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민족지연구쪽글 3강/지구사람인류학이 있다면

자몽미소 2009. 9. 14. 20:50

민족지연구

(책: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지구사람 인류학이 있다면,


 한국학 박사과정 1학기

2009. 9. 15


텔레비전 다큐 프로그램에서 케냐의 원주민을 보았다. 강가에 살면서 남자들은 물고기를 낚고, 여자들은 야자수 잎으로 집을 만들어 살았다. 풀이 보이지 않는 사막 지방이었는데 섭씨 50 도를 오르내리는 낮 더위 속에서 그늘이라고는 야자수 잎 원두막이 전부였다. 케냐 정부는 그들에게 한 달에 한 번 옥수수 가루를 배급하였다. 그러나 그 양식은 이틀이면 동이 나 버렸다. 다음 배급이 올 때까지 원주민들은 어떻게 해서든 먹을거리를 찾아 나서야했다. 사방으로 초원은커녕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돌멩이마저 녹아버릴 것 같은 땅에서 그들은 양을 키웠다. 풀을 먹지 못한 양은 젖도 나지 않았다. 여자들은 젖이 말라 버린 양을 세워 겨우 양젖을 짜 가지고, 그들의 차에 섞어 아이들을 먹였다. 밀크 티 같은 그 음료가 옥수수 가루가 떨어질 때의 그들의 식사였다. 자연환경이 다르고 문명의 정도가 다른 우리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보고 있자니 그들의 일생이 혹독한 땅에 매여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엔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부족은 원래 내혼집단이었으나 차차 부족원이 줄고 부족 내에서 결혼할 여자들이 없어짐에 따라 이웃 부족의 여자들과도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웃 부족의 여자들은 귀에 여러 개의 귀걸이를 했지만, 이 부족의 여자들은 귀걸이는 하지 않고 목걸이를 했다. 이웃부족에서 시집 온 여자가 구멍만 남은 귀를 보여주었다. 이제 결혼을 하였고 이 부족 사람이 되었으니 자기 부족에서 하던 것은 버리고 이 부족의 풍습을 따르겠다고 하였다.

그들과 먼 곳에 있는 내 눈엔 그들이 다른 부족끼리라고 하지만 그냥 피부가 검은 사람들이고 얼굴 모양도 서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부족 바깥에서 신부를 데리고 오기까지의 부족 내 갈등이라는 게 뭐 그리 심각할 게 있나 싶다. 귀걸이를 빼고 목걸이는 하든, 아니면 이 부족 사람들이 목걸이를 치우고 귀걸이를 하든 그게 뭐 큰일인가도 싶다. 그러다가 스스로 화들짝 놀랐다. 방송을 보며 함부로 드러난 내 생각은 마치 19 세기의 제국주의자들처럼 타자의 문화와 풍습에 대해 차갑고, 그들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 배려가 없다. 장가 갈 여자가 없어 필리핀과 베트남에서 여성들을 데리고 옴에 따라 겪고 있는 한국 다문화가정의 갈등을 옆에서 보면서도 아프리카 부족의 문제는 다른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젓가락을 쓰는 중국과 한국과 일본인이 같아 보일 수 있겠다. 서로 자기 고유의 문화에 대해 주장할 때, 우리 스스로는 개별적인 차이가 국경보다 더 굳건하다고 믿고 있겠지만, 내가 방송으로 보는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그렇듯이 그들도 우리에게 얼굴 모양과 피부색깔과 밥을 먹는 방식이 비슷한데 다름을 강조할 게 뭐냐고 할지 모른다.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의 제 3장-8장, 10장, 12-13 장을 읽으며, 인류학이 학문으로서 가지는 모양이 있다면 <스밈과 번짐>이 아닐까 싶었다. 인류의 진화를 이야기 하면서 인간다움에 관해 생각해 보자거나, 경제와 정치, 종교에 관한 글쓰기에서 경제학, 정치학, 종교학이 다루지 못하는 학문간 관계와 우리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를 짚고 넘어가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새롭게 그려나가는 것이 마치 스며들어 번지는 그림처럼 보인다. 문화인류학이 최종적으로는 인간의 문제를 이해하고자 하기에 사람들이 겪는 문제(정치, 경제, 종교, 가족, 혼인, 성별구분, 정체성) 속으로 들어가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것, 차이와 다름 속에서 공통의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인류의 기원을 연구하며 남성 또는 여성 중에 누가 더 인류의 진화에 이바지 하였을까를 고민하거나, 이후 우리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조심스럽게 진단하는 데서도 단지 고고학이나 유전공학이 이야기 하지 않는 부분들을 문화인류학은 세심하게 짚고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책에서 말하던 내용은 좋은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나서는, 문화인류학이 지향하는 다름에 대한 배려와 이해는 사라지고, 원래의 내 사고방식과 껍질 단단한 편견의 옷으로 갈아입고 말았다.

한 세기 전,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제국주의자들처럼,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몰살시켰던 서구 제국주의자들처럼, 나도 또한 다를 바 없이 인종에 대한 편견, 가난한 나라의 사람에 대한 편견, 또는 내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타자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하여, 생각해 본다. 먼 시간 후에 이 지구를 정복하려는 외계인들의 눈에 우리 지구의 사람들은 어떻게 보일까, 그들의 눈에는 모두 같은 지구사람으로 보일 우리들일 텐데, 그래서 그들이 기록하는 지구사람 인류학엔 종교와 화석연료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고,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지나친 경쟁을 한 나머지 자신이 살아가야 할 지구라는 땅과 바다와 하늘을 급속도로 파괴하며 환경오염을 일으켰던 20 세기의 인류를 어떻게 설명할까? 어떻게 보면 우리 모든 지구인은 지구부족사람일진대, 나는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나는 너와 다르고, 달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내가 그들보다 낫다는 우월감으로 변환하여 내 살갗처럼 붙여 떼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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