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2024년 日記帳

글잉걸 10:마음회복과 고양이 복복이

자몽미소 2024. 4. 19. 11:15

글잉걸 7-회복과 복복이
 
“반대쪽을 봐봐, 너무 돌렸어. 조금 이쪽으로!”
“에휴, 대강 해!”
“엄마, 머리핀을 빼 봐봐!”
엄마라고 불린 여자가 단발머리에 꽂았던 핀을 빼며 손빗질을 한다.
“주름살 그만 찍어!”
“아냐,아냐, 엄마 예뻐!”
“너도 내 나이 되어 봐, 사진 찍기 싫어!”
 
제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 줄을 선 사람들 속에서 나는 모녀의 바로 뒤에 서 있다. 내 바로 앞에서 스마트폰을 든 여자는 옆모습만 보이지만 카메라에 찍히기 위해 딸과 마주한 여자와 닮아있는 걸 알겠다. 자그마한 키만이 아니라 얼굴형의 인상 같은 게.
비행기 탑승이 시작되었다.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기 전 탑승용 복도에서도 딸은 엄마를 불러세운다. 제주로 타고 갈 비행기를 배경으로 넣고 사진을 찍으려는 모양이다. 엄마는 귀찮아하면서도 딸의 카메라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딸을 본다. 딸의 입에서는 연신 엄마 예뻐! 라는 말이 떨어진다. 딸이 엄마이고 엄마가 딸인 것 같은 풍경에 후훗 웃음이 난다. 못 견디게 귀여운 딸을 데리고 여행을 가는 여느 젊은 엄마처럼 젊은 딸은 늙은 엄마를 세워 추억을 찍는다. 아마도 저 딸이 어렸을 때, 저 엄마가 그랬을 것이다. 딸은 자신이 어렸을 때, 젊은 엄마가 어린 딸에게 하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일 거다. 딸이 태어난 이후 엄마 속에 있던 사랑이 딸이 성인으로 자란 이후에도 딸의 마음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의심 없이.
 
너무나 당연한 것을, 당연하니까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 자리를 찾아간다.
나는 딸을 만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 있다. 나는 이 비행기가 추락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추락 후에 내가 구해질지 그대로 죽을지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행기 사고는 뉴스에서 자주 보았고, 내가 탄 이 비행기만이 그 사고에서 예외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도 나는 비행기에 앉아 있다. 이동을 위해서 비행기를 이용한 이후로 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내가 탄 비행기의 안전 운행을 기원하며 아주 짧은 기도를 한다. 그리고 목적지에 당도하면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잠시 한다. 비행기의 사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비행기를 믿기 때문에 탄다. 걸어서라면 몇 달을 걸려도 닿지 못할 거리를 한 시간 내외로 옮겨주는 이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며, 나는 하늘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일을 한다. 구름 위의 장소까지 올라갔다가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 기적과 같은 일을 비행기를 타면서 겪고 있고, 이 경험은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듭할 수 있었다. 나는 여행을 가고 싶어 하고, 여행을 하기 위해선 비행기를 이용해야 할 터인데 비행기가 나를 안전하게 데려다줄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린다면, 나는 여행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비행기의 사고를 직접 겪지 않았기에 어떤 기계가 하늘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이동방식에 두려움이 없는 것이고, 앞으로도 나는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언제 죽을지 궁금한 것, 타인의 속마음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 어리석음의 소용돌이에 내가 갇히기도 한다. 헤어지고 25년을 다른 곳에서 살았던 나와 딸은 가끔 의심의 블랙홀에서 허우적댄다. 2012년에 만난 이래, 우리는 서로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싶어 했고, 그 마음 때문에 자주 울었다. 엄마가 딸을 사랑하는 것, 딸이 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당연한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을 때 저 마음은 사방이 암흑이고, 이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라며 서로 손을 잡고 마주 보았다가도 또다시 돌부리에 넘어졌다. 우리의 길은 어둠 속에서 멈추곤 했다.
 
딸은 고양이를 키운다. 하얀 털이 길고 양쪽 눈은 색이 다른 보석 알 같이 투명하다. 이름은 복복이. 딸이 고양이를 입양했다고 했을 때, 나는 몇 달이고 딸네 집에 가지 못했다. 고양이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동네에는 쥐를 잡으라고 놓아 키우던 고양이들이 있었지만 빨랫줄에 널어놓은 제수용 옥돔을 먹어 버리는 일이 많아 도둑고양이라고 불렸다. 동네 약방 할아버지 집에도 고양이가 있었는데, 나는 그 고양이가 야옹!하며 나를 볼 때의 눈빛에 놀라곤 해서 약을 사오라는 심부름이 더 하기 싫었다. 그 즈음의 우리 아이들에게 고양이는 요물, 저주의 화신이 되었다. 귀신 이야기와 더불어 고양이가 등장하는 옛이야기 때문에 무서움이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의 배경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된 후에도 우리가 살던 연립주택 지하에서 고양이가 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아효 깜짝이야! 이렇게 내뱉고 나면 고양이가 뚫어져라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고양이의 눈을 못 본 척 외면하고 내 갈 길을 갔다. 그 고양이는 배가 고팠거나 혹시나 자기 새끼들에게 관심을 나눠줄 사람동물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사람인가 알아보던 중이었을까. 고양이를 볼 때마다 놀라는 나는 고양이를 귀여워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람을 보면 재빠르게 도망가 버리고, 어쩌다는 노려보는 듯한 눈을 가진 고양이의 어디를 보고 사랑스럽다고 하는 건가. 그런데 딸이 사랑스런 아기처럼 고양이를 대하는 걸 보니 어쩐담. 나는 외손주를 본 것처럼 반가워야 할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딸이 키우는 고양이, 복복이를 만난 지도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자주 가지는 않아 아주 친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딸네 집에 갈 때마다 복복이와 나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이번에는 내가 자는 잠자리 옆에까지 왔고 손을 내밀면 코를 킁킁대고 혀로 핥았다. 사위는 복복이가 진짜 집사인 딸과 나를 구분하지 못해서 저러는 거라고도 했다. 나는 이번에 복복이의 눈빛에서 순한 아기를 보았는데, 얘가 사람이 아니고 고양이지? 라는 생각은 전혀 못하고 “할머니야 이리 와!” 라며 복복이를 불렀다.
 
복복이가 식탁 아래 내 발 냄새를 맡다가 거실에 드러누웠다가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커피잔을 가운데 두고 딸과 마주했다. 딸네 집에는 2년 만에 오는 것이고, 직접 만나는 것은 1년 만이다. 그 사이 딸은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느라 힘껏 공부를 했고, 목적하는 바 대로 성과를 이루었다. 그런 과정을 전화로 듣고 알았고 결과에 축하했다. 그렇지만, 딸은 나에게 그간의 일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딸이 말하는 엄마라는 사람이,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기억에 없는 내가 딸의 기억 속에 있었다.
관계에서 상처가 있다면 상처 많은 쪽이 사랑이 더 많은 것이다, 라고 최근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엄마의 마음을 잘 알 수 없어서 가슴이 아팠노라는 딸의 말을 들었다. 동그랗고 맑은 눈이 붉어지다가  눈물이 또로록 떨어졌다. 해가 좋은 거실에서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던 복복이가 우리가 앉아 있던 식탁 아래로 오더니 내 발아래서 코를 킁킁거렸다.
딸은 눈물을 닦았고 복복이는 내 몸의 냄새를 제 몸으로 옮기고 있었다.
 
(2024년 4월 19일 아침 11시 11분, 김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