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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책부족 3월의 책 독후감

자몽미소 2011. 3. 31. 18:59
책부족의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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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세계문학전집 112)

저자
앤서니 버지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5-01-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앤서니 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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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을 읽고 내 생각
책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을 때면 제목에서 냄새를 맡는다. 우리 책부족이 지금까지 읽은 책들 중에  <오만과 편견>, <설국>,<카타리나 볼륨의 잃어버린 명예> 등등은 제목이 책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어서 제목을 보고 냄새를 맡아보는 건 하지 않았다. 제목과 내용이 상당히 달랐던 책은 없었다. 있다면 <거미여인의 키스> 정도.

그런데  이번 달에 읽을 책 < 시계태엽 오렌지>는 제목에서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다. 오렌지 냄새를 떠올려서는 안 될 것 같은 "시계 태엽" 이라는 말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사전 정보를 얻지 않고 바로 읽어 버린 것은 제목에서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난 지금 그 변화를 단어로 바꾸면 이렇다.

"당황"->"거북함"->"거부감"-"궁금"-"동정"-"냉정"

 

 

1. 당황

소설이 아무리 가짜 이야기라고 하지만 책을 붙잡고 읽는 순간부터  독자는 소설의 인물을 종이 위에 그려진 허구로 생각할 수 없다. 소설 속 인물을 진짜 사람으로 상정하고 나서야  소설 속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독자로서는 주인공의 나이도 의식하고 그가 사는 환경도 가늠해가면서 소설 속 인물들을 만난다.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 속에서  인간의 진실을 추구하려는 독자는 그러므로 소설을 읽으며 이건 가짜 이야기야 라고 자기를 깨우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랬으므로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 알렉스를 만나면서 무척이나 당황했다.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사춘기 소년의 폭발하는 에너지 때문일 거라고 나를 달래봐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점점 강도를 더해가는 그의 폭력적인 면은 골목에서 잘못 걸린 깡패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어찌할 바를 모르게 했다.

 

2. 거북함

그런데 이 소년은 베에토벤을 좋아한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매니아적인 면까지 있었는데, 음악이 이 소년에게 불러일으키는 정서는 괴이쩍었다. 음악은 예술, 예술은 인간 정신의 고아한 경지로의 초대, 등의 도식으로 머리 속이 정리되어 있는 나에게 음악에 매혹된 알렉스의 정서는 낯설다 못해 거북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어떤 상태, 그것은 꼭 존재 자체의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믿어져 온 악마를 느끼게 하였다. 그저 폭력적인 성향의 소년이었다면 그런가보다 했을 것인데  음악에 매료되기도 하다니 아름다운 처녀를 삼키며 껄껄 웃는 악마의 이미지를 이 소년에게서 보았다면 너무 지나칠까.

 

3. 거부감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더 읽고 싶지 않았다. 소설가의 집에 들어가 소설가를 묶어 놓고 윤간을 하던 대목에서는 욕지기가  확 올라왔다. 대개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화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데, 이 책은 그럴 기미도 주지 않았고, 소설가의 집에서 일어나던 장면은 되새겨볼수록 끔찍했다. 그 끔찍함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화자,  이런 끔찍함이 얼마나 더 나올까, 게다가 이 소년은 고양이와 함께 사는 노인의 집에까지 찾아가 앞에서 썼던 방법을 또 써 보는 것이다. 그만 읽을까!

 

4. 궁금

그랬는데 이제 장면이 바뀌었다. 소년은 수감되었고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다소 안심했다.

<시계태엽오렌지> 라는 말은 앞의 장면에 나왔던 소설가가 쓰던 소설의 제목이었는데, 이 책 전체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조금씩 마음을 풀고 소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신부님이 나오고, 내무부장관이 나오고, 어떤 실험이 나오고. 그러면서 소설은 뭔가 꿍꿍이가 다른 데 있다는 암시를 한다. 

화자는 이제 힘이 약해졌고 독자는 이 이야기가 소설가가 꾸며놓은 이야기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소설가는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그게 궁금해졌으니까 소설은 계속 독자의 등을 밀고 독자는 소설의 뒷꽁무니를 따라 간다.

 

5. 동정

화자는 이제 더 이상 폭력자가 아니다. 그는 어떤 실험에 의해  정책의 성공적인 모델이 되었다. 그에게 가해지는 실험은 다소 억지스럽지만, 그로 인해 전에는 없던 눈물, 슬픔,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으니 인간적으로 그는 좋은 변화를 맞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스무살이 안 된 이 소년이 가엾어진다.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폭력적이었던 것은 가정 내부의 문제는 아니었을지, 유년기에 겪은 트라우마 같은 게 있지나 않은지 추측해본다. 그러나 소설은 그쪽으로 가서 소년을 이해시키는 쪽엔 관심이 없다. 소설은 소년이 겪고 있는 현재의 치료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그걸 어떻게 이겨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소년이 겪는 치료과정은 좀 지나친 점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독자는 악마와 같았던 소년에게 마음을 열어 준다. 아주 조금.

 

 

6. 냉정, 그리고 나의 냉담

소년은 치료 되었고, 사회로 복귀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간 그를 가족은 따뜻하게 맞을 수 없다. 맞을 준비가 안 된 가정에서 그는 나온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소년이 되었다. 이전에는 가족을 마음대로 부리던 소년이었는데, 이제는 가족의 눈치를 보고 제 발로 걸어나온다. 몸도 약해지고 마음도 약해진 소년이 집을 나와 불쌍한 가출 소년이 되었다.

그런데 소년은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된다. 이전에 자기가 끔찍한 사건을 일으켰던 집이다. ( 이 부분은 작위적이어서 소설은 가짜 이야기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나 소년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집주인은 그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소년은 뇌를 다치게 되었고 그 사건은 정치적인 문제로 변화된다. 그를 교화 시켰다는 권력은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변한 것은 정치적인 것만도 아니었다. 교화 되었다던 소년의 뇌도 예전의 폭력성이 돌아와 버린 것이다. 소년은 다시 옛친구를 찾고, 거리의 소년이 되어 자기의 자리를 찾으려 한다.

비난 받았던 정치권력도 자기 자리를 찾으려 모색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소년을 이용한다. 소년에게 가했던 실험이 올바른 것이었음을 매스미디어를 통해 알리고 자신들의 정책이 옳았다고 선동한다. 소년의 정체를 알고 분노하던 소설가는 다시 힘을 잃게 되고, 사회 전복을 꿈꾸는 무리의 일파로 구속된다. 소년의 깡패 친구는 경찰이 되고, 그런 경찰들 때문에 범죄율은 약간 감소세를 보이지만 실상은 더 큰 범죄 사회가 된 것을  애매한 숫자로 덮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힘이 센 쪽으로 선동되기 쉽다. 권력은 소년을 이용해 반대 세력을 보기 좋게 꺽었고, 정의의 이름으로 정의를 짓밟는다. 그게 그들의 옮음이다.

 

책 번역자는 <시계태엽 오렌지> 에서 " 시계태엽"의 의미를 부각시켜 소설을 해석했는데 인간의 자유의지에 반하는 외부적인 조작이 추악함을 이 소설이 말하고자 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나는 인간의 자유의지 라는 것에 그다지 가치를 둘 수가 없다. 소설 말미에 소년이 아기를 가지고 싶다며 부드러운 것, 포근한 것으로 마음이 바뀐 일을 두고 자유 의지에 대한 가치를 옹호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소년이  지난 시간에 저지른 행동 또한 자유의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윤간을 하면서 양심적인 가책을 받지 않는 마음이나 귀여운 아기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이나 한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의 변화가 보다 나은 쪽으로 뻗었다고 해서 이전의 행동이나 마음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인간으로 사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인간으로 사는 일의 어려움이 과거의 잘못을 두고 평생 아프는 양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사람으로서의 고유한 가치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는 악랄하기까지 했던 소년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성장을 하였고 그 성장은 권력의 조작이 아니라 소년의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난 것이라는 점에서 인간성을 옹호하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착한 인간>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처럼 <착한 인간>이 되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작가가 인간성에 대한 옹호를 한 데는 정치와 권력에 대한 비판이 짙게 깔려 있었고, 어쩌면 그 비판을 위해 주인공 소년과 같은 인물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정치권력조차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에 그 힘을 무기로 써서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실상 어떤 것이냐를 보여주면서 그렇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성정을 타자가 아니라 스스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알렉스의 변화가 참으로 고귀한 변화라거나 인간 본연의 마음을 회복했다며 주인공을 옹호해 줄 수 없었다. 그러기엔 그가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이 내 기억에  크게 자리잡았고, 그로 인해 지금 보이는 변화에 대해서 낙관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더 크게 깨달은 것은 나라는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별로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사람에 대한 편견이 큰 사람이며, 누군가 언제 무엇을 잘못하였는지를 쉽게 잊지 않는 사람이며, 한 번 마음에 안 든 상대를 결코 다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이며, 이러한 내 성격은 지금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어쩌면 타고난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알렉스가 조금 변한 그 상황을 보고 "인간성에 대한 희망" 이라며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다. 나로서는  "인간성에 대한 소망"은 가질 수 있으다. 그러나 나는 "사람은 변할 것 같아도 안 변한다" 고 믿고 있으며 그래서 이 세상은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는데, 어떤 사람에게 나쁜 사람은 그 인생 끝날 때까지 나쁜 사람일 수가 많고, 어떤 사람에게 좋은 사람은 또 그렇게 된다, 는 생각을 한다.

어느 새 나도 내 인간성을 변하게 하기에는 좀 낡아져 버렸고, 마음도 딱딱하고 단단해져서 작가의 희망 또는 소망에 별로 부응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2011년 3월 12일 토요일 새벽에 쓴다)

-문서분량: 200자 원고지 27. 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