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리포트-가족의 밥상, 지키기와 가꾸기

자몽미소 2009. 11. 20. 12:57

 

한국학협동과정( 2009년 하반기)

한국의 고전문학

가족과 밥상, 지키기와 가꾸기

                                             M J

(2009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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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구(食口)를 위해 칼을 삼키다

 딸 성폭행한 재혼남편 선처 호소,

 생활고 엄마의 ‘모진 선택’,

 “딸 상처 모르지 않지만 비참하게 먹고 입고 자, 새출발하게 도와 주세요”      2심 재판부 최저형으로 감형

                   -2009년 11월 18일자, 한겨레신문, 머리기사-


지난 7월, 올해 39세인 여자가 자기 딸을 성폭행한 남자를 경찰에 신고했다. 남자는 지난 9월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2년 전 여자는 이미 두 자녀가 있었지만 파산신청을 할 만큼 경제적으로 궁핍한 처지였다. 그때 직장에서 알게 된 남자와 살림을 합치게 되었고 네 명은 한 가족이 되었다. 단란한 가족을 꿈꾸며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지난 7월 여자는 남자와 크게 다투었다. 남자는 그 후 피시방에서 지내며 집에 오지 않았고, 걱정이 된 여자는 아이들을 시켜 남자가 있는 곳으로 도시락을 싸서 보냈다. 그 날 아들은 이내 돌아왔지만, 10살 된 딸은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여자는 한 달 뒤 딸을 낳았다.

남편이 구속되었고, 혼자 남은 여자는 기초수급생활자가 되어 월 40 만원으로 세 아이를 키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특별히 다른 생계 수단이 없고 양친과 형제가 없는 여자는 고민 끝에 항소심 법정을 찾아 남편의 선처를 호소하였다.


"죄에 대한 대가로 네 사람의 인생이 달려 있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일이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저희 가족은 비참하게도 의식주 때문에 고생합니다.

어미된 자로서 딸아이의 고통과 상처를 왜 모르겠습니까? 큰 아이에게는 이미 죄를 지어 평생 죄인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뱃속에 있는 아이도 제 자식입니다. 이 아이에게도 죄를 지으면 어미된 자로써 어찌 살아가야 합니까? 지금 딸아이는 잘 이겨냈습니다. 오히려 엄마인 저보다도 잘 극복했습니다.

힘들어 고통스러워할 때 저를 위로한 것이 딸아이였습니다. 제발 가정을 지켜주십시오. 상황이 이러니 삶의 무게가 너무 힘들어 쓰러질까 합니다. 하지만 이 어려움 뒤에 행복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새 출발하게 도와주십시오."


신문은 법원이 현행법에서 감경할 수 있는 최대치인 징역 3년 6월을 남자에게 선고했다고 알려준다. 재판부는 죄를 벌하기 위해서는 양형 기준을 적용하는 것 이상으로 개인의 개별적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죄 지은 남편에게 희망을 걸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는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그 희망을 삶에 최선을 다하는 본능으로서  존중하는 것이다.


과연 3년 6개월 후에는 세 아이의 엄마인 이 여자는 그 남자와 더불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을까? 남자가 다시 온다면 여자는 먹고 사는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까? 여자의 소망대로 가정을 지키는 일이, 감옥에 갇혔던 남자가 돌아오고, 돌아온 남편이 밥벌이를 해주기만 하다면 가능한 일인가? 남자는 자신을 구속시켰던 여자와 그녀의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밥을 벌어와 줄 것인가?

“사람의 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굴러다닌다.”(김훈, 밥벌이의 지겨움)는 말을 비틀어 “가족의 밥은 식구들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 아이를 거두어 먹이기 위해 용서하지 못할 자를 용서하자고 청원하는 어미는 먹고 살 일을 걱정한다. 먹고 살 일의 어려움을 수감된 자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으로 이해하여 달라고 애원한다. 그녀는 식구(食口)들의 먹고 살 일을 위해 칼을 삼켜 가슴에 묻은 사람으로 보인다. 이때 이 여자의 밥(食)과 가족(家族)은 “식구(食口)란, 집(家)이란 공간에 함께 살면서 식사를 함께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가구집단” 또는 “한 솥밥을 함께 소비하는 집단” 이라는 말의 경계를 넘어서 있다.


2. 밥상에 가족이 없다


사람들은 “가족의 범위는 점차 다양해져 간다. 이제는 생물학적으로 규정된 가족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가족,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맺어진 가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다.” (김별아 산문, 『식구』) 라는 말에 기꺼이 동의하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가족이라면 마땅히 할 일들이라고 여겨지던 것들은 소홀히 한다.

그 중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관계의 벽을 허물어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로서 가족(家族)은 다른 말로 식구(食口) 또는 식솔(食率) 이라고도 불렀다. 밥을 함께 먹는 끈끈한 관계가 바로 가족인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식구들이 제각각 바쁘기 때문에 밥상에 함께 앉아 밥을 먹는 일이 드물다. 밥을 함께 먹는 식구로서의 가족은 서로의 관계 맺기에 서투르고 때로는 위태로워서 식구라고 하지만 같이 밥을 먹지 못하고, 밥을 먹기 위해 가족이 모이는 식탁은 함께 모이기 가장 어려운 장소가 되어 간다.

오늘날 가족 구성원은 음식을 함께 먹는 뜻의 식구의 의미를 상실했고,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기념일이나 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에만 볼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식사 공간에 앉아 같은 음식을 나누는 행위는 상호작용의 기초이며 동시에 공동체의 유지와 결속을 가져온다고 볼 때, 요즘처럼 가족이 어울리지 못하는 식탁은 그 기능을 유지하지 못한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공동체가 무너지는 전형적인 예로 지적하기도 한다. “식탁은 ‘함께 식사하는 장으로서의 가정’을 연출할 수 있는 데 가장 어울리는 무대 장치이며, ‘단란한 가정’의 상징”(이노우에 다다시 ,『일상과 음식』에서 재인용)이 되고 있지만, 오늘날의 밥상은 보다 풍성해진 식탁의 재료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의 풍부함까지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인간 기본 생활이라는 의식주(衣食住) 중에서 식(食)은 옷이나 집처럼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일이 드물다. 옷을 자랑하고 잘 지어진 집을 공개하는 걸 즐기는 사람도 먹는 일만큼은 보다 더 사적 영역에 두려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먹는 일을 잠을 자고 성관계를 맺는 것과 같은 개인 활동으로 여기기도 한다. 가족의 식사는 그래서 가족의 사생활 영역이 되며 그 가족의 삶이 은밀히 배어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각각의 가족들의 삶을 보려면 무엇을 먹고 있는지 보다 어떻게 먹고 있는지를 봐야 할 것이다.  소개하는 두 편의 영화는 문제 많은 가족에 관한 것이다. 가족의 해체와 붕괴가 주요 내용이다. 그곳에서 음식 이야기는 그리 중요하게 처리되지 않는다. 음식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어떻게 먹고 있는지를 보는 것은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의 핵심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3. 영화 두 편-가족이 흔들리다


-영화 <우아한 세계>와 버려진 밥상

영화 제목 <우아한 세계>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강인구의 소망을 달리 말하는 것이다. 강 인구는 그의 가족을 전원주택에 살게만 할 수 있으면 다른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 소망을 위해 때로는 비열하게 남을 밟아 빼앗아야 했고, 승냥이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에서처럼 도망가고 물어뜯으며 목숨 걸고 싸워야 했다. 그가 그렇게 힘들게 누군가와 싸웠더라도 그 결과 풍족하게 사는 건 아니다. 아들은 유학을 가 있고, 딸 또한 유학을 가게 해 달라고 조르며 반항한다. 또한 아내는 좁고 낡은 아파트 생활을 지겨워한다. 그는 돈을 벌 다른 방법도 없고 계속 돈이 필요하기에 깡패 조직 속에서 자기 자리를 단단히 잡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다른 사람을 때리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 딸은 일기장에 깡패인 아버지가 칼 맞고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써 놓고, 아내는 아이들 교육에 나쁘니 깡패 일을 그만 두든가 이혼을 하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강인구는 아내의 요구를 당장은 들어 줄 수가 없다. 이혼은 절대 안 된다, 하지만 수압이 낮아 물도 잘 안 나오는 아파트 말고 전원주택 하나만 얻으면 깡패 생활을 청산하여도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둔다. 전원주택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삶, 그것이 바로 깡패 강인구가 추구하는 <우아한 세계> 이다.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그의 집단이 그를 궁지로 몰아넣는 바람에 그는 살인까지 하게 된다. 감옥에 들어갔고,  몇 년 후 감옥을 나온 그는 반대 세력의 포섭에 다시 조직깡패의 길에 들어선다. 그 대가는 그가 그리던 전원주택이었다. 전원주택을 마련한 그는 이제 <우아한 세계> 속으로 진입했다. 이사한 날 그는 사람들을 불러 노래하고 먹고 마신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집에서 딸과 아내는 그와 함께 살지 않는다. 딸이 유학을 가겠다고 했고, 아내도 딸과 아들의 뒷바라지를 핑계로 그의 곁을 떠난다. 그는 아내마저 꼭 가야 하는지 망설이며 물어 보지만, 아내는 기어코 딸과 함께 그를 떠난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그는 넓고 우아한 전원주택에 혼자 있다. 혼자 남은 그는 가족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여전히 남을 등치고 짓밟아 돈을 마련한다. 어느 날 집에 있는 그에게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외국에 간 가족이 보낸 DVD 이다. DVD 화면은 딸과 아들이 장난을 하고 아내가 요리를 하며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셋은 여행을 가고 여행지의 풍경을 카메라로 보여주며 아버지에게 말을 건넨다. 아빤 괜찮죠? 진정으로 걱정하는 모습이 아니라 인사말로서 안부를 묻고, 그들은 그들의 행복을 보여주기 바쁘다.

그는 그때 마침 라면을 삶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입에 한가득 라면을 물고 껄껄 웃는다. 행복의 웃음을 같이 웃는다. 그러다가 불현듯 그의 표정이 바뀐다. 웃음이 외로움과 분노로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그가 들고 있던 라면 그릇을 집어 던진다. 거실 구석까지 라면 국물과 면이 튀고 그릇이 깨진다. DVD 화면 속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이  배경인 하늘로  저 높이 퍼진다.

영화는 눈물을 훔치고 다시 엎드려 자기가 집어 던진 라면 그릇과 쏟아진 면과 국물을 걸레로 닦아내는 그의 모습을 오래도록 비춘다. 관객은 미리 알았으나 주인공 강인구만이 늦게 알았다. 버려진 밥상, 버려진 라면과 깨진 그릇은 가족을 위해, 가족의 먹고 살 일을 위해 목숨 걸고 사는 남자의 자화상이었다.

   

<가족들의 DVD 를 보다가 먹던 라면 그릇을 던지고 난 후 걸레로 닦는 모습>


-영화 <노리꼬의 식탁>과 가족 빌리기

- <노리꼬의 식탁> 포스터-

아버지와 어머니, 자매가 사는 일본 보통 가족이 어떻게 해체되고 붕괴되었는지를 섬뜻한 사건과 사고 방식으로 풀어낸 영화다.  아버지는 지역 신문의 평범한 기자, 자신이 만든 공간이 행복의 공감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남자다. 그는 딸들이 크면서 표정이 바뀌고 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자기가 사는 곳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른 세상을 보고 싶고 그곳에서 살고 싶어하는 17세의 여자 아이 노리꼬는 동경의 대학으로 진학하고자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동경에 나쁜 남자가 많다는 이유로 딸의 요구를 거절한다. 집에 갑자기 정전이 된 어느 날, 딸은 가출을 하고 자신은 지난 1년 동안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났던 여왕 같은 존재인 구미코를 만난다. 그녀의 닉네임은 우에노 에끼(우에노역)54 번, 우에노 에끼54는 25년 전 포대기에 쌓여 우에노역 사물함 54 번에 버려졌던 과거 때문에 스스로를 그렇게 칭하고 자신의 엄마를 우에노 역 사물함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버려졌던 아이라는 상처 때문에 자신의 삶을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졌다. 그녀의 홈페이지로 수많은 여자 아이들이 접속을 하였고 회원이 된 사람들은 종교처럼 그녀의 신념을 흡수한다. 우에노 역에서 여고생 54 명이 달려오는 전차에 몸을 던진 사건의 주범도 그녀이지만, 방송과 언론이 아무리 떠들어도 그녀가 만든 조직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녀는 또한 렌탈 가족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가족이 필요한 사람에게 일정한 시간 동안 원하는 역할을 대신 해 주는 것이다. 미쯔꼬로 이름을 바꾼 노리꼬도 점점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해 내며 그 조직의 일원으로 거듭난다.

그들이 방문하는 가정엔 그들을 기다리는 존재들이 있다. 가족의 정기적인 방문을 원하는 할머니가 있고 집 나간 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가 있다. 바람난 아내를 증오하는 남편이 있고, 죽을 날을 기다리며 가족이 방문해 주기를 기다리는 환자도 있다. 그들이 이 렌탈 가족의 회원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상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처럼 이 렌탈 가족의 서비스를 이용한다. 고객과 렌탈 회사 직원들이 연기하는 가족은 너무나 행복해서 주인공은 "굵은 파이프처럼 연결된 동맥의 핏줄을"(노리꼬의 독백) 느끼기도 한다.

가족은 따뜻하게 만나 즐거워하고 때로는 격정적으로 만나며 화해한다. 뜨거운 포옹이 있고 따뜻한 차가 있는가 하면, 함께 밥을 먹으며 누나는 누나답게 남동생은 남동생다운, 그래서 정말 가족스러운 가족을 연기한다. 이들 가족이 모일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음식이다. 밥상과 식탁에 모이는 가족은 이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서로를 아껴주고 행복한 가족임을 확인한다. 렌탈 가족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모든 게 가짜라는 것을 알지만 고민하지 않는다. 거짓은 겉도 속도 모두 거짓이기에 의심하지 않아 편하기 때문이다.

언니 노리코에 이어 여동생인 유카도 가출을 하고, 두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이윽고 아내도 잃는다. 아내는 가출한 딸 보다는, 가출한 딸들에게만 몰입해 버린 남편에 지쳐서 쇠약해지다가 자살한다. 아내를 잃은 후 아버지는 두 딸들의 메모를 모두 조사해서 딸뜰이 있는 동경으로 간다. 거기서 자살 클럽의 가족 렌탈 사업을 알게 되고, 그 사업을 이용하여 딸들을 찾을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가 우여곡절 끝에 만난 딸들은 그를 고객으로서만 대하려고 한다. 고객이 아닌 아버지, 옛날 인간관계를 들먹이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자는 아버지를 딸들은 이상한 고객 취급을 하며 거절한다. 딸들을 되찾기 위해 고향의 집과 거의 똑같은 집, 딸들이 쓰던 가구와 옷까지 모두 가지고 와서 배치하고 딸들을 기다렸지만, 딸들은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버지 역할의 고객이 원하는 딸의 역할 뿐이다. 아버지는 절망하고 가지고 갔던 칼을 휘두르지만, 그를 방해하는 클럽의 조직원들과 싸우다 오히려 그들을 죽이게 된다. 이 무서운 상황 앞에서 둘째 딸이 제안한다. "고객님? 시간을 연장할까요?" 그래서 그들은 원래 연기하려 했던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재현해 낸다. 다만 엄마 역할이 구미코 (우에노에키 54)로 바뀌었을 뿐, 가족은 따뜻한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행복한 가족을 만들어 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키야키를 먹고 다정한 말과 즐거운 웃음을 나누며 서로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상대가 하는 이야기라면 작은 소리까지 들어주며 함께 기뻐해주는 배려, 이 장면은 진짜 아버지를 고객으로 만났을 때라야만 가능했던 것이다. 가족이 붕괴 된 땅에 새로 생겨난 괴물 같은 가족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가족이라면 마땅히 밥을 함께 해야 한다는 신념처럼, 렌탈가족의 가족 연출 상황에선 언제나 가족 사이에 음식을 두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우리들의 오래된 믿음, 끈질긴 믿음인지도 모른다. 가족, 식구라면 음식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거나 변할 수 없는 가치일 것이다.


4. 밥상에서 배운다


-기억-


밥상 또는 식탁은 가족이 모이는 공간으로서 행복한 가정의 상징처럼 이용되고 있지만, 실지 우리가 마주한 모든 밥상이 그러하던가, 이 글을 쓰는 동안 내 머리 속에는 “밥 먹고 살기 위해” 애쓰던 부모님과 그때 아이였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있다.

그 시절 우리의 밥상은 지금과 비교해 보지 않더라도 절대적으로 빈약했다. 맛도 없고 그닥 볼품도 없는 밥과 반찬을 “먹어야 할  밥시간” 이라서 먹었지만, 반찬투정은 절대 할 수 없었다. 밥상머리 교육은 “밥 먹을 때 소리 내지 마라”, “어른이 수저 들기 전에 먹지 마라” 하면서 이후 식사 예절을 몸에 배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먹는 것을 소중히 여기게 하였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밥을 먹다가 목이 콱 막히는 경험이었다. 밥을 넘기려던 순간, 핀잔을 듣거나 짜증 섞인 말이라도 들으면 어김없이 그랬다. 밥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오늘은 무슨 일로 야단을 맞지나 않나 부모님이 기분 언짢은 일이 생기는 게 아닐까 조바심 나는 시간이었다. 가끔은 부모님이 서로 언성을 높이고, 먹던 밥상이 엎어지기도 했다. 목이 아니라 가슴이 막혔지만 따로 밥을 먹겠다든가 하는 말은 한 번도 꺼내 본 적이 없다. 다만 그 집이 싫어서 가출은 했다.

지금의 나는 그 가정에서 얻은 것을 교훈 삼아 내 가족이 밥상에서 가슴앓이를 하는 일이 없기를 신경 쓰고 있지만, 부모 노릇은 배운다고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잘 하였다고 해서 가족이 만족스러워 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 보니, 그때 젊었던 우리 부모님이 하였던 행동을 나름 이해하게도 된다. 가난한 농부였던 부모님이 겪었을 <밥벌이의 고생과 고됨>은 애틋하기까지 하지만, 그때 그 시절의 밥상은 여전히 행복한 느낌보다 서글프거나 억울한 느낌으로 남아 가슴 한켠을 무겁게 누른다.


-밖으로 나온 밥상-


내가 어린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동안 역사의 어느 시간보다 빨리 세상이 달라졌다. 배고픈 아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죽어가고 있는 동안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다이어트를 위해 일부러 밥을 안 먹는 사람들이 있고, 다이어트를 하다가 죽는 사람까지 있으며 버리는 음식물 처리로 도시 행정이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다국적 기업이 세계 곳곳의 농산물 재배와 유통을 손에 쥐면서 유전자 조작 식품의 증가하고, 농약과 비료의 과잉 살포, 광우병이 의심되는 쇠고기가 생산되면서, 건강을 위협하는 음식들이 우리의 식탁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청소년의 입맛과 기호에 맞게 패스트푸드점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돈만 내면 빠르게 배달되는 음식들과 반조리 식품들이 주부의 노동을 덜어주고 그것에 입맛을 들인 아이들은 “어머니의 밥상”과 “집밥”이 은유하는 맛과 가치를 잘 모르고 자라고 있다. 골목마다엔 말 그대로 밥 먹듯이 새로운 식당이 새로 생기고 문을 닫고 다시 생겨난다. 가정이 만들어내는 소중한 생산물로서의 음식이 산업화하면서 밥상에 차려진 음식이 상징하는 ‘가족 간의 사랑과 정’ 이 사라져간다. 가족을 지키는 장소로서의 밥상이 건강으로부터 멀어지고 가족 유대를 위한 공동 공간이라는 가치로부터도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불안한 우리 집 밥상

 

유년의 기억에서 내가 배웠던 것은 밥상이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종종 나는 이것이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느꼈다.

사춘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우리 집 아들은 밥보다 빵을 맛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나와 남편은 빵을 먹어도 밥 배가 따로 있는 사람이어서 빵은 간식이고 밥이 주식이다. 그러다 보니 아들은 서양식, 우리 부부는 한식을 먹는다. 그러다 가끔 두 종류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성가셔 우리 부부가 한식을 포기하고 아들의 서양식을 따라 먹는 경우는 있지만, 아들이 서양식을 포기하고 기꺼이 한식을 먹는 일은 흔치 않다. 빵으로 먹더라도 같이 밥을 먹을 수만 있어도 다행인 날이 많다. 아들과 남편의 기상 시간이 달라서 나는 아침을 두 번 차리고 점심과 저녁밥은 아들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먹고 우리 부부는 대개는 같이 먹는다. 아들은 내가 차려주는 “엄마의 밥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아들은 음식을 밥상에 앉아 먹을 때도 있지만, 또 많은 경우에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을 하면서 간단히 먹는 것을 즐겨한다. 그럴 때는 과자와 과일, 우유와 주스 종류로 자기가 선호하는 음식을 선택한다. 그런 음식을 먹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 밥을 먹자고 해도 아들은 자기가 알아서 먹는 것을 엄마인 내가 간섭하는 것 같아 불편해 한다. 내가 그렸던 행복한 가족의 즐거운 식사 풍경에 아들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내가 지키고자 하였던 밥상의 행복 한 귀퉁이가 잘려나간 것 같아 보인다.

나는 몇 년 동안 우리 집 밥상의 안전에 관해 마음을 써왔다. 마트에 가면 가공 식품을 사지 않고 천연 식품을 주로 산다든지 식단을 짜면서 자연 식품을 이용하고, 마트 보다는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등의 노력을 해 왔다. 우리 집 밥상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내 가족의 건강도 주부인 내가 노력해서 지키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정도 노력으로 가족 건강이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남편의 대장암 수술을 하면서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하여 먹을거리 구입과 먹는 방식에 관해 나름의 고집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일은 내가 외부를 향해 내 의지를 휘둘러보는 일일 뿐, 정작 세 식구가 함께 앉아서 함께 밥을 먹어야 할 밥상에 아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으니 과연 내가 무엇을 지키려고 했는가 씁쓸하다. 내 어릴 적 밥상으로부터 얻은 교훈 이라고는 밥상에서 아이 기분 나쁘게 하면 밥 먹다 목 막히니 그러지 말자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밥상을 잘 지키고 잘 가꾸자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들은 자기대로의 삶의 방식을 밀고 나가려고 하는 지점에 와 있고, 나도 모르게 어느 새 세 식구가 함께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은 아들을 빌려서라도 연출하고 싶은 그림이 되고 있다.   


5. 새로운 밥상에 적응하다.


현대사회는 가족이 모이는 식탁을 점점 사라지게 하고 있다. 식탁이나 밥상 없는 집은 없지만, 현대사회의 식사 방식과 공간이 달라진 만큼 우리의 식생활 문화는 변화 되는 것이 당연하다. 식사 시간조차 24 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과 식당 등의 출현으로 아침과 점심, 저녁밥 시간이라는 경계가 모호해졌다.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이 더 이상 이상하게 보이지 않게 된 세상이 되어서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는 혼자 온 손님을 위한 싱글 식탁도 생겨나고, 식탁이 없이 아예 길거리 음식으로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도 많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일하느라 식사를 할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 늘어난 탓이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의 영향 탓에 변해가고 있는 식탁과 음식을 먹는 일에 대한 가치 변화를 그저 비판하고 부정적으로만 말하고 말 것인가?

다르게 생각하면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밥상이 더 이상 공동체 확인의 장으로 활발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은, 가족 구성원이 새로운 장에서 새롭게 자기들의 공동체를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와 밥을 같이 먹지 못하는 동안 아들은 자기 친구들이나 선배들과 시간을 보낸다.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밥 같이 먹는 일”의 가치는 아직도 유효한 것이다. 이전 세대인 내 아버지에게는 저녁 시간에 여자 아이가 밖에서 밥을 먹는 게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나는 아들의 “밥 먹는 방식”을 존중하려고 한다. 밥을 먹는 방식에 대한 아들의 생각을 잘 들어보고 그래도 내가 그리던 가족의 밥상을 위해 아들이 동참해 줄 것을 부탁은 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아들을 비난하거나 야단을 칠 일은 아닌 것이다.

아들은 이제 곧 우리의 둥지를 떠나 자기의 둥지를 틀 것이고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들어 가장이 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먹고 살아가야 하는 일의 숭고함이 아들의 삶을 꾸리게 할 것이다. 자신의 정신과 몸을 부리는 노동이 자기 아이와 가족을 먹이기 위한 고달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가족의 밥상”이야말로 자기를 살리고 있으며 자신 또한 지겹도록 반복적인 그 일을 하는 의미와, 나아가 삶의 의미를 배워나가게 될 것이다.


자꾸만 신문 기사의 그 여자 생각이 난다. 남편이 감옥에서 돌아오면 그녀의 바람대로 가정을 지켜낼 수 있을까? 과거를 잊고 새 출발하자고 다짐한 부부는 세 아이와 더불어 단란한 밥상을 마주하고 앉을 수 있을까? 그 때 쯤이면 사춘기에 접어들 딸아이는 새 아버지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모른 척하고 잘 지낼 수 있을까, 가정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뜻은 갸륵하지만 이미 가정을 깬 장본인을 가장으로 다시 받아들여 지키려는 가정은 위태하다.

세상을 이루는 작은 세포에 불과한 개인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세상의 각종 위험한 먹을거리로부터 안전하자고 하는 것은 공상에 가까운 바람으로 보인다. 먹을거리를 위해 어딘가 산 속으로 들어가 자급자족을 할 수 없는 도시민으로서 산업사회가 야기한 먹을거리의 불안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개인은 그저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실천할 수 있을 만큼만 실천할 수 있을 뿐이다.

아들을 존중하는 일만 해도 그렇다. 마음은 그렇게 작정해도 밥상에서라도 함께 하지 못하면 같이 만날 시간이 거의 없는 아들과 나는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밥상을 중심으로 가족 공동체를 가꾸려는 내 생각은 내가 주관하는 삶의 작은 고집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발표 후

1. 작업

 강의 초에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종강 시 낼 글은 논문 발표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5- 6 매의 글로 제출하라고 해서 가볍게 생각했었다. 수업을 들을 때 떠오르던 아이디어만 해도 여러 개의 글을 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한 달에 3일 동안 하는 연속 강의가 끝나고 나면 다음 달 강의까지는 떠오르는 생각을 접어 두고, 관련 글 읽기나 준비를 소홀히 하였다. 매주 내는 문화인류학 쪽글을 쓰기 바빴다.

간간이 인용할만한 글들을 적어 두거나 하긴 했지만, 내 생각에다 책에서 본 글들을 섞어내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수업일 하루 전에야 글재료로 쓸 영화 두 편을 다시 보기했다. 수요일 수업 후에는 개요만 짰다. 어제 오후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회식 자리로 옮기기 전까지 4 시간 동안 글을 붙잡고 있었다. 회식에서 돌아왔을 때 글은 3 쪽을 넘기고 있었다. 새벽 2시 반에 글을 마쳤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읽어 보고 결말을 고쳤다. 

읽은 책이나 논문에서 인용하는 것을 거의 하지 않고 내 머리 속에서 나오는대로 글을 만들어 갔다. 이미 읽은 책이나 논문에  물론 인용할 만한 문장들이 있다고 치더라도 서로 다른 사람이 쓴 다른 주제에서 하나씩 둘씩 빼와서 내 글을 붙이는 일이 마치, 이 옷 저 옷에서 옷감을 잘라와 내 옷을 만들려는 일처럼  어색하였다. 늘 하던대로 책 읽은 내용이 내 머리 속에서 들어갔다가 나온 상태인 것만을 쓰고, 어쩌다 발견하는 문장이 내 생각의 재료로 쓰였다는 게 확실할 때만 다른 이의 글은 적어 넣었다.

오늘은 세 명이 발표를 했다. 학생이 발표하면 학생 끼리 질문하고 대답하고 토론을 한 후에 총평을 나중에 함께 하시는 게 이번 주의 수업 모습이었다. 내 글을 읽고 난 후 여러가지 질문이 나왔다. 밥상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 앞의 글과 뒤의 내용이 연결이 안 된다. 밥상과 가족을 같이 묶어 글을 쓰는 것 보다는 다른 주제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이 글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 내려 했던 것 같다... 등등의 질문과 감상이 이어졌다. 

그리고 선생님의 총평을 들었다.

 

2. 총평

" 이제까지의 우리 사회의 관심의 촛점은 자연과학적인 밥상에만 있었다. 어떤 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말만이 방송과 신문에서 나온다. 이제 인문과학적인 관심으로 우리의 밥상에 관해 관심을 가질 날이 온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길을 찾는 날이 온 것이다.

이 글을 공동체의 문제로서 밥상을 그렇게 본 것이다.

세계화가 삶의 구호가 된 시대에 삶의 다변화가 이루어졌다. 밥상의 문제는 사회 다변화와 관계가 있다.옛날에는 삶의 패턴이 비슷해서 밥상에 모일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식구 사이의 삶의 패턴이 모두 다르다. 가족과 이웃,사회와 국가, 그 중 가장 작은 공동체 단위인 가족은 무엇인가 또, 한 사회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일본의 사회학자들은 미국이 강대국이 된 배경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사회학적 이론을 발견할 수 없었다. 사회학 역사가 오래지 않았다. 프랑스 뒤르켐이 정립하고 베버가 계승한 사회학은 200년 남짓한 역사를 가졌다, 전부 유럽 사회가 모델이었기에 미국이 중심이 되도록 한 미국이 어떤 사회인가 하는 것을 설명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점을 나는 이렇게 본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모두 서로 다른 공동체에서 왔다. 정체성이 다 다른다. 그런데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다., 같이 살려고 하니까 어떻게 해야 같이 살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그것은 " 타협" 이었다 미국은 타협으로 서로 다른 사회를 아우른다

여기에 타협은 "국가" 개념의 유지다. 나라가 있기에 같이 살 수 있다고 교육 시킨다. 한국인들이 미국 시민권을 얻으려고 할 때 받는 질문도 그런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너는 어느 나라편에서 총을 들것인가를, 그것이 형식적인 과정이라고 해도 묻게 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우리는 너무 똑같다. 같이 사는 게 지겹고 나 아닌 남을 적으로 간주해 버린다.

우리 사회를 보면 우리편끼리만 잘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보게 된다

역으로 유럽 사회는 일본의 오야붕이나 꼬붕 이라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남의 목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은 삶의 다양화 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밥상의 기능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하나는 건강, 질병 예방 배고픔의 해소 등과 같은 동물적인 욕구의 기능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인간 삶에 관한 기능이다.

한겨레 신문에 난 기사는 과연 이 여자가 어떤 욕구에 의해서 탄원했는가를 봐야 한다. 공동체를 위한 것인가, 먹고 살기 위해서인가. 내가 보기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먹고 살기 위한 욕구가 더 급했다. 만약 남편이 돌아와서 공동체를 이루었던들 그 공동체가 유지 되겠는가, 당연히 깨진다.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쓰기 방법이다. 이런 글쓰기는 대학에서 안 된다. 이것은 수필이지 논문이 아니다.

 

3. 총평 후기

내가 생각하였던 것을 정확하게 지적당했다. 

이제까지 논문적인 글을 읽기 싫어했고 논문투의 글로 채워진 책은 한 두 페이지 읽다가 그만 두기 일쑤였다. 읽기 싫어서 안 읽었더니 정작 필요할 때는 그런 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들어간 곳이 양지바른 잔디밭이 아니고, 호랑이 동굴이라고 새삼스레 깨달아  정신을 차려야 한다거나 공부를 다르게 해야 한다는 각오는  생기지 않는다. " 나는 이렇게 써야 내 생각을 쓰겠는걸 어떻게 해, 할 수 없지"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그러니 연구를 해야 한다거나 논문을 써야 한다거나 하는 말을 들으면 그게 가능할까 이렇게 취미처럼 공부하다가 그만 두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가올 3,4 년 후를 짐작해보게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