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2024년 日記帳

글잉걸13:모르는 여자의 사랑고백

자몽미소 2024. 4. 23. 10:39

모르는 여자의 편지

 
어느 시인의 고백을 들었다. 그녀는 오래 사랑을 앓아왔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듣기 위해 남편과 함께 간 자리에서, 나는 그녀의 애정 상대가 내 남편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 자리가 불편한지 돌아가려 했지만, 오랫동안 교류하던 시인의 말은 끝이 없었고, 나는 가슴이 아픈 그녀의 말을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남편이 내가 아는 여자와 바람이 났는데, 나는 화도 안 나고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나도 내 마음도 아니고, 사랑을 잃은 시인이었고, 시인이 겪는 아픔이었다.
이야기의 끝에 시인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는 이미 죽었다며 그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는 내가 사는 섬의 정치인이었다.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지 여기는데 마루 건너에 내 남편이라고 생각되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자 나는 이게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다. 그는 젊은 남자였고,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나의 남편이라고 생각되는 남자와 나는 젊은 연인들처럼 서로를 뜨겁게 바라보았다.
 
이 꿈 같은 현실에서 정신을 차려보자는 마음이 들었을 때, 나는 시인이 아닌 또 다른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자신을 여배우라고 밝인 그녀는 오스트리아에 살던 어느 여자가  평생을 걸쳐 사랑하였던 남자에게 쓴 편지를 읽어주고 있었다. 편지에서 여자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배우의 목소리가 절절했다. 제주도에 사는 시인이 제주도의 정치인과 겪은 사랑앓이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태어난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와 이어져 있었고, 나는 처음 보는 남자를 남편으로 여겨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나는 제주도의 사랑 이야기에서 여배우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로 건너오면서, 살짝 눈을 떴던 것 같다. 스마트폰이 보이고 창밖이 희끄무레 밝아지고 있었다. 오늘 새벽에 거실로 나와 유트브의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쇼파에 누웠던 걸 기억했다. 나는 또 남편이 내는 오디오가 빠드득 빠드득 이빨을 가는 소리여서 이게 귀에 붙어 버린 후 잠이 달아나던 것도 기억했다.
늙은 여자와 남자들이 파릇한 연애를 할 수도 있는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니었음을 자각하자, 현실의 몸이 신호를 보내왔다. 천근만근 무겁다, 아프다, 오늘 또 시작이 안 좋네, 라는 판단이 따라왔다. 이미 나의 새로운 연인은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고 안방 침대에서 남편은 자신이 저지른 일은 아랑곳없이 푸근하게 잠을 누리고 있을 거였다. 유트브의 오디오 북은 안 틀면 그만이지만 내 침대의 오디오는  실시간생방송으로 볼륨조절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내 잠의 확실한 적이다.
그러나, 나는 침대에서 쫓겨났음에도 거실로 잠자리를 옮기고 생판 모르는 남자를 애인으로 만나는 것이니, 이빨 소리 오디오와 그 장비의 주인을 구박할 일은 아니겠다. 갱년기 이후 메말랐던 가슴에 아직 심쿵하는 호르몬이 남아있다는 게 어디냐, 꿈에서라도.
 
어쨌거나 잠을 잘 자지 못한 날의 아침에는 운동하러 가는 게 전혀 즐거운 일이 못 되므로 오전 루틴 중 헬스장 가기를 뺐다. 아니다, 오후에 가자고 남편과 합의했으니까, 오늘 안에 숙제 같아진 운동을 하긴 할 거다.
잠이 나빠진 날은 운동과도 사이가 나빠진다, 는 내 몸의 공식을 또다시 확인하는 날이다.
 
그래도 책상에는 앉았다. 며칠 사이에 해야 할 일이 눈앞에 닥치고 보니 내가 조금 급해졌다. 새벽에 잠이 편안치 않았던 것은 머릿속으로 돌아다니는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잡다한 생각을 비우자는 생각마저 들어와서 편안히 잠들지 못했다. 게다가 오늘 새벽, 1시간이 넘게 책을 읽어주는 오디오북은 수면을 더욱더 방해하는 거였다. 나는 잠을 잘 자야, 낮에 사람 꼴을 할 수 있으니, 잊지 말아요. 여배우의 책방이라는 오디오북, 고맙지만 미안해요. 제 책장에도 그 책이 있네요. 제가 직접 읽어볼게요.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일을 마치고 나서요.
 
이제부터 교정 원고를 읽을 것이다. 번역 후 수정하면서 이미 여러 번 읽은 원고라 고칠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교정지로 와서 읽으니 바꾸어야 할 것들이 보인다. 일을 앞에 두고 긴장하고 있다. 이 긴장은 일에 집중이 덜 되어 생긴 것이다. 일에 제대로 빠지고 나면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질 것이다.
 
(2024년 4월 23일, 화요일 오전 10시 09분, 김미정 메모, 200자 원고 1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