여워했습니다.

"닷짱! 오늘은 재미있는 곳에 데리고 갈게!"

어떤 때는 병사가 닷짱을 무등을 태우고 옆 마을까지 데리고 가서는 놀게 해 준 적도 있습니다.

닷짱의 아버지가 버마에 가 있어서 병사들은 닷짱과 엄마를 잘 돌봐주었던 것입니다. 

그 즈음, 나라에서는 확실히 <총뒤를 지키자>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여자들이나 어린이들과 노인들도 전쟁에 나가 있는 병사들의 빈자리를 지키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끼나와현립 제 2 중학교 학생들은 노력봉사라며 닷짱의 집에 도와 주러 왔던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장작을 패고 밭을 갈고 힘을 쓰는 일을 도왔습니다. 

엄마는 일본군의 타마부가 닷짱네 마을에 만들고 있는 포대진지호 작업에 끌려가있었습니다. 그 포대는 수리성을 향해 있었습니다.

수리성 가까운 곳에는 일본군의 총사령부가 있었습니다. 미군이 그곳을 공격해 올 때를 대비해서 급히 닷짱네 마을에 포대를 건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작업에는 엄마와 또 전쟁에 간 병사의 아내 한사람이 억지로 끌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방공호를 만들 때도 닷짱의 엄마는 함께 일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작업을 하는 부대의 소대장이 아까즈끼 부대를 방문해서 닷짱의 집에 찾아왔던 일이 있습니다. 소대장은 닷짱이 마당에서 노는 것을 쭉 보고 있었습니다. 뭔가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나에게도 저 아이 또래 아들이 있는데'

분명 고향에 두고 온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잠시 닷짱이 오줌을 누고 있는 걸 본 소대장이 오줌 색깔이 노란색인 게 걱정이 되어서 닷짱의 눈꺼플을 뒤집으며 살펴 보았습니다.

닷짱은 어떻게 된 건지 놀라서는 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소대장은 그런 건 아랑곳없이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 저 아이는 간이 나쁜 것 같으니까 빨리 의사에게 보이세요!"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 저는 매일 군작업에 나가라는 명령을 받아서 의사에게 데리고갈 시간이 없는 걸요"

소대장은 놀라서 말했습니다.

"저는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는 걸요. 제가 담당에게 말해둘게요"

소대장 덕분에 엄마는 닷짱을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있었습니다. 약도 받았습니다.

 병원은 환자가 많아 혼잡했습니다. 약을 받을 때 간호사는 말했습니다.

" 약은 이것밖에 없어요. 끝입니다."

전쟁으로 약이 떨어진 것입니다.

다행히도 닷짱의 간은 약이 잘 들었는지 조금 후에는 괜찮아졌습니다.

 

1944(소화 19)년 10월 10일 아침이었습니다.

닷짱이 근처에 있는 친구들과 놀고 있으려니 갑자기 바다쪽에서  시끄러운 비행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고-고-고-고오-

"와! 전투기다!"

"정말! 방공연습이다!"

닷짱과 친구들은 전망이 좋은 가가스언덕 위에까지 달려갔습니다. 멀리에서 볼 때는 검은 점이었지만 점점 비행기 모양이 나타나는 것을닷짱은  가슴을 쿵쾅거리며 보고 있었습니다.

"와 많다!"

"굉장하네!"

그때 나하 하늘로 날아온 전투기는 차례로 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나하 마을 여기 저기에서 검은 구름이 일어났습니다. 연기는 곧 시뻘겋게 불길로 타올랐습니다. 그때 엄마가 달려오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전쟁이에요! 진짜 전쟁이에요! 모두 빨리 집으로 돌아가세요!"

그렇게 말하자 마자 닷짱의 손을 이끌고 달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파놓은 굴로 피신을 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굴을 팔때 참석을 못했던 탓인지 닷짱네는 입구 가까이 밖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 날 공습을 시작으로 아메리카 전투기는 가끔씩 날아왔습니다. 그때마다 닷짱네는 굴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언제나 굴 입구였습니다.

비가 올 때는 입구쪽은 비가 들이닥쳤습니다. 굴 속에서 밤을 보낼 때 닷짱이 자던 이불이 젖을 때도 있었었습니다.

"엄마! 추워!"

꼭 물 위에서 자고있는 것 같았었데 그 바람에 닷짱은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기침이 나고 열이 올랐습니다.

일본병사는 주사를 놓아 주었지만 소독이 잘 안 되었는지 주사 맞은 후에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심하게 설사를 하고 창백하게 여위어갔습니다.

엄마는 너무 바빴습니다. 

닷짱의 집에는 돼지와 양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돼지는 일본병사들이 자기네들 식재료로 쓰겠다고 말을 했었습니다만, 돼지의 먹이가 될 고구마를 많이 캐와서 돼지를 살찌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공습이 시작되면 가축돌볼 틈이 없었지만, 공습이 그치면 엄마는 밭일이며 가축 돌보는 일로 쉴 틈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닷짱은 병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하고 놀 수도없었습니다. 엄마는 닷짱을 재워 두고는 밭으로 나갔지만 닷짱이 눈을 뜨면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되는 바람에 자주 집으로 돌아와 닷짱을 살펴야했습니다.

닷짱은 엄마가 안 보이면 불안하고 쓸쓸해져서 바로 울 것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1945년(소화 20년) 4월 1일, 미군이 오끼나와섬 중부의 요미탄 과 자탄근처에 상륙했습니다.

상륙한 미국은 남과 북, 두 편으로 나위어서 전진했습니다. 남북으로 좁고 긴 오끼나와 섬은 요미탄을 시작으로 남과 북으로 갈라져있었습니다.

남으로 향하는 미군은 일본군 사령부가 있는 수리성과 나하를 향해 진격을 시작했습니다.

닷짱네 마을에도 이윽고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드디어 미군이 공격해 올 거라네요!"

마을 사람들은 소곤소곤 속삭였습니다.

 

어느 날, 닷짱의 외삼촌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외삼촌은 엄마의 딱 하나 있는 동생으로 겨우 19살의 병사였습니다. 닷짱은 외삼촌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너무나 기뻤습니다. 외삼촌이 놀러왔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외삼촌은 평소와는 달랐습니다. 닷짱과 놀기는커녕 엄마 앞에서 굳은 얼굴를 하고는 불안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누나, 다시 만날 수 없을 거야!"

엄마와 닷짱은 아무 말도 못하고 외삼촌의 얼굴만 쳐다봤습니다

"나, 폭탄을 등에 지고 미군 전차에 몸을 던져야 할지도 몰라, 혹시라도 그렇게 되면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할 거야"

"끙-"

놀란 나머지 엄마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헤어지려고 왔어. 내가 죽으면 나중 일은 잘 부탁해요!"

외삼촌은 그날 닷짱의 집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아침 부대로 돌아갔습니다.그게 영원한 이별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곧 닷짱의 집을 본부로 삼았던 아까쯔 부대도 더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병사들은 집에 두었던 군의 중요한 서류를 처분하기위해 목욕탕에서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엄마 방이  훨훨 타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이 서류를 처분하려했는데 목욕탕 만이 아니고 집까지 태워 버린 것입니다.

"부우! 파키 파키이"

굉장히 큰 소리를 내면서 집은 무너져내렸습니다.

"아끼사미꼬, 어떡하면 좋아! 집이 타 버렸어!"

엄마의 목소리도 불타는 소리에  잦아들어버렸습니다.

닷짱은 새빨간 불기둥을  타고 세차게 타올라가는 자기의 집을 보고, 그저 무서워서 엄마에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미군이 곧 들이닥치면 일본군의 비밀이 새어나간다'고 들었던 것이겠지요? 

싸움이 나면 결국 미군은 집이고 뭐고 다 불태워버릴지도 모릅니다 . 그래도 엄마는 적에도 아니고 우리 편 일본군이 불태워버린 건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1945 (소화 20)년 6월이 되었습니다.

마을의 구장이 피난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윽고 닷짱네 마을도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닷짱과 엄마도 키우던 돼지와 염소를 둔 채로 남쪽을 향해 도망가야 했습니다.

집을 나설 때 엄마는 집에 두 개 있던 빗물모으는 탱크의 물을 버리고서 (거기에)아버지와 닷짱의 기모노를 싼 야나기고리(궤짝?)을 (탱크안에) 숨겨 두었습니다. 여기라면 폭탄이 떨어져서 타지 않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 마을에 돌아왔을 때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지만 전쟁이 끝난 후 마을에 돌아와 보니 한장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출발하던 날, 엄마는 보자기에  닷짱과 엄마가 갈아입을 두 벌씩 챙기고 배급받은 쌀, 또 토토메(선조의 신위)을 쌌습니다. 그것을 머리에 이고 닷짱을 등에 업고 지팡이를 짚고 걸었습니다.

그즈음 엄마는 폭탄에 쓰러진 소나무 가지에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 때문에 지팡이를 짚지 않서는 걸을 수 없었습니다.

이모도 함께였습니다. 남쪽 이토만을 향해 난 길은 피난민으로 가득했습니다.

"닷짱, 기운을 내, 응!"

닷짱의 감기는 아직 낫지 않았던 것입니다.

엄마는 닷짱을 격려하면서 피난민 대열을 따라 갔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토만으로 향해 가는 걸 보고는 엄마는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간다면 오히려 위험해!"

엄마는 이모와 함께 도중에서 행렬을 빠져나와서 마부니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 길도 역시 위험했습니다. 언덕 쪽 바다 방향이라서 끊임없이 폭탄이 날아오고 있었으니까요.

닷짱네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언덕  쪽 넓은 바다는 미군의 군함이 가득이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육지를 향ㅎ 폭탄 공격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닷짱네가 도망도중에 있던 길은 폭탄에 맞아 쓰러진 피난민의 시체가 뒹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썩어서 부풀어오른 시체도 있었습니다.

마치 지옥과 같은 광경이었습니다.

                                                                      

엄마가 등에 업힌 닷짱에게 말했습니다.

"보면 안 돼!, 눈을 감고 있어라!"

엄마는 서둘러 길을 서둘렀습니다.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총이 날아왔습니다.

븅, 븅

흰 연기를 내면서 화살처럼 떨어졌습니다.

닷짱네를 맞추지는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닷짱은 무서워서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엄마의 등에 얼굴을 묻고 꽉 달라 붙어 있었습니다.

도중에  거북묘라고하는 오끼나와의 커다란 묘나, 꼭 한 사람이 들어갈만한 동굴 안으로 몇 번이나 뛰어들어가면서 다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마부니에 있는 작은고타가이 산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공격이 심해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서 엄마는 지금 왔던 길을 되돌아갔습니다. 이번에는 이토만으로 향했습니다.

걷고 걷고 거의 이토만의 아하곤( 그 당시는 가네구쯔촌)이라는 곳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거기서는 일본군이 사용했던 가마(동굴)에 몸을 숨겼습니다.

그 가마(동굴)은 숲 아래에 좁은 입구가 있었습니다. 자연 동굴에 조금 손을 봐서 대비방공호로 썼던 것입니다. 동굴 안에는 속이 깊었고 옆은 주머니처럼 작은  방공호도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많은 일본 병사와 경찰관들이 피난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닷짱은 거기에 바로 숨었습니다만, 병사가 많고 좁아서 다시 남쪽으로 가야했습니다.

 

아침,굴을 나와서 폭탄을 피해가면서 다음에 겨우 도착한 곳은 이시끼 라고 하는 곳에 있는 굴이었습니다. 거기는 취락으로부터 500미터 정도 남쪽에 있는 "토도로끼 호"라고 불리는 동굴이었습니다.  

구릉을 올라가자 정상은 움푹 패어 있었습니다. 울퉁불퉁한 그 곳 반대쪽으로 가자 그 동굴이 있었습니다. 

나무와 풀이 어지럽게 흩어진 동굴은 입구는 작았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좌우로 크고 넓었습니다. 벌써 입구쪽에는 피난하러 온 주민이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동굴의 오른 쪽에는 병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왼쪽에는 현청의 직원들과 경찰들, 그리고 가까이 사는 주민들도 있었습니다.

닷짱네가 오기 전에 시마다오끼나와 지사와 아라이경찰부장도 피난을 와 있던 동굴입니다. 닷짱은 어두운 동굴안에 몹시 기분이 나빠서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엄마의 몸빼를 붙잡고  조금이라도 엄마옆을 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섬의 주인공인 주민들이 제일 위험한 입구쪽에 밖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문간방신세 같았습니다.

동굴의 왼편 안에는 지하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물을 마시며 모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면 지하수가 흐르면서 고- 고 하는 소리가 동굴  밖에까지 들릴 정도 입니다. "토도로끼 호" 라는 이름도 거기에서 온 것입니다.

 동굴 안은 눅눅하고 바닥이 울퉁불퉁한 바위였습니다. 점점 먹을 것도 부족해졌습니다.

"배가 고파요!"

닷짱은 참을 수가 없어서 엄마에게 보챘습니다. 그러나 병사들은 낮에 주민이 먹을 것을 찾으러 밖에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미군병사에게 들키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먹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겨우겨우 닷짱은 영양실조가 되고 말았습니다. 동굴 제일 안쪽에는 쌀이랑 군식량이 쌓여 있었지만 주민들에게 나누어주지는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피난왔던 사람들은 저녁에 미군의 공습이 그치면 동굴 밖으로 나가서 야생 고구마를 파왔습니다. 그걸로  어쨌든 배고픔을 달랬습니다. 그것도 점점 없어지니 몸이 약한 노인이나 어린아이들 중에는 죽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닷짱의 울음소리도 점점 힘을 잃고 작아져갔습니다.

"이대로라면 닷짱이 죽어 버릴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든 엄마는 각오하고 닷짱을 업고 동굴을 나왔습니다. 다른 곳에 있는 아하곤 동굴로 돌아가려고 한 것입니다.

 

나하곤가마에 도착해보니 많은 병사들이 모두 동굴에서 나와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상처와 병으로 움직일 수 없는 병사들이 동굴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경찰관과 학도병들도 남아 있었습니다.  나하곤동굴에도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밤, 닷짱이 잠들기를 기다려서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가는 것이 엄마의 목표였습니다. 엷은 어둠 속을 더듬어 먹울 수 있는 풀과 농가의 사람이 파다 남은 수염투성이 작은 고구마를 얻는 것이 일이었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찾을 수만 있다면 좋은 편입니다.

민가로 가서 먹을 것을 나누어 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근처의 사람들도 낮에는 동굴 속에 숨어 있었지만 밤이 되어 미군의 공격이 그치면 집으로 돌아가서 밥을 짓고는 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엄마가 판 고구마를 쪄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폭신폭신한 먹을 거리였습니다.

닷짱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닷짱! 닷짱! 일어나거라!"

귀속말로 속삭이는 엄마의 목소리에 일어난 닷짱은 졸린 눈을 비비며 아직도 따뜻한 고구마를 볼이 미어터지게 먹었습니다.

 

나하곤 동굴의 입구는 초록색 일본군 모포로 가려져서 바께서는 잘 보이지 않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래도 미군은 곧 겨기까지 왔습니다.

전차 소리를 높게 하고 지나가고 있는 것이 동굴 안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모두 숨을 죽이고 꼼짝않고 있었습니다.

전차 뒤에 따라온 아메리카 병사는  통 입구에서 빨간 불이 뿜어져 아오는 화염방사기를 사용해서 한순간에 풀과 나무, 민가들을 불살라버렸습니다. 그래서 동굴을 발견하면 그 속으로 수류탄을 밀어 던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서운 폭탄음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하루는 엄마가 고구마를 찾으려고 동트기 전 어두움을 틈타 밖으로 나갔습니다. 동굴 밖은 위험했기 때문에 언제나처럼 닷짱을 두고 나갔습니다. 닷짱은 아직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열심히 고구마를 찾았습니다.  서두르지 않았다가는 닷짱이 잠을 깨어 울기라도 하면 큰 일이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울음 소리나 물건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 미군이 알아차리게 될까봐 동굴 사람들은 너무나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엄마는 곁눈질 할 틈도 없이 고구마가 있을 것 같은 곳을 파고 있었습니다. 어느틈에  미군병사가 가까이왔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린 엄마는 허둥대며 죽었구나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미군병사는 엄마에게 총을 겨누고는<이리 와!> 하는 듯이 손짓을 했습니다.

엄마는 포로가 되어버렸습니다.

붙잡힌 엄마를 데리고 간 곳은 시오히라 해안이었습니다. 그곳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모두 붙잡혀 온 많은 주민과 일본병사였습니다. 거기서부터 미군의 상륙용주정에 태워 오끼나와 본섬 중부의 수용소로 이송될 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엄마도 끌려갔지만 엄마의 귀에는 동굴에 남아 있는 닷짱의 힘없는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어떻게 해서라도 닷짱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해)

엄마는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베비-!, 베비-!"

순식간의 일어었습니다. 동굴 방향을 가리키며 미친 사람처럼 있는 힘을 다해 외쳤습니다.

"베비-!, 베비-!"

그걸 보고 있던 미군 지휘관 비슷한 병사가 손을 들어 말했습니다.

"오 - 케!"

그곳에 안내하라는 듯 손짓으로 말을 걸었던 것입니다.

이윽고 엄마는 닷짱이 있는 동굴을 향했습니다. 뒤에는 미군 병사가 총을 겨누고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동굴 앞에 오자, 엄마는 모포로 감춘 입구를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닷짱을 껴안고는 안에 있던 피난민들, 학도병, 일본군 병사들에게 말했습니다.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 있어요. 군대도 있어요. 여기 그대로는, 여기는 위험해요. 미군이 저기까지 와 있어요."

동굴 안이 떠들썩해졌습니다.

"모두 함께 여기를 나가요!"

주민 중에는 곧 따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도병과 군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학도병을 인솔해갔던 선생이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죽을 겁니다. 자결하겠습니다"

학도병들도 저마다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선생님과 함께 여기에 남겠습니다"

학도병마저 그러니 군인들은 더 들을 것도 없습니다.

다쳐서 옆에 있던 군인 한 사람이 일본도에 의지하면서 비틀거리며 일어나서는 고함을 쳤습니다.

"너희들! 지금 빨리 나가!, 안 그러면--"

 

그렇게 이러쿵저러쿵 하고 있자니 뒤에 따라왔던 미군 병사가 동굴 입구로 내려와서는 큰 소리로 뭔가를 말했습니다. 나오라는 신호였습니다.

엄마는 닷짱을 껴안고 동굴을 나왔습니다. 엄마 다음으로 수십명의 주민이 나왔습니다.

그때 미군 병사 하나가 동굴에서 나오는 젊은 여자를 덤불 속으로데리고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상관이 곧 눈치를 채고 그 사람을 위험한 상황에서 구해주었지만, 그 즈음 젊은 여자들이 미군병사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가끔씩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닷짱과 함께 있어서 걱정이 없었습니다.

 

닷짱네를 데리고 간 곳은 피난민이 모여있는 시오히라 해안이었습니다.

거기에 숨어 있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닷짱은 목이 바짝 말라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도로 웅덩이 물에 얼굴을 묻고 벌컥벌컥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물은 탁한 갈색이었지만 더럽다고 생각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 때문인가, 배가 불렀습니다.

포로가 된 사람들은 미군의 수륙양용차에 태워졌습니다. 바다 위로 이동될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닷짱은 미군병사가 껴안고 있었습니다. 처음 본 미군 병사였습니다. 몸이 단단하고 무겁고 지긋했습니다. 큰 파도가 금방이라도 눈앞으로  다가오사 지금이라도 삼켜버릴 것 같았습니다.

미군병사는 주머니에서 쵸코렛을 꺼내더니 겁을 내고 있는 닷짱의 손바닥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입에다가 쵸코렛을 넣으며 닷짱에게도 먹으라고 권하였습니다.

닷짱은 조심조심 입으로 넣어 봤습니다. 

달다- 지금까지 먹었던 것과는 다른 맛이 났습니다. 뭐라고 해야 하는 단맛이었는지, 그때의 맛좋음을 닷짱은 전쟁이 끝났어도 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닷짱네가 내린 곳은 오끼나와 본섬 중부에 있는 기노완 해안이었습니다. 그곳은 목적지가 아니었고, 이번에는 군용트럭으로 나까구스꾸의 쮸쥰 이라는 데로 데리고 갔습니다.

여기에도 포로가 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곳 미군 병원에서 취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더이상 먹을 거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닷짱도 죽을 먹여 체력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닷짱이 건강해질 즈음. 이번에는 금무촌의 고지 수용소로 옮겨졌습니다.

 

나중에 엄마로 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엄마가 미군병사에게 발각되고 닷짱을 데리고 주민들과 함께 나왔던 가마는 그후 곧 미군이 화염방사기의 시뻘건 불이 발사되었습니다. 남아 있던 학도병과 일본병사는 그대로 생명을 잃었던 것입니다. 동굴은 순식간에 무덤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닷짱은 엄마가 "베비-" 라고 외친 덕분에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래도 그때 왜 엄마의 입에서 "베비-!" 라는 영어가 튀어나왔던 것일까요.

엄마는 보통은 오끼나와 방언을 쓰고 영어 따위는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부터 어린애옷을 " 베비복" 이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그것을 기억해 내었던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 베비옷"이 머리에 떠오르며 " 베비-!" 하고 외쳤던 것입니다. 엄마의 재치가 닷짱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안타까웠던 것은 함께 동굴을 나가자고 권했던 학도병들의 일입니다. 학도병들은 죽는 것이 나라를 위해 천황전하를 위한 것이라고 교육받았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의 생과 죽음이 어떻게 종이 한 장 차이 뿐일까요.

 

전후, 오끼나와의 동굴에는 많은 유골들이 나왔습니다. 그 일이 신문 등에서 보도될 때마다 닷짱은 그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나도 저 뼈의 하나가 되었을지도 몰라"

 

오끼나와전에서 일본과 미국, 합쳐서 약 20만의 사람들이 귀중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 중에도 오끼나와주민은 12만 명 정도가 희생되었습니다.

전쟁은 적도 자기편도 없습니다. 나중에 남는 것은 슬픔 뿐입니다. 

닷짱도 할머니, 아저씨, 이모를 잃었습니다. 비루마(미얀마)에 종군했던 아버지도 결국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동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지 60 년.

전쟁의 아픔을 온몸으 받은 엄마는 올해 89세입니다. 전쟁에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하며 살아왔습니다. 닷짱도 그때의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끼나와에는 이처럼 자연동굴을 이용하였던 피난호가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기도 하고 구해지기도 했습니다.  각각의 동굴에는 저마다의 오끼나와전쟁이 있습니다. 닷짱의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슬픈이야기를 거듭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들은 동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귀기울여 보세요. 들리지 않나요?

"베비-!"

그 엄마의 외침 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