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자몽책방

세계를 뒤흔든 공산당 선언- 2011년의 책읽기(11)

자몽미소 2011. 3. 21. 17:47

◑책을 읽고 내 생각

 

1. <선언>의 전후


2000년 전의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와 보시면 지구 땅 곳곳에 세워진 교회와 열렬 신자들을 보시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실까, 게다가 우리나라 기독교를 보신다면, 또한 이 나라의 통치자가 그를 신앙하는 사람인 것을 보시고, 그의 신앙 간증이라도 들으시면 독실한 신앙심에 기뻐하실까.

엉뚱하게도 예수님과 기독교 신자 이명박을 묶어 생각한 것은 <세계를 뒤흔든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서였다. <선언>을 발표한 후 여기 저기서 맑스주의 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다양한 주장이 일어나자  맑스가 엥겔스에게 했던 농담 “ 그런 것을 맑스주의라고 하면 나는 맑스주의가 아니라네” 라는 표현을  예수님께서도 오늘날의 세상을 보시고 똑같이 하시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이런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가 예수의 교회라고 하면 나는 예수가 아니라네!”


영화 <웨이백- Way back>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탈출했던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시베리아 수용소로 끌려온 사람들은 소련의 입장에서 공산주의 활동에 방해가 된다거나 의심되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겪은 참상은 영화에서 보는 것 이상이었겠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떠오른 생각은 소련이라는 나라를 만들었던 공산주의, 공산주의를 배태했던 맑스의 사상이 없었다면, 그래서 공산주의의 망령이 세계를 휩쓸지 않았다면, 이 세계는 덜 폭력적이고 사람들은 권력의 횡포에 덜 시달리지 않았을까 하는 거였다.

 

영화를 보고 오면서 맑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도록 권한 이에게 20 세기에 일어났던 두 차례의 전쟁과 미국과 소련으로 갈린 냉전 마저도 혁명을 선동하던 맑스 때문이 아니었느냐는 질문을 하였는데, 그의 대답은 “맑스와 엥겔스”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그 시대를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즉 “맑스와 엥겔스” 개인의 돌출이 아니라, 시대가 맑스와 엥겔스로 하여금 <공산당 선언>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가 살았던 시대는 어떠했던가, 그래서 잡아든 이 책은 어떻게 해서 맑스와 엥겔스가 유럽의 유령이라고 표현했던 공산주의를 위해 이 유명한 선언을 하게 되었는지, 아울러 그 선언 이후 세계는 어떻게 반응하였고, 어떤 사람들에 의해 <선언>이 활용되거나 오용 되었는지를 보여 주면서, <공산당 선언>의 의미를 되짚어 주었다.

 

<공산당 선언>의 전후를 살뜰하게 살펴준 저자 덕분에 어렴풋이나마 봉건제를 거쳐 산업화 시대로 넘어오던 때의 유럽의 역사를 더듬었고, 프랑스와 독일, 영국에서의 각각 다른 혁명의 모양을 보았으며, 그 과정에 맑스와 엥겔스 두 작자가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시련을 겪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가 살아있던 동안은 세상을 향해 외쳐대었던 맑스의 선언이, "선언"이 지향하는 쪽으로 확 불길을 몰아가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엥겔스의 말을 빌린다면 "선언"은 “망각의 늪으로 가라앉을 운명”을 겪었던 것이다.

맑스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세상사람들이 차용하는 맑스주의가 자신이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다고 이야기 했는데, 이후 <공산단 선언>은 맑스와 엥겔스의 사후에 공산주의를 이용해 권력을 만들었던 이들에 의해 더욱 더 맑스의 생각과는 멀어져 버렸다. 부르조아를 타파하고, 노동자가 만들어가는 세상을 만들자던 맑스의 선언은, 앞 뒤의 맥락을 빼고, 노동자를 이용하여 권력을 움켜잡는 사람들에게 이용되었던 것이다. 또한 겉으로나마 맑스주의를 표방했던 공산진영의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 영입은 맑스가원래 타도하려했던 부르조아에게도 돌아가는 꼴이 되어 버렸다. 맑스는 죽었다, 고 까지 이야기 되는 지금.

그러나, 맑스의 사상은 지금에 이르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1968년의 혁명은 실패했지만, 실패한 혁명이 남긴 교훈은 컸다.  맑스 시대에 대표되던 노동자의 자리에는 여성과 어린이, 인종과 동성애자들이 들어서고, 그들에 대한 핍박 철폐와 권리 옹호 등으로 폭을 넓혀 맑스의 사상이 차용되고 있는 것이다. 즉 맑스가 선언으로 물꼬를 튼 이래 150 년이 흐르는 동안 "맑스의 강"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와 가치의 문제까지 심사숙고하기에 이른 것이다.


2. 사람


맑스는 생의 대부분을 가난 속에서 보내며 가족을 살리느라 애를 썼고, 어쩌다 돈이 생겨도 시급한 문제를 처리하기 보다는 책이나 공연 같은 문화를 향유하는 데 다 썼다. 맑스 일가가 겪었던 궁핍과 혼란은 결국 가족 모두의 건강을 해치게 되고, 맑스는 평생 종기를 고통으로 안고 살았다. ( 책 32 쪽 인용)

또한 맑스는 대개 친구들과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버리기 일쑤이고 종종 값비싼 중상모략 소송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엥겔스는 아주 달랐다. 재정적 안정과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여러 관심사들을 추구했다. 자녀 없는 독신으로 살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정식 일자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상당 분량의 저서와 편지, 기사 등을 썼고, 겉으로는 영국 신사인양 살면서 적진 깊숙이 침투한 밀정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이 둘은 훌륭한 동료이자 친구였다. 엥겔스는 둘이 만난 직후부터 맑스에게 돈을 보내기 시작했고 맑스가 저술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물질적으로 돕는 게 역사가 자신에게 부여한 임무라고 생각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서로를 완벽히 보완해 주었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 이후 자본주의의 생산과정을 분석하는 <자본>의 집필에 몰두하게 되는데,  맑스는 “ 돈이 이렇게 궁한 상태에서 ‘돈’에 관한 책을 쓴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다 ”할 정도로 궁핍하였지만, 엥겔스는 그가 죽을 때까지 경제적 지원을 끊지 않았고, 맑스가 미처 다 쓰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자, 맑스의 노트를 참고로 해서 <자본>을 완성하고 맑스 사후 10년 만에 암으로 사망하였다.


엥겔스는 맑스의 장례식에서 맑스가 인간 역사의 과학적 법칙을 발견하였으며 맑스의 업적은 다윈이 생물학에서 열어제친 새로운 지평과 비견될 만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또한 엥겔스가 없었다면 해내지 못할 일이었다. 엥겔스라는 후원자가 없었더라면 맑스는 대영도서관의 열람실(자본을 집필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생업”에 종사해야 했을 것이라는 건, 맑스 자신도 인정했던 일이다.

  

3. 꿈


공산당 선언이 세계를 뒤흔든 것이라고 표현한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보일은 책의 말미에 중요한 것은 제대로 꿈을 꾸는 것이라고 하였다. <공산당 선언>의 불완전함에 미리 실망하지 말고, 꿈과 삶 사이의 연결을 놓치지 않으면서 꿈을 꾸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선언> 이후 150 년 후의 세상에 사는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노동자도 아니니 프로레타리아트도 아니고,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본가는 더욱더 아닌 이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가. 책을 덮으며 드는 생각이다.


나는 세상의 불공평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혁명이나 전복이라는 말에는 두려움을 갖는 소시민이며, 세상의 자질구레하고 힘없는 것들에는 화를 내면서 보다 더 큰 굴레는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쌍용 자동차의 노동자들이며 용산 주민들의 일에 대해서도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낙심을 했고, 이런 포기에 너무 오래 길들여진 탓인지 희망이라는 말, 연대라는 말에선 착한 것들이 만들어 내는 남루함마저 느껴져 우선 그곳을 피하려 든다. 내가 할 수 없으니 외면하면서 그것들의 가치조차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다. 내 삶의 대부분을 오늘과 내일의 안위를 위해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할 뿐, 나를 너머선 무엇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가난한 삶 속에서도 이 세상의 부조리에 눈 감지 않았던 맑스를 읽으며, 물질적 낭비마저 서슴치 않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는 그래서 세상에서 쓸 무엇인가도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으니, 지금으로서는 자본주의의 물결에 정신없이 휩쓸려 가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맑스와 엥겔스처럼 이 세계의 불합리를 타파하는 혁명을 꿈꾸지는 못해도, 뭔가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사회의 이익과 연결되도록 하는 꿈은 붙잡고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2011년 3월 21일 읽음.

원고지 1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