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2024년 日記帳

글잉걸 11:자몽책방의 오전루틴

자몽미소 2024. 4. 21. 09:40

 

오전 루틴
 
책상에 앉는 시간 지키기
 
TV에서 문제가 많은 부부를 보았다. 남편은 알콜중독자, 사업에 실패하였고 술을 많이 마신다. 남편은 술로 도망가고 잘 씻지도 않는다. 그 남편을 돌보느라 아내는 진이 다 빠져 있는데, 본인은 자기가 힘든 줄을 잘 모른다. 힘들다고 느끼긴 하지만 같이 사는 동생이 자기 보다 힘들고, 알콜중독이 된 남편도 더 힘들 것이라고 여긴다. 본인이 불쌍한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 더 불쌍한 사람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 부부를 상담한 전문가는 남편의 알콜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남편에게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 남자가 변하더라도 아내는 남편 못지않게 중독 상태인 게 문제였다. 상담 전문가는 여자에게 자신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못한다. 무엇이 자기를 기쁘게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도록 그녀는 주위 사람들을 돌보는 데 에너지를 다 쏟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런 식의 돌봄이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전문가는 이 부부의 상태를 냉정하게 진단한다. 남편은 물론 아내도 바뀌지 않는다면 이 부부의 끝은 이혼이 될 것이며, 아내가 행여 이혼을 해서 다른 남자를 만나더라도 전남편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새 남자도 전남편과 비슷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했다.  이 여자의 특성이 남자의 좋지 않은 면을 키운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 좋아하는 것, 기쁘게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라고 하였지만 얼른 대답하지 못한다. 남들이 편안하면 나도 좋아요, 라는 식이다. 남편이 술을 안 마시면, 여동생이 우울하지 않으면 그것만으로 나는 좋아요, 라고 했다. 전문가는 여자에게 우선 자기 자신이 잘 세워져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말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여자는 누군가를 돌보지 않는 자기 자신을 상상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는데,  돌봄에 의존해서 자기를 잃어버리는 세월이 오래 되었다. 남편의 알콜중독처럼 여자에게는 돌봄중독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돌봄중독은 돌봄의존증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는 의미를, 삶의 기쁨을 자기 자신에서 찾지 않고 자식과 가족에게서 찾느라 자기 삶은 없어져 버린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 인고와 인내를 어머니나 아내의 아름다움으로 미화해 온 우리 문화에서는 아낌없이 주는 것을 최고의 사랑이라고 여겨왔다. 착한 여자라는 그물에 칭칭 감겨,  자기를 잃어버린 여자들은 결국 어떻게 자기를 일으켜 세울지를 모른 채 인생의 종지부를 찍는다.
짧게 본 영상이었지만 기억에 남을 사례였다.   
 
자몽책방이라고 명명한 내 공부방 앞에 딸이 만들어준 전등을 놓았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는 문장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봄의 계절에 내 나이 60이 봄이 아닐 이유도 없지 않은가.
 
아침에 책상에 앉기 루틴을 잘 이어나가고 있다.
며칠 빠질 때도 있었지만, 운동도 글쓰기도 이어나가고 있다. 
헬스장에서 움직이고 샤워를 했을 때의 상쾌함, 어떻게든 자판 위에 손을 올리면 글자들이 줄줄 나와서 그걸 정리하고 났을 때의 안정감도 좋다. 나는 이 두 가지를 계속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전의 루틴으로 이 두 가지는 <즐거운 일의 카테고리>로 넘어가고 있다.
 
오늘은 여기에 일본 출판사에서 온 교정원고를 읽기로 한다. 집중해서 할 일이다. 집중해야만 될 일이다.
주말이므로  아들이 아기 보러 오지 않을 거냐고  물어왔지만, 주말 동안 이 일을 해야 해서 가지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예전의 나답지 않은 태도이다. 몇 주 전만 하더라도 나는 손자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으므로 아들이 요청도 하기 전에 아기를 보러 달려갔다. 바라는지 어떤지도 모르면서 아들내외에게 뭘 해주면 좋을까 궁리하곤 했다. 맛있는 게 보이면  사서 가져다주고 싶었다. 순전히 내 마음이 그랬고 요청을 받은 건 아니었다.

올해 초에 이제부터는 내 글을 써보겠다고 여러 사람앞에서 말을 했지만 손자가 태어나자 손자와 며느리를 돌보는 일이 가장 최우선의 내 일처럼 생각되었다. 글쓰기는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려던 일이나 바라는 일을 생각하지 않았고, 손자돌보기를 하려고  준비완료된 상태로 있었다. 나를 부르기를 스탠바이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최근 나는 좀 변하고 있다.  몇 가지 일을 겪었고 심하게 혼란스럽던 마음을 정돈한 후라 손자를 보러가는 기쁨을 조금은 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할 일을 먼저 하겠으며, 내게 기쁨이 되는 나만의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변하고 있다. 손자돌보기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잊었다. 손자는 아들 내외가 잘 돌보고 있다. 손자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해주기로 한 것들을 챙겨야 한다. 내 힘으로 <나 돌보기>를 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으려 이기적인 나를 늘 경계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게 내가 할 일을 뒷전으로 두고, 나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채 이타적인 사람이 되서는 안 될 것이다.
오전의 루틴은 이 봄에 나에게 새로이 도전하도록 해 준 학교나 마찬가지다. 학교에는 개근을 해야지. 학생들도 학교는 다녀오고 나서 방과후 시간을 갖는다. 자,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했으니까 , 자 오늘은  교정원고에 눈과 마음을 두자. 정성껏 해야 할 일이므로.

(2024년 4월 21일, 오전 9시 37분, 김미정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