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뉴캐피탈리즘-2009년의 책읽기6

자몽미소 2009. 4. 5. 08:07

 

 

지은이

 

 

30년 전 새마을 노래와 잘 살아 보세 라는 국민가요엔 어쩐지 희망 같은 것, 고생이 이후 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 송대관의 쨍 하고 해뜰날은 일 년을 결산하는 노래 자랑에서 대상을 받기도 하였다, 쨍하고 해뜨는 것처럼 국민소득 1천 달러의 시대가 오면, 집집마다 전화와 자동차가 있게 된다고 담임 선생님이 말할 때 국민학교 교실 안 국민학생인 우리들은 도대체 어떻게 집집마다 전화가 있고 자동차가 있을 수 있을까, 우리 나라도 미국이 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은 달을 따 보이는 것처럼 경이로웠다.

그런데, 그 시간이 왔다. 집집마다 전화는 물론 사람마다 전화를 들고 다니고 한 집에 하나가 아니라 두 세대의 자동차가 있기도 하다. 우리는 굉장히 잘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 선생님이 말씀 하시던 낙원같은 행복감은 상상만큼 크지 않다. 오히려 행복보다는 불행감이라는 게 더 많아진 것 같다. 그때보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더 늘었고, 남보다 더 잘 사는 사람들 때문에 그 보다 못하게 사는 사람들은 자기 생이 몰락했다고 까지 느끼게 되어 버렸다. 오래 전 우리 교실엔 특히 잘 사는 집 애도 없었지만 지질이도 못사는 집 애도 없었지만, 지금은 모두 비슷한 외양에 비슷하게 차려 입긴 하면서도 내면의 차이는 엄청나게 커서 도대체 그 속을 알 수 없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깊고 넓은 강이 있고 벽이 있는 것 같다. 옆집과 아래윗집으로 같은 건물에 살아도 그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금 어떤 고달픔이 있는지 서로 모른다. 이런 무심함이란 30 년 전에 우리가 기대하던 미래의 시간 그림에는 없었다. 매우 잘 살게 된 것 같은데도 잘 사는 느낌이 없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30 년 전에는 잘 살아보자 고 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부자 되라고 한다. 부자가 되어야만 잘 사는 것이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어느 만큼 부자가 되어야 잘 사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진짜 부자들은  자꾸자꾸 더 많이 부자가 되는 바람에  부자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늘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자신을 압박하면서 부자되지 못함을 불행해 한다.

하면 된다거나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는 자기계발서의 주문은  어떤 부자가  되어야 할까에 관한 도덕적인 질문을  사양한다. 필요없는 땅과 집을  보다 더 사들임으로써  돈이 없고 집이 없는  사람에게서 돈을 벌고 있는 부동산 투기꾼들의 부자된 사례는 질시를 받는 대신  개인의 경제적 성공담으로 회자된다.  가수 방미 같은 이는 전형적인 부동산 부자인데, 모 방송국에 나와서 재산형성의 개인사를 소개했다. 물론 그 개인의 자질은 그곳에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 프로를 보면서 그런 기획을 하고 방송에 내보내는  방송국과 피디의 무신경에 대해 혀를 찼다. 내게 집은 한 가족이 하나만 가지면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어쨌든 보유 재산이 많다는 현상의 결론에만 빛을 보내다 보니, 동시대를 살면서 남보다 느려 집을 못 가졌거나 직장이 변변치 않아 뒤쳐진 듯한 사람들은 그 빛에 의해 그림자 속으로 지워진다. 무능력은 죄악이라는 듯이,  현금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경제적 무능력은 퇴출될 인생으로 간주된다. 

 

이 책, 뉴카피탈리즘은 신자본주의 비판서이다.

1960 년대 신좌파 운동은 관료제와 같은 제도, 즉  개인을 옴짝달짝 못하게 하는 쇠창살 감옥과 같은 제도를 해체함으로써 바람직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역사는 또 그렇게 변해갔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는 사라졌고, 과거 자본주의 대기업들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새로운 부가 창출되기도 하였다. 신흥부자들, 주식 투자로 부동상 투자로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개인적 능력이 독특하게 발휘되어 이른 나이에 부자가 된 이들도 생겨났다. 정부나 기업의 경직된 관료제가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지도자들도 경직된 관료제를 해체하려 한다. 하지만 거대한 제도가 해체되면서 사람들의 삶은 공동체가 아니라 해체된 제도의 파편속에 갇히게 되었다. 퇴출이라는 말은 직장에서의 거부 뿐만이 아니라 그 개인 인생을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하게 한다. 재생불량성 병원체를 가진 인간처럼 어쩐지 새로운 인생을 계획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본인과 주변이 동시에 한다. 퇴출은 삶의 경계선 밖으로 내몰리는 공포이기에  교육기간 동안 경쟁의 우위에 서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을 해서 좋은 직장을 잡고 자리를 잡은 사람들조차도 언제 그 시간이 올지 항상 불안한 상태다.

 

그래서 현대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상적인 부류에 들려는 사람은 다음의 세 가지 관문을 통과 해야 한다.

 첫째는 시간에 관련된 것이다. 같은 직장 안에서도 수시로 업무가 바뀌고 이 직장 저 직장을 전전해야 하며 고용기간을 비롯해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 기간도 짧아지고 있다. 시간의 문제란 이처럼 변화된 상황과 그 속의 자신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이 관문에서 살아남는 인간만이 현대사회에 적응해 살 수 있다.

 

둘째는 재능에 관한 것이다. 현대경제에서는 특정 기술이 쓸모 없어지게 되는 기한이 날로 짧아지고 있다.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사회질서는 한 가지 일을 잘 처리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기술을 다듬는 장인들의 한우물파기를 방해한다. 현대의 문화는 장인정신과 달리 지난날의 업적보다는 미래의 잠재력을 중시하는 능력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잘 하는 장인은 기업에서 퇴출되고 아무 일이나 해 낼 수 있는 있는 잠재력 있는 인간만이 선택되고 남는다. 그래서 그 개인은 어느 것도 다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이겨내고 항상 미래의 잠재력을 보여 주어야만 그 조직에서 살아남는다.

 

셋째는 포기의 문제다.즉 어떻게 과거와의 단절을 실천에 옮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제는 조직 내에서 자신의 자리와 지위를 소유할 수 없으며 기업은 누구에게도 자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 이 시대를 살려면 이전의 경험을 하찮게 여길 수 있는 특별한 개인의 품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니 새로운 일을 겸손히 받아 열심히 하는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경험을 스스로 무시하고 조직이 원하는 것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

 

한우물 파기를 버리고, 장기보다 단기를 선호하고, 잠재력만을 중시하며, 과거의 경험을 기꺼이 내팽개칠 수 있는 개인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요란한 선전이 쏟아졌지만 그런 자질이란 아무리 이 시대의 인간상으로 바람직한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과는 거리가 멀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지나온 삶과 현재가 서사적으로 연결되고 앞으로도 그러기를 원하며 특별한 분야에 대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데에 긍지를 갖고자 하고, 살아오면서 쌓은 경험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30년 전보다 잘 살게 된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정처 없이 표류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선전되고 있는 것들이 결국 우리 삶을 끊임없는 불안으로 몰고 가기에 이러한 문화에 대처하는 개인과 공동체, 국가의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변화에 시대에  꼭 필요한 가치로, 사건과 경험의 축적, 개인 유용성의 발휘, 장인 정신의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신자본주의의 새로운 권력 구조가 대단히 천박한 문화를 통해 생겨났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했다. 사람은 누구나 일을 제대로 해내려 노력함으로써만 스스로의 삶이 아무렇게나 흘러가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자신의 삶이 지금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가진 개인과 공동체가 모일 때 신자본주의 문화의 천박함을 깨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신자본주의의 광풍이 사람을 사람답게 사는 데서 멀어지게 하고 있더라도, 그러나  돈이 제일이다 라는 주장에서 한 발 떼어내 볼 수 있는 사람들, 교육권력이 옹호하는 것들에서 진실을 가려내어 교육을 교육답게 하려는 교육자들, 인간관계에서 쿨하다는 신조어 대신 도타운 정을 발견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정치의 목적이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향해 있는 정치가들이 아직은 존재하므로, 현재 일터나 학교, 정치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신자본주의의 물결은 또다른 희망을 품고 있다 하겠다. 우리 하기 나름이다. 어떤 정치가를 지지할지, 어떤 교육을 따라갈지 살아가는 일의 계획을 어떻게 세울지  선택의 많은 부분이 우리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