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夢のノート(공책)/2024년 日記帳

글잉걸14: 책과 육아, 내게 좋은 일

자몽미소 2024. 4. 24. 10:31

책과 육아, 내게 좋은 일
 
며칠 동안 교정 원고를 읽고 있습니다. 제가 일본어로 번역한 책의 원고입니다. 제 손으로 자판을 두드려 넣은 글자들이지만 책으로 나올 것이다 보니 독서할 때와 다른 읽기가 필요해요. 어제는 일본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5월까지 일본어 확인을 마치고 책은 7월 말에 간행 예정이라고 합니다. 책이 나오기까지는 저자, 번역자, 편집자의 눈이 여러 차례 원고에 닿을 거예요. 독자에게 책으로 내놓기 전에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확인해야 하니까요. 여러 번 확인을 거쳐서 더는 문제가 안 보였다고 해도 책이 되어 나온 후에 오자와 탈자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이번 책은 번역서이다 보니 저로서는 번역한 문장에 자신 없는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오늘 다시 책상에 앉았어요. 일에 들어가기 전에 책이 나에게 무언가, 잠깐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제가 대표인 당산서원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4권이니까, 그 책에 들인 시간은 꽤 됩니다. 출판사를 하기 이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제 이름과 남편 이름으로 나온 책들도 있으니까 저와 남편이 책에 들이는 시간은 더 많았죠.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나서도 저자로서 또는 저자의 편집자로서 고치고, 또 고치며 시간을 많이 들였어요. 남편이 내는 책을 위해 연구 조수 역할을 자처한 게 2006년부터예요. 그 후 남편이 인터뷰한 걸 원고로 만들거나 남편이 쓴 원고에 문장 교정을 하는 편집을 도맡아 하였어요. 그때는 집에서도 했지만 노트북 들고 여기저기 동네 카페 다녔지요. 그 작업 끝에 남편의 이름으로 된 책과 공동저자로 책이 나온 게 2013년이던 11년 전이고요.
2015년 봄과 여름에는 서울의 한 출판사에서 외주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일본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인데, 원 번역자의 한국어 문장을 다듬는 일이었죠. 그 다듬는 과정은 제가 그 책을 번역하는 것만큼이나 시간과 애정이 필요했어요. 이전 책에서 편집일을 했다고는 했지만 남편의 책 원고를 보는 거라서 누가 돈을 주는 일은 아니었는데, 이 아르바이트에서는 돈을 받았어요. 원고지 한 장당 얼마 하는 식이었어요. 한 권을 마치니 두 번째의 책도 의뢰를 받아 교정교열 일을 하게 되었어요. 돈을 받고 그 일에 들어간 시간만 대략 계산해 보니, 사실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훨씬 밑돌았어요. 내 시간과 그게 필요한 어학 능력은 그때 처음으로 금전으로 환원되었어요. 그때 최저 임금은 4000원 정도 였는데요, 시급 4000원도 안 된 그 일이 저에겐 경험을 산 것이기도 했고.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두 권의 책을 몇 달에 걸쳐서 교정했는데 받은 돈은 140만원 정도였어요. 저는 그 돈이 40대 초반에 교사 일을 그만 둔 뒤 처음 벌어보는 돈이었어요. 액수보다는 돈을 벌었다는 게 기분이 좋았어요. 돈이 다 같지, 그 돈이 다 그 돈이지 할 수 있지만, 그때 번 돈은 살림에만 써버리고 싶지 않을 만큼 소중했어요.
그해 말에  딸을 만나러 갔다가  조금 더 보태 200만 원을 채우고 딸에게 선물했어요.  딸이 마침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간다고 하더라구요. 지난 몇 달간 눈 비비며 교정일을 했는데, 그게 책이 되어 나와서 기쁜 것보다는 돈이 되었고 그 돈을 딸에게 줄 수 있어 무척 행복했어요. 겨우 200만원, 액수로 치면 큰돈이 아닌데 제가 벌어서 주는 돈이어서 정말 좋았어요. 딸이 제가 없는 곳에서 자라는 동안 제가 벌어서 옷을 해 입히고, 밥을 먹이고, 공책을 사주고 가방을 사주지 못했잖아요. 그 돈과 아이에게 들어간 교육비를 비교한다면 어림도 없지만요, 제 딸이 돌이었을 때 돌사진을 찍기 위해 100원씩, 천원씩 모아 두었던 돈처럼요, 몇 푼이 되지는 않지만 그때 그 상황에서는 최선의 돈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 해의 책 교정 아르바이트는 돈이 되었던 일이라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어요. 하지만 세 번째 책을 의뢰받았을 때는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들어가는 시간이 너무 많았고,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남는다는 생각까지 들었거든요.
그 잠깐의 출판사 경험으로 다음 해에 출판사 사업자등록을 했어요. 이때부터 저는 사업자로서 출판일을 하게 되었어요. 결론만 말씀드리면, 제 출판사의 재정은 여전히마이너스 상태에요. 4권의 책을 내는 동안 우수출판물이나 세종도서로 선정되어서 정부 지원금이랄까, 보조금을 받았는데도 그래요. 출판사 창고에는 아직 팔리지 않은 책이 쌓여 있고요.
그런데도 저는 올해 다시 남편의 연구서를 출간할 준비를 다시 하고 있어요. 5년 전에 출간했던 책은 일본에서 번역출판도 하게 될 거고요. 한국에서는 돈이 안 된 저희 책이 혹시 일본에서는 돈이 될까요? 일본출판사와 계약서를 교환하면서 인세와 번역료를 계산해 봤어요. 수중에 들어올 돈만 갖고 본다면 저자에게나 나에게나 이 일은 무의미해요.
들어간 노동을 생각해 보면요. 원고가 될 글을 쓰는데 공부하고 연구한 시간이 있고, 그걸 풀어내는 작업 시간이 있고, 원고를 다듬는 동안 들어간 노력들이 그 돈 갖고는 보상이 되지 않아요.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아서 잘 팔리지도 않을 연구를 한 것이고, 그걸 책으로 만든 거잖아요. 이번 책만 해도 1964년에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그것에 관심갖고 책까지 사서 읽어보고 싶은 일본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하지만 저는 일본의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에 그 책이 나와 있는 걸 보고 싶었어요. 제 눈에 그 광경을 넣고 싶다는 욕망이, 돈이 될 것인가 아닌가의 계산보다 더 컸어요. 그래서 오늘도 기꺼이, 한국어로도 몇 차례, 일본어 원고로도 몇 차례나 봐왔던 원고를 다시 마주하고 글자를 더듬어 나갑니다.
 
이건 아이를 키우는 일과 흡사해요. 자식이 나중에 커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아니잖아요. 자기 아이니까 예쁘고 자라나는 걸 보는 게 기쁨이죠. 성인이 될 때까지 잘 커 주길 기도하며 해줄 수 있는 한 다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고요. 물론 부모 자식의 시간이 모두 순조롭지는 않아요. 저처럼 잘 해내지 못한 엄마도 있어요. 더 심한 인연도 있지요. 뉴스에서 나오는 그런 거.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식에게 갖는 마음은 그저 한 사람의 성인으로 커 주면 고마운 거죠. 자식을 키우는 동안 들어가는 시간과 마음과 에너지가 상당하지만 자식이 크는 동안, 자식이 보여주는 모든 것들에서 더 많이 받으니까, 계산을 하지 못하는 거고요. 책을 만드는 일과 자식을 키우는 일이 같다고 하는 건 너무 큰 비약일지 모르나 그래도 저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고를 앞에 두었더니 하고 싶은 다른 일이 더 생각이 났던가 봐요. 언제 끝나지 하는 생각이 드는 동안, 이 일을 제가 좋아한다는 생각도 함께 왔어요. 좋아하는 일이라서, 허리도 아프고 눈이 아파도 계속 할 수 있어요. <책을 만드는 건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 라는 하나의 문장이면 될 걸, 또 이렇게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어요. 단 한마디의 말이면 될 것을 자판 위에서 글자로 변환하는 이 일도 제가 좋아하고 있음을 쓰면서 깨달아요. 어제도 쓰고, 오늘도 모닝 페이지를 채운 걸 보면요. 계속할 수 있다면 좋아하는 일이 맞죠.  좋아하는 일은 계속할 수 있고요. 같은 말인데 60년만에 제 몸과 마음이 닿아서 비로소  발견하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울고 싶던 날들이 지나고 내 속에 있었으나 보지 못하던 것을 손에 쥔 것 같아요.오늘 그래요.
(2024년 4월 24일, 수요일 오전 10시, 김미정 쓰다.17.7장)